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초파리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마고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유전자라는 말, 과학전공자들끼리만 소곤소곤하는 단어가 아님은 분명하다. 신문에건 어디에건 툭하면 등장하는 '흔한 단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초파리> 앞에 '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원제는 Fly: an experimental life 인데 우리나라 번역본에서 붙인 저 수식어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실험실의 초파리라는 작은 존재를 통해 19세기말 이후 유전학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유전학의 기본개념을 쉽고 알차게 설명해주니 과학서적으로서는 양대 미덕을 모두 갖춘 책이다.

팀 털리라는 과학자는 아주 정교한 기계를 만들어서, 초파리를 학습을 시켰다. 이런 실험을 거쳐 초파리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동물행동학과 분자생물학의 차별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털리는 의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초파리를 이용해서, 학습능력과 유전자 간에 연관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이런 실험들을 통해서 '학습과 기억은 일련의 생화학적 스위치로 번역됐다'. '만약 우리 인간 역시 초파리와 똑같은 유전자 주형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이것은 기억 조작이라는 흥미로우면서도 무서운 미래를 예고하게 된다'.

유전자에 대해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유전학에 관한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그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는데, 앞서 말한 학습능력의 사례는 하나의 예에 불과할 뿐이다. 과학은,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고도의 목적의식 하에 이뤄지는 학문이고, 그 '목적의식'은 인간의 욕망과 직결돼 있다. 오래 살고 싶은 욕망,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다윈 식으로 말하자면, '더 많이 번식시키고 싶은 욕망'.

우리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법을 꾸준히 개발시키고 있지만, 일부 똑똑한 이들이 선도하는 그런 방법상의 발전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에 독점돼 있다. 그 집단(과학자들, 자본들)에 속해 있지 않은 우리 같은 과학 문외한들은 바퀴가 어디로 향해가는지도 모르는채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나 똑같은 것 아닌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다면, 혹시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운전수의 목을 졸라서라도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면, 더이상 유전자 이야기를 남들 얘기로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

<초파리>는 바로 그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줄 만한 책이다. 과학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어도 될 정도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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