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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 생명의 비밀 ㅣ 까치글방 199
제임스 왓슨 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진지 올해로 50년(이게 재작년 리뷰라서요;; 지금은 52년입니다). 그동안 생명과학 분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과학계 소식에서 가장 큰 뉴스들은 모두 이 분야에서 나왔다. 복제양 돌리 파문은 인간이 창조주의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냐는 논쟁을 낳았고, 인간게놈 프로젝트(HGP)라는 초인류적인 사업이 세상에 선보였다. '생명공학'이라는 낯선 분야가 출현한 것도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논란 속에서도 인간은 분명 생명의 신비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신비의 문을 여는 열쇠를 제공한 최대 공헌자는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다. 1953년 4월25일자 '네이쳐'에 실렸던 이들의 1쪽짜리 짧은 논문이 '새 시대'를 열었다. 공로를 세운 두 사람 중에서도 특히 왓슨은 활발한 사회활동과 저술로 주목을 받아왔다.
왓슨은 거만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자신감 넘치다 못해 대로는 읽는 이들을 황당하게 만들 정도로 공격적이다. 이 책은 이중나선 규명 50주년을 맞아 왓슨이 초파리 전문가 앤드루 베리와 함께 쓴 생명공학 역사서인데, 일반인들도 알 수 있도록 쉽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논쟁적이다. 왓슨의 이전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서른 넷에 노벨상을 받고 '천재' 소리에 이골이 난 왓슨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동료 내지는 동업자들에 대한 이런 식의 서슴없는 평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재미를 주는 부분이지만 이 책에 언급된 과학자들은 귀끝이 상당히 간지럽지 않았을까.
이중나선의 발견은 생명공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50년. 지금 시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왓슨이 자신의 업적 이후의 상황을 개괄하면서 택한 주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신비주의자들과 사이비 과학을 상대로 싸움을 건다. 생명공학에 무조건 시비거는 제레미 리프킨류나 환경단체들에 대해서는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쏟아내면서 공격을 한다. "당신들이 있지도 않은 위험성 운운 할 때에 제3세계 아이들은 굶어죽고 있다." "유전자 조작이 위험하다고? 이미 수백만년 전부터 자연이 스스로 해온 일일뿐인걸." 특유의 독설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길 수는 없다. 왓슨은 뛰어난 과학자일 뿐 아니라 생명공학 산업의 발전사를 누구보다 세밀하게 지켜본 사람이다.
이태 전 우리나라에서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금지시킨 생명윤리법안 시안 문제로 과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맞붙은 적 있다. 나는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시민단체들의 판에 박힌 '선험적' 주장에 놀랐고, 목소리 큰 쪽에 질질 끌려가는 정부의 '무의식'에 경악했었다. (댁들이 집에 파킨슨병 환자 하나 있어봐, 그런 소리들이 나오냐고--생명과학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법이 어딨냐. 암튼 이 논란은 황우석 박사의 출현과 함께 그대로 끝장나서, 정부는 수백억원을 들여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키로 결정. 대단한 코리아..)
'윤리'의 이름으로 과학에 가해지는 공격 중에는 아직도 신비주의적인 것들이 널려 있다. 겁내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한다. 생명공학을 백안시하기 전에, '인간복제'라는 소리에 지레 움츠러들기 전에 왓슨 같은 이가 외치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생명공학을 과학의 사생아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