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칼 세이건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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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작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대중적인 우주과학자. TV에 많이 등장했고 각종 사안의 코멘터로도 애용됐던. 그 외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없었다.

<에필로그>는 말 그대로 에필로그다. 과학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세이건이 골수암으로 죽어가면서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가 남긴 에필로그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살았던 스타 과학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환경 얘기였다. 물론 책 뒷부분에는 낙태에 대한 입장 등 기고문과 연설문들이 몇개 실려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덤 정도에 불과한 것들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질적으로만 안다면, 그것을 아주 막연하게 아는 것에 불과하다. 대상을 양적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크기를 숫자로 이해하여 무수히 존재하는 다른 가능성으로부터 그것을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을 깊이 있게 아는 첫걸음이다. 그럴 때 우리는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제공하는 힘과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수량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데 가장 필요한 관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책을 읽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린 항상 '양'보다는 '질'이 더 '우월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산다. 결국 질을 규정하는 것은, 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양이다. 흔히 인문학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양(수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면서, 말하자면 '잘난척'을 한다. 그러나 인류의 무지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가 인류를 구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이건의 메시지를 굳이 해석하고 연구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러나 동시에 무시하고 있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그가 던지는 몇개의 '질문'들에 대해서만은 곰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평등'에 대한 것이다.

'밝은색 피부는 피부암에 걸리기 쉽다. 검은색 피부의 사람들은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멜라닌을 충분히 가지고 태어난다. CFC(염화불화탄소)를 발명한 밝은색 피부의 사람들이 차별적으로 피부암에 걸리는 반면, 그 놀라운 물질과 별 관계가 없는 검은색 피부의 사람들은 선천적인 방어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니, 먼 우주에서 어떤 정의의 심판을 내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일부 지역은 훨씬 추워지고 일부 지역은 훨씬 더워진다. 중위도에서 고위도에 이르는 농업수출국가들(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수출이 증가하여 일시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가난한 국가들이 가장 혹독한 영향에 시달릴 것이다. 이 밖에 여러 요인으로 21세기에는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격차가 가일층 확대될 것이다.'

지구는 둥글다지만, 환경파괴의 영향력은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강대국들(무엇이 '선진국'이란 말인가)은 약소국에 환경파괴로 인한 고통을 떼밀어놓고도 뻔뻔하게 환경주의자들인양 한다.
세이건은 환경의 불평등과 함께,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맹공격을 퍼붓는다. '보수주의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존하는가-레이건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세이건을 처음 읽는 내게는 조금은 뜻밖이었고, 그래서 그만큼 더 눈에 띄었다.

불치병에 걸린 과학자는, 그러나 죽기 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가끔씩은 그런 낙관론을 들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안타까운 희망사항일 뿐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염려스러운 얘기를 잔뜩 늘어놓고는(그리고 그 염려의 내용은 아주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다'라고 얘기를 하면, '불치병에 걸렸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나을 수도 있어요'라는 모순된 말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럼 세이건은 어떻게 희망을 그릴까. 그 자신 병에 걸려 있고, 지구도 병에 걸려 있고, 병을 치료해야 하는 인간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를 깊이 생각하는 자체는 영장류 중에서도 단 하나의 혈통으로 전수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지구 위에 새긴 놀라운 성공담의 비결이기도 하다.'

세이건이 인용했던 인디언의 속담 한 토막. 지금은 카피처럼 많이 들을 수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지구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잠시 빌려왔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심박이상으로 고통받는 연인을 지켜보듯이, 지상의 관측소에서, 비행기에서, 인공위성에서 전세계 상공의 오존층을 두루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상에 누운 노학자의 마지막 메시지로는 아름답고, 의미심장하다.

(세이건은 결국 1996년12월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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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1-1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찜했어요. 땡스 투 딸기님. ^^

딸기 2004-11-1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쉬우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해서 참 좋았어요. 제가 서울에 있었다면 판다님 드렸을텐데...

panda78 2004-11-19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 주세요. ^ㅂ^ ;;;

딸기 2004-11-2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먼저 가져가지 않았다면, 꼭 판다님 드릴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