13억의 충돌 - 시장의 신화와 중국의 선택
한더치앙 지음, 이재훈 옮김 / 이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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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의 충돌. 이른바 '신좌파'로 불리는 중국의 소장 경제학자 한더치앙은 중국의 시장경제 실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구상 인구 5분의1의 운명이 달린 이 실험에 대해 현지의 젊은 경제학자가 내쏟는 비판은 시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 로스토우의 경제발전단계론을 비판하면서, 이들 이론들을 추종하는 이들을 '시장낭만주의자'로 몰아부친다. 폴 크루그먼의 자유시장 예찬에 대해서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보호무역주의를 국가정책으로 확정해 독립적이고 강력한 산업체계를 세운 덕분에 오늘날 크루그먼이 발딛고 설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세계의 경제주체(미국)와의 경쟁에 뛰어들어 윈-윈을 노리자는 일각의(지금은 이미 대세인 듯 보이지만) 주장에 대해서는 '침략자의 주구'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시장낭만주의의 대안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시장현실주의'다. 경쟁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경쟁이론, 보호무역론과 함께 1950년대에 시작된 중심-주변이론을 다시 끌어들여 '시장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구전'의 전략을 논한다. 효율성 우선이 아닌 일자리 우선 경제모델, 자원절약형 발전, 전략산업과 과학기술·교육의 육성 등이 전략의 주요 내용들이다.

논박은 격렬한데 사실 내용이 알차 보이지는 않는다. 재미난 것은 중국 내 젊은 지식인의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서슴없는 비판과 용감한 제안들 속에서 오히려 그들의 혼란과 고민이 많이 배어나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 즉 '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한더치앙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세계화 대세론'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내보인다. 적나라한 반미감정을 표출해놓기도 했다. 저자는 시장이 다수의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 메커니즘-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을 들면서 경고를 하지만, 이런 분노와 반발심은 국제관계에서의 현실론에 부딪치면 논리력을 금방 잃어버린다. 매판자본가의 출현을 경계하면서 '민족은 이익공동체'라는 말을 되뇌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중국 젊은 지식인들의 처지이구나 싶어 조금 씁쓸해졌다.

이 책이 쓰인 것은 2000년이고, 이듬해 중국은 WTO에 가입했다. 정운영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을 가리켜 '인류의 5분의1을 상대로 벌이는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라는 칭화대학의 후안강 교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대체 자본주의와 뭣이 다르냐는 정운영의 질문에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면서 '중국은 공동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추구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운영은 '시장은 과연 덩샤오핑이 생각하는대로 '체제중립적'인 도구인가'라고 반문하고, 한더치앙은 '시장은 결코 체제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므로 사회주의를 견지해야 하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말을 내놓고, 중국인들 대다수는 상하이 증시에서 '마작 대신 주식을' 즐긴다니, 역사는 오늘날이 중국을 어떻게 기록을 할지 궁금하다.

하긴, 중국과학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속도로 봤을 때 2049년에야 중국 인구의 42%가 '중등 발전국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논자들의 비판이나 우려와 상관없이 중국은 개혁개방(이름이야 어떻게 붙었건)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데, 반세기 뒤에 중국 인구의 절반에 불과한 이들이 기껏 현재 프랑스 사람들 수준의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니 '논쟁무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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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트라이앵글 1 -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지음, 유달승 옮김 / 이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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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트라이앵글'. 노암 촘스키의 책인데, 원제는 'Fateful Triangle'이고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숙명'이라는 말, 별로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나 자신이) 쉽게 쓰는 단어는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때로는 팔레스타인의 한 여인이 된 것처럼 두려움과 분노에 몸을 떨기도 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숱하게 교육받았던 '식민지의 참상'. 그것은 주입에 가까운 교육을 통해 내 머릿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뇌의 한 부분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것을 일종의 '전(前)기억' 혹은 '전승(傳承)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의, 그리고 우리나라 젊은이들 모두의 그것은 아마도 식민지의 억압과 차별, 고통이 될 것이다.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나에게 그런 '전기억'을 상기시켰다. '두발 달린 짐승'(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비로운 점령자들'(이스라엘인들)이 어떻게 짓밟고 때리고 고문하고 죽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땅을 빼앗고 노동을 착취하고 나라를 빼앗았는지를 보면서 나는 내내 고통을 작게나마 공감했고, 무서움에 떨었다.

