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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
리처드 파인만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1년 8월
평점 :
파인만의 물리학 책들 중에 어려운 것(other six...)과 쉬운 것(six...)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더랬는데, 이 책은 특히 '쉬운 것'에 속한다고 강조라도 하듯 '일반인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제목에 떡하니 박혀있는 QED. 하기사, 제목에 '양자전기역학'이라고 표기를 해놓으면, 웬만한 '일반인'은 이 책을 멀~리 피해가기 십상일 터이니. 미국에서 출판됐을 당시 원제목은 'QED by Richard P. Feynman'인데 국내 번역본에는 '일반인을 위한'이라는 구절이 붙었다. 양자전기역학의 중간 교주 정도로 봐도 될 파인만, 무려 이 이론으로 노벨상까지 받았던 파인만 스스로가 양자전기역학을 '끔찍한 이름'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니, 출판사의 고충도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좋다. 책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파인만 특유의 '뼈대 플러스 농담'으로 구성된 설명. 파인만이 1984년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묶은 사람은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을 썼던 바로 그 사람(고등학교 물리선생님)이고, 국내 번역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 무식한 독자를 감동시킨 그 사람이었다. 저자/편자/역자가 삼박자를 맞추고 있지만 역시나 주역은 저자 겸 강연자인 파인만이 아닐 수 없다. 파인만의 말솜씨는 참 대단하다. 어째서 '뼈대 플러스 농담'이냐면, 곁가지 다 잘라내고 핵심만 얘기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슬렁슬렁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책의 뼈대는 물론 '양자전기역학(QED)'이다. 양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확률로밖에 묘사할 수 없다는 점, 그 확률은 화살표(이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개념)의 곱셈과 덧셈으로 결정된다는 점, 이 화살표를 돌리고 잡아당기고 줄이면 우주만물의 신비에 다가가게 된다는 점. 이것이 파인만 강연의 요지다. 파인만의 말을 빌면 책의 재료가 된 강연의 주된 목적은 '빛과 물질의 이상한 세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빛과 전자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었다고.
이 강연이 쉽냐고? 그건 물론 아니다. '일반인을 위한'이라고는 했지만, 일반인들은 전문분야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 원래 좀 졸게 되어 있다. 파인만이기에 이 정도라도 설명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역시나 쉽지는 않다. 원래 이 분야가 어려운 분야이니깐, 하면서 읽는 수밖에 없다. 왜 어려운가? 보이는 세계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눈에 양자 세계는 너무나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인만은 '양자 세계가 이상하다는 점을 받아들여라!' 라고 말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쳐다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심리적 거부감은 없앨 수 있다. 강연은 네 차례에 걸쳐 이뤄졌고, 책은 첫째날-둘째날-세째날-네째날의 강연을 나눠 정리해놨다. 첫째날 강연은 맛뵈기, 둘째날 강연은 신기하고 놀라운 발상의 전환, 세째날은 조금 어려워지고, 네째날 강연은 입자들이 많이 나와 좀 어려웠다.
뼈대는 그렇다 치고, 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건질수 있는 플러스 알파, 즉 '농담'은 뭐냐. 노학자가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재미나게 들을 수 있는 농반 진반의 통찰력이다.
양자전기역학은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때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자연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험치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자연 자체가 터무니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게 좋을 것이다. (34쪽)
훌륭한 이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들 하는데, 이 점에서 보더라도 양자전기역학이론은 훌륭한 이론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171쪽)
저런 농담을 던지면서 강연하는 물리학자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