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꽤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나로서는... 좀체로 없는 일이라고 해도 되겠다. 무려 새벽 2시까지 깨어있으면서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를 읽었으니. 재미있었다. 하지만 길을 물을 때에는 위대한 스승에게 물어야 의미가 있지.

나는 파인만을 좋아한다. 파인만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책 속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많은 물리학자들은 쿼크와 같은 관찰 불가능한 입자가 실재라는 생각은 좀 심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파인만은 그런 문제를 들이대면, 의사의 명령 때문에 형이상학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대꾸하곤 했다."

그러니 매력적이고도 남는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해 묻기엔 파인만은 너무 거시기하지 않나? 이력상 여러가지 쟁점(맨해튼 프로젝트)은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길을 물으려면 역시 파인만이 아닌 아인슈타인에게 물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직접 밝힌, '아인슈타인이 보는 세상'.

내가 보는 세상

우리 인간의 운명이란 얼마나 기묘한가!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인생의) 목적을 감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무슨 목적 때문에 왔다 가는지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일상 생활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미소와 안녕에 우리 자신의 행복이 온통 걸려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공감이란 유대로 그들의 운명과 엮이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나는 매일 골백번씩 내 자신의 내면의 삶과 외형적 생활이 살아있거나 이미 숨진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에 의지한다는 점과, 따라서 내가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되새기고 있다. 나는 검소한 생활에 크게 마음이 끌리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지나치게 많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때로는 강박감을 느끼면서 인식하고 있다.

나는 계급의 구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결국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 소박하고 분수를 지키는 삶이 심신 양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중략)
나의 정치적 이상은 민주주의다. 모든 사람은 개체로서 존중받고 그 누구도 우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의 過나 功이 없이 동료들로부터 과도한 찬사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미력이나마 내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알게 된 몇가지 개념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느 조직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한 사람이 머리를 짜내고 지도하고 또 전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강제를 당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나는 천재적인 독재자들의 뒤를 악당들이 계승한다는 걸 불변의 법칙으로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오늘날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체제에 항상 열성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단 생활의 가장 좋지 않은 형태로서 내가 혐오하는 군대 문제로 화제가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밴드의 선율에 맞춰 4열 종대로 행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를 여지없이 경멸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큼직한 두뇌를 갖게 되었다면 이는 오로지 실수 때문이다. 그에겐 보호막이 없는 척수만 있어도 될 것이다.
문명의 재앙을 상징하는 이런 행위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없어져야 한다. 명령에 따라 발휘되는 용맹성과 무분별한 폭력,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메스껍고 어리석은 행위야말로 내가 몸서리치게 혐오하는 것이다. 나에게 전쟁이란 얼마나 혐오스럽고 비열하게 비치는가! 나는 그런 가증스러운 일에 끼어드느니 차라리 난도질을 당하겠다. 나는 인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만약 상업적 정치적 이해 관계자들이 교육과 언론을 통해 사람들의 건전한 의식을 조직적으로 타락시키지 않았다면 이런 악귀는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으로 믿는다.
 

언제 읽든, 이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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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1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인슈타인, 너무 멋지군요. 이 할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전 언제나 좋아했어요.

근데 딸기님, 글씨 좀 크게 써 주시면 안될랑가요?(애교) 저는 노안이라 님의 글을 읽고 싶어도 못 읽을 때가 많아요ㅠ.ㅠ

딸기 2005-01-12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헛 그러셨군요! 앞으론 조심할께요. 글씨야, 커져라, 글씨야 커져라...



혹시 저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중심 刊)을 읽어보세요. 절대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랍니다!

깍두기 2005-01-1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찾아보고 보관함에 넣을게요^^

딸기 2005-01-12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벌써 댓글이... 저 수정하고 있었단 말예요!

깍두기 2005-01-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때문에 수정까지....(감격!)

책은 찾아보고, 보관함에 넣고, 님의 리뷰에 땡스투 누루고, 그러고 왔어요^^

딸기 2005-01-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로 보답해주시니 앞으로도 고객감동 서비스로... 글자 크기를 키우겠습니다.

urblue 2005-01-1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주문한 책 중 두 권은 딸기님께 땡스투 했습니다. 방드르디하고 잘못 들어선 길에서. ^^

마냐 2005-01-13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깍두기님 지적, 정말 고맙군요....글구, 아인슈타인의 멋진 글은 더 고맙구.

딸기 2005-01-1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럼 마냐님도... 노안...

블루님, 땡스투 고맙습니다. 이히히.

nemuko 2005-01-1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인슈타인.... 이름만 알고. 과학자라는 것만 알았지 그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니 상상 밖입니다. 저만 알고 다 아는 사실이었을까요...^^ 골방에 쳐박혀 연구만 했던 할아버지가 아니었나봐요. 저도 땡스투 할께요~~~

딸기 2005-01-1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인슈타인에 대해서는 DHA 우유 이름이라고밖에 생각을 안 했더랬는데요(웃음) 여기저기서 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첨엔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종용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었대요. 핵무기를 만들어서 히틀러를 무찔러야 한다고... 물론 나중엔 생각이 바뀌었고, 핵무기 반대운동을 했었죠. (촘스키는 그러더군요. 아인슈타인과 버틀란드 러셀의 차이는 뭐냐? 아인슈타인은 연구실 안에 있었고, 러셀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뭐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의 '사회운동'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인슈타인의 머리 속에는

1. 상대성 이론

2. 만물이론(통일장 이론)

3. 전쟁과 핵 문제

4.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건국

5. 세계정부 구상 --

이 밖에도 여러가지가 들어있었던 것 같아요. 책 꼭 읽어보세요.

아인슈타인을 'DHA'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확실하게 바꿔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