이 책의 1권과 2권의 절반 정도는 지난 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양민학살을 다루고 있고, 2권의 뒷부분은 이른바 '평화과정(Peace Process)'을 비롯한 그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레바논 학살 부분은 촘스키가 사건 직후인 83년에 직접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방문하고 여러 자료를 모아 쓴 것이라서 아주 구체적이고 볼만하다.

올초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가 됐을 때 어째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는지, 왜 샤론을 '살인마 전두환 보듯' 했는지가 소상히 나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어버린 이스라엘 내부의 계급구조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있다.

언어학자답게 촘스키가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악행과 사건의 전후관계 못지 않게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은 '진실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기자들의 근원적 죄악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모든 PLO 전사들, 나중에는 모든 PLO 구성원들-외교관, 관리, 교사, 의사, 팔레스타인 적십자 결국 팔레스타인인들 전체에 대해 사용한 것이다. 이 개념에 따라 그들은 PLO 전사들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의미하는 '테러리스트 캠프'를 폭격한다'

중동을 장악하고 있으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지배와 억압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되고,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내 '유대인 언론'들과 지식인들이 반(反)아랍 논리를 만들어 퍼뜨리고, 그것이 각국에서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쳐 '아랍(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이라는 명제로 굳어지고, 그 피해는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총탄에 나가떨어지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시신을 덮치는 것이다.

이 의도적인 '논리의 악순환'이 지금 미국의 시민들을 죽이고 또 아프가니스탄의 숱한 인명을 죽이는 것을 보면,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극악무도한 저주와 분노와 고통의 트라이앵글'인데 여전히 미국식 평화와 안보라는 이름 아래 그 논리가 재생산되고 있으니.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고 그들의 친구들이 고통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살인극에 나서고 있음을 안타까와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이 하도 안 좋아서 읽기가 '개같은' 수준이라는 점. 내용으로 봐서는 별점 5개를 매겨야 하지만, 번역이 하도 자갈밭같아서 별점 3개로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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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방정식
아미르 D.액설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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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신(神)은 하늘나라에 간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만났을텐데, 아인슈타인에게 뭐라고 했을까.

얼마전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교류를 하게 된 김희봉님의 번역서다. <숨겨진 질서>를 읽고난 뒤에 과학서적 번역가로서는 아주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해서 보증수표 받은 기분으로 <믿고> 읽기 시작했는데 믿음이 유효했다. 아인슈타인의 마당방정식(기존 용어로 얘기하면 場이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면서 아인슈타인의 일생과 사람됨을 같이 보여주는데, 위인전 중에서 재미있는 위인전처럼 재미있다.

마당방정식을 만들어가는 아인슈타인의 연구는 유클리드기하학(공간)에서 非유클리드기하학(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수학자들의 노력과 궤를 같이 한다. 뒷부분에는 현대 우주연구의 성과와 과제를 소개하면서 이를 마당방정식을 입증하는 과정과 맞물리게 보여주는데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 즉 <신의 방정식>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과도 일치한다.

'E=mc²'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더랬는데, 서술방식에서는 'E=mc²'과 비슷하고 재미도 비슷하다. 'E=mc²'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이 책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두 책을 비교하면서 읽게 됐다.

사실 이 책만큼 공간에 대한 설명을 쉽게 풀어서 해 주는 책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방석 조각같은 것을 놓고 가운데에서 조금 비껴간 부분에 핀으로 쿠션을 찍어누른 것처럼 쏙 들어간 부분을 만들어 '여기가 블랙홀입니다'하면서 뫼비우스의 띠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면 나는 통 이해를 못 한다. 전에 읽었던 우주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고, 나는 그런 똑같은 그림도 여러번 봤지만 매번 내가 그 그림에 무시당하는 일이 빚어졌었다.

그런데 이 책은 잘난척 하기 위해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집어넣는 대신에 정말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그림을 넣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과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인문학도의 자괴감, 치명적인 <과학적 상상력의 부재(不在)>를 조금은 상쇄시켜 주는 도우미들이 많아 반가웠다.

