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사 1
Reiko Okano / 세주문화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매니아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작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건 참 쉽지가 않다. 함부로 평을 했다가 누구한테 욕 먹을까 두렵다는 뜻이 아니라, 주변에 이 작품에 대해 잘 알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으니 작품을 보는 내 눈에도 분명 선입견이 몇겹은 끼었을 것이라는, 그런 얘기다. 그런 '작품'이 바로 음양사다. 이 만화에 대해서라면- 이미 내 주변에도 매니아들이 많이 있고, 또한 영화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만화이건 책이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기승전결을 좋아하느냐, 옴니버스를 좋아하느냐. 얼토당토 않은 구분일 수 있겠고, 내 대답도 그저 '기승전결이 깔린 옴니버스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그친다. 완벽한 틀을 갖추고 있는 것도 좋지만, 옴니버스 작품에서 기승전결은 그저 화자의 심리상태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 정도로 끝나야지 얘기가 너무 확장되어 나가면 오버하게 된다. 음양사는 처음에 옴니버스로 시작되는 듯했다. 그 멋진 그림- 이 작품의 매력의 99%는 사실 그림에서 나온다. 일본의 여러 만화가 그렇듯이 그림 그리는 이와 각본짜는 이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림 그린 오카노 레이코는 다름 아니라 데스카 오자무의 며느리라고 들었다. 그림은 100점 아니라 백의 백승을 주고 싶다.

책의 주인공은 네 사람이다. 세이메이의 친구이자 셜록홈즈의 '왓슨'같은 인물이었던 히로마사는 절대순수, 선을 구현하는 인물로 변하면서 오히려 생명력이 없어진다.
히로마사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세이메이의 사형일 텐데, 이 인물은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인상을 풍겼다. 히로마사가 正이라면 사형은 反이고, 둘을 合으로 만드는 것이 세이메이의 몫이다. 세이메이의 연인 마쿠즈는 정-반-합을 이끄는 촉매다. 사실 내가 매력을 느낀 인물은 세이메이보다는 히로마사와 마쿠즈 쪽이었다. 히로마사라는 인물은 평범한, 그러나 평범치 않은 인물로서 외모에서 선량한 느낌을 풍겼고, 마쿠즈는 뭔가 수수께끼의 열쇠를 쥐고 있는 흔치않은 여인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세이메이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인지?
담담하고 고요한 물같던 세이메이, 뭔가 사연을 안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았던 세이메이는 점차 영웅으로 변모한다. 천지를 구하라! 제각기 사연을 품은 귀신들을 달래고 세상을 좀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세이메이가 천지 음양의 조화를 뒤바꾸는, 즉 이 세계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가져올 인물로 격상되면서 '음양사'는 거창해지고 꼬이고 재미가 없어져버렸다. 붓으로 그린듯한 멋진 필치의 그림들마저도 스크린톤으로 범벅이 됐다.
게다가 이 줄거리엔 즐거운 장치들이 거의 없다. 그나마 볼거리가 됐던 것이 세이메이와 마쿠즈의 관계였는데 갑자기 신파로 돌아가버리지 않나, 히로마사는 순수의 화신이 되지 않나... 이 작자가 대체 어떤 식으로 벌려놓은 판을 수습할지.
아무튼 일본에 가면 소장본으로 구입하고 싶은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재미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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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4-27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에서라도 세계를 구하면 안 되나요?
흐흐...

딸기 2004-04-2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쟁이, 여기와서까지 '흐흐' 심술을 부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