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5월 6일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에펠탑이 완공돼 관람객들에게 공개됐다.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1832~1923)의 디자인에 엔지니어 모리스 쾨흘린(1856~1946)의 구조 설계로 지어진 철탑은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획기적’인 건축물이었다. 3년간의 대역사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탑을 만드는 데에는 총 1만8038개의 쇳조각과 250만개의 쇠못이 들어갔다. 
탑에 쓰인 철의 무게는 7300t, 비금속성 자재들까지 합치면 약 1만t의 자재가 소요됐다. 사각형의 밑변 길이는 각 99.3m이고 높이는 300m에 이르렀다. 후에 24m 짜리 철근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현재 높이는 324m다. 쇠로 만들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열에 많이 반응하기 때문에, 햇빛이 강할 때와 없을 때 18㎝ 가량 높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다가오는 20세기에 대한 희망, 역동하는 산업시대의 에너지를 결집시킨 ‘현대’의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에펠이 만국박람회 측에 이 탑의 건축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공사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설계안에 따르면 탑은 1, 2층에만 바닥이 있고 그 위로는 중심부가 뚫린 철골구조였다. 사고 우려를 의식한 에펠은 이동식 발판과 가드레일, 천막 등을 설치하는 등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공사 기간 사고로 숨진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탑 계획안이 나왔을 때 “흉물스런 철골 구조물이 될 것”이라며 반대했으나 완공된 뒤에는 높이 80m 상공에 위치한 에펠탑 레스토랑을 즐겨 찾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일설에는, 에펠탑이 안 보이는 식당이 파리에 거기 뿐이어서 그랬다고). 1940년 독일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파리시는 히틀러의 선전에 악용될 것을 우려, 에펠탑의 전원 케이블을 끊었다. 이 때문에 파리를 찾은 히틀러는 탑 아래 입구만 방문한 채 올라가지 못했다. 나치 군은 에펠탑에 거대한 스바스티카(卍) 깃발을 달려다가 강풍에 실패했다는 일화도 있다.

완공됐을 때만 해도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나 1930년 미국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에 자리를 빼았겼고, 20세기 내내 세계 각국의 ‘초고층 건물’ 건설경쟁이 이어졌다. 
지금도 경쟁은 진행중이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의 부르즈 두바이는 800m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갑부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소유한 킹덤홀딩컴퍼니는 사우디 항구도시 제다에 높이 1000m가 넘는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쿠웨이트도 ‘시티 오브 실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1000m 건물 신축계획을 갖고 있고, 두바이의 부동산회사 나크힐도 같은 기록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에펠탑과 같은 종류의 철골 타워로는 우크라이나의 키에프 타워(385m),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타워(375m), 중국 장인(江陰)의 양츠 철탑(346m) 등이 에펠탑보다 높게 지어졌다.
에펠탑은 지금은 프랑스에서도 5번째 높은 건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시민들의 ‘사랑’은 ‘높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에펠탑을 찾는다. 개장된 이래 120년 동안 이 탑을 방문한 사람은 2억명이 넘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중국 항저우 등지에 수많은 모사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파리 가서 에펠탑 안 보는 사람도 있다. 나... 
나는 파리에 2박3일 있으면서도 에펠탑은 안 가봤다. 왜 그랬을까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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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9-05-0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 앞에 커다란 케익 만들어서 촛불 켜주는 그런 이벤트 안하려나요? ㅎㅎ
저런 철탑에 식당이 있다는게 신기해요! 올라가기도 무서울듯 싶은데..

딸기야놀러가자 2009-05-07 09: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 이벤트 안 했으려나 모르겠네요.
어쩌면 했을 것 같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