수학이나 물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도 후대 사람들이 뇌 조각을 잘라서 연구하고 있을 만큼 <불세출의 천재>로 각인돼 있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들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어렸을 때부터 우주란 무엇이며 무한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시간과 공간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한 개념 안에서 통합될 수 있는지를 궁금하게 생각했었는데 똑똑한 사람들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는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수학공식은 너무 어려워서 거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기념 삼아 마당방정식을 노트에 베껴써봤다. 벌레같이 생긴 문자들로 돼 있어서 옮겨쓰기도 힘들었지만, 그 공식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자꾸 그러니까 어쩐지 내 눈에도 예쁘게 보였다. 또 하나, 아인슈타인 자신의 말을 인용해 신의 존재와 의도에 우주(천지창조)의 원리를 빗대는 것도 재치있었다.

그런데 사족을 붙이자면, 아인슈타인이 프러시아 학술원의 회원이 된 것이 책 앞부분에는 1914년7월2일이라고 나오는데 뒤에서는 1913년7월3일로 나온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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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
필립 R. 레일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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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솜씨: 글도 잘 쓰고, 다양한 에피소드와 유전학 역사상의 사건들을 버무려 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다. 다만 지나친 낙관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일 뿐이므로 책을 읽는 재미가 그 때문에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일반적-전문적 접근의 양갈래를 잘 오가며 이해하기 쉽게, 심지어는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역자의 솜씨: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분야의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영한사전에 나오는 의학용어 표기를 그대로 썼다고 해서 충실한 의학서적 번역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자기가 전부 번역하지 않고 대학원생들이나 다른 사람들 시켜 번역할 거라면 차라리 번역을 하지 말라. 유전자에 대해 쓴 책에서 복제양 돌리 만든 사람의 이름이 '윌무트' '헬무트'(갑자기 독일 정치에 관한 책이 됐나 해서 당황했다)를 오가면 말이 되나? 제레미 리프킨을 리프킨-리프킨드 식으로 혼용하는 것을 애교로 봐줘야 하나? 남들 시켜 번역했으면 최소한 원고를 검토해서 고유명사 표기라도 통일해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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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박은주 옮김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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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멋진데 난 사실 바다가 무섭다. 우스운 소리 같지만 물이 너무 많아서다.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사람들이랑 부산 태종대에 갔었다. 거기서 절벽 밑의 바다를 봤는데, 낮인데다 햇빛이 좋은 날이라서 그랬는지 물이 하늘색이었다. 내가 '물 정말 많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당연한 소리를 한다고 비웃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바위에 누군가가 '물 정말 많다'고 새겨놓은 게 보였다. 그래서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바다는 물 덩어리인데, 난 그게 너무 큰 덩어리라서 무섭다. 특히 밤에는. 난 아마도 바닷가에서는 살지 못할 것이다. 밤만 되면 검고 커다란, 상상도 못하게 커다란 물덩어리가 있는데 무서워서 그 옆에는 못 살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은 처음 읽는데,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라는 제목만 듣고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가는 아무래도 정신나간듯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다 읽고난 지금, 내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글이 참 좋고, 어두우면서도 매혹적이다. 그런데 그 어두움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분홍빛 토끼조차도 어둡게 느껴지게 만들다니, 이 작가는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으면서 독자들에게 '인생은 이토록 어두운 것'이라며 협박을 한다.
아마노 세이지. 그의 집안은 비극적인 집안이다. 얼마전에 장 지오노의 <폴란드의 풍차>를 보면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는 비극이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있다. 마루야마의 이 작품이 고대의 비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비극적 운명에 끝까지 순응하지 않는다는 거다.
타락한 아버지, 뒤룩뒤룩 살쪄서 지방에 눌려 죽은 엄마, 은행강도로 복역중인 형, 더우기 애인은 어느 나쁜놈의 총에 죽었다. (이 집안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 건 북해도의 끝쪽 바닷가에 살아서도 아니고, 품성이 악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믿었던 장남이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집안이 망했다니, 작가가 짖궂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비극인데 세이지에게는 여전히 기운이 남아 있다. 작가는 그 기운에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여놨다. 그 덕분에, 밤에 보는 시커먼 물덩어리만큼이나 무서울 수 있었던 이야기는 한 젊은이의 주체할 수 없었던 청춘의 일기로 변모한다.
아주 무겁고 우울한데도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은 젊은이의 기운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고, 힘센 해파리와의 교감만 놓고 보면 매력있는 환타지 소설이다. 내 눈으로 보자면 무서운 물덩어리같은, 그렇지만 낮에는 하늘색으로 바뀌는 그런 소설이다.

지금은 밤이고, 소설이 마지막장을 막 덮고 난 지금의 나는 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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