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더니 하이드님이 이런 단편을 소개해주셨다.

영어 제목은 The Black Sheep.


[번역 서비스...]


도둑들만 사는 나라가 있었다. 밤이 되면 주민들은 쇠지레와 손전등을 들고 집을 나서, 이웃집으로 쳐들어간다. 노획물을 싸들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와 보면, 자기 집도 똑같이 강도질을 당한 걸 알게 된다.

모두가 조화롭게 살았고, 아무에게도 그다지 나쁠건 없었다. 한 사람이 옆집에서 도둑질을 하면 옆집 사람은 그 다음집을 훔치고, 이렇게 맨 끝 사람에게 이를 때까지 서로 도둑질을 한다. 이 나라에서 사업이란 말은 사는 것이 됐건 파는 것이 됐건 사기라는 말과 똑같다. 정부는 국민들을 강탈하기 위한 범죄조직이고, 국민들은 정부를 속이는데에 전념한다. 그러나 인생은 별탈없이 흘러가고 주민들 중에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다.

어느날 -아무도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정직한 남자가 나타났다. 밤에 가방과 전등을 챙겨들고 도둑질을 하러 나가는 대신에, 그는 집에 머물러 담배를 피우며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의 집에 들어간 도둑들은 불빛이 환히 켜져있는 것을 보고 도망쳐버렸다.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정직한 남자가 자기 편한대로 사는 것을 뭐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하던대로 하는 걸 막을 권리도 없었다. 매일밤 그가 집에 머물러있었던 탓에 굶어야 하는 가족이 하나씩 생겨났다.

정직한 남자도 이제 밤부터 새벽 사이에 집을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둑질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정직한 남자였다. 그는 저 멀리 다리까지 가서 흐르는 물을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는 도둑이 왔다 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일주일도 가지 않아, 정직한 남자의 집에는 돈도 음식도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건 그 남자의 잘못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의 정직함이었으니까. 정직함 때문에 정상상태에서 떨어져나가게 된 것이다. 자기가 도둑질할 차례인데 하지 않고, 도둑을 맞기만 했다. 덕택에 누군가는 매일밤 도둑질을 하고도 자기 집을 도둑맞지 않게 됐다. 정직한 사람이 도둑질을 했어야 할 집 말이다. 당연히 그 결과, 도둑질을 당하지 않는 집은 다른 집보다 부자가 됐다. 부자가 된 사람은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빈털터리 정직한 남자네 집을 털 사람은 훔칠 물건이 없으니 가난해졌다.

한편 부자가 된 사람은 밤마다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정직한 남자의 버릇에 동참을 하게 됐다. 이 때문에 혼란만 더해졌다. 부자가 더 생겨나고, 가난뱅이도 더 생겨났기 때문이다.

부자가 된 사람들은, 밤에 다리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 다시 가난뱅이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난한 사람들을 시켜서 날 위해 대신 도둑질을 해오도록 하면 되잖아?" 부자들의 생각이 여기에 미쳤다. 계약이 체결되고 봉급과 지분에 합의가 이뤄졌다(물론 이들은 아직 도둑근성을 버리지 못했기에 쌍방 모두 이중계약을 맺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그 결과,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뱅이들은 더 가난해졌다.

어떤 부자들은 너무 부유해서 더 이상 훔치거나, 도둑을 고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도둑질을 그만두면 곧 가난뱅이로 떨어질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자들은 가장 가난한 이들이 적은 재산이나마 지킬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렇게 경찰이 생겨났고 감옥도 지어졌다.

그랬다. 정직한 사람이 나타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무도 도둑질이나 강도당한 일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됐다. 그 대신 사람들이 얼마나 부유한지 혹은 가난한지를 이야기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다 도둑들이었다. 정직한 단 한사람, 그는 곧 굶어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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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10-1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밌네요 어릴 때 슈바이처박사 전기를 보니 아프리카에서 물건을 도둑맞고 주변 원주민들에게 물어보면 "그건 당신 잘못이에요. 당신이 지키지 않을 때 가져가는 건 당연한 겁니다"하는 식의 답변을 하더라고... 탈무드에도 보면 도둑을 맞았거든 아무 말 말고 옆집에 가서 잃어버린 물건을 훔쳐오라 그런 식으로 계속하면 결국 모두가 균형을 이룰 거라는 얘기가 있죠. 한국에서는 군대에 가서 실천할 수 있죠. 물건을 도둑 맞으면 도둑맞았다는 걸 숨기고 있다가 다른 사람 걸 자기 자리에 '갖다 놓죠'.

딸기 2005-10-1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적에, 그런 말이 제일 싫었는데... 물건 잃어버리는 애가 바보같은 애다, 잃어버린 사람이 나쁘다, 그런 거 있잖아요. 잘못한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피해자가 모든 걸 뒤집어써야 되는 상황 말이지요. (참고로 저는 물건 몹시 잘 잃어버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