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대국 일본의 `로봇 생활화 혁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일본의 한 연구팀은 두려움과 기쁨, 분노 등 기본적인 감정을 얼굴에 드러낼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로봇이 인간처럼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궁극적인 인공지능(AI)'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과학계에서도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적어도 인간과 비슷한 기초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단계엔 이미 와있는 것 같습니다.


웃고 화내는 `감성 로봇'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미래의 로봇을 내다보는 일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로봇혁명이 한창 진행중인 일본의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메이지(明治)대학 연구팀이 도쿄(東京) 근교의 연구실에서 얼마전 탄생시킨 로봇 `간세이'. 일본어로 `감성(感性)'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로봇은 `전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렵다는 듯 몸을 떨고,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분홍빛 입술 끝을 살짝 끌어올리며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별로 예쁘진 않아요. 이렇게 생겼어요.



어머나 무서워! 간세이가 'bomb'이란 말을 듣고 공포에 떠는(?) 모습



개발팀에 따르면 간세이는 분노, 두려움, 슬픔, 행복, 놀람, 혐오와 같은 6가지 기본적인 감정을 얼굴이나 몸짓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네요. 물론 아직까지는 `조건반사'에 가까운 표현일 뿐, 실제로 인간과 같이 다양한 상황에서 느끼고 표현을 할수 있는 단계는 아니랍니다. 이 로봇을 탄생시킨 다케노 준이치 팀장은 "로봇들이 감정을 완전히 느끼고 표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속속 등장하는 생활형 로봇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흉내내기엔 이르지만,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서 단순노동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생활도우미형 로봇은 이미 몇년 전부터 등장하고 있지요. 일본은 사실 로봇이 `생활화'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데요.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산업 현장의 자동기계형 로봇이 아니라 일상 생활 안으로 파고들어온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들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총리와의 악수 등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던 혼다의 아시모(Asimo)를 필두로,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휴머노이드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가종교 격인 신토(神道) 예식을 돕는 로봇에서부터 벼를 심고 베는 농업용 로봇, 과수원의 과일 따는 로봇, 요양시설에서 노인과 환자들의 밥을 먹여주는 로봇, 심지어 스시(초밥) 제조 로봇까지 나와 있다는군요.

지난해 시판되기 시작한 빌딩 흡연·화재 감시 로봇 `유비코 T2-4'는 규슈(九州)대학과 가나자와(金澤)대학이 공동 개발했습니다. 앙증맞은 외모의 유비코는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불씨가 있는지 감시하는데, 마늘 냄새 따위와 물건 타는 냄새를 기막히게 구분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하네요. 휴머노이드는 아니지만 인조털이 달린 `파로(Paro)' 처럼 외로운 이들을 달래주는 `애완 로봇' 혹은 `반려로봇'도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맨 왼쪽부터 소니의 SDR-4X, 냄새맡는 로봇 유비코,
후쿠시마 병원에서 재작년부터 손님맞이 하고 있는 가이드로봇, 그리고 후지쓰의 가사도우미 에논.



도요타가 내놓은 안내용 로봇 로비나와 후지쓰의 골키퍼 로봇


로봇산업에 사활 건 일본 기업들

미국의 자존심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메이커로 부상한 일본의 대표기업 도요타.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일류를 자랑하는 도요타는 지난해 12월초 "로봇 상용화에 앞장서겠다"며 로봇산업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선언해 눈길을 모았습니다. 도요타는 이 발표와 함께 급경사면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모빌리티(mobility) 로봇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봇을 공개했는데, 우선은 복지·의료분야의 늘어나는 수요를 겨냥해 도우미 로봇을 만들어 올부터 상용화하겠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도요타는 애완견 로봇 `아이보'와 휴머노이드 `큐리오' 등을 만들었던 소니 로봇부문을 인수하는 등 로봇시장을 내다본 투자를 적극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지쓰는 이미 몇년전부터 집안을 돌아다니며 전자기기를 제어해주는 가사도우미 로봇 `에논(enon)'을 비롯한 다양한 로봇을 시장에 내놓은 바 있구요.
일본 정부는 2006년 52억 달러(약 5조원) 규모였던 로봇산업이 2010년에는 260억 달러, 2025년 7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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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8-03-0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 님, 안녕하세요?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저도 이쪽에 관심이 좀 있어서 위 글을 보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1996년 어느날, 저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죠.

바로 일본의 혼다가 (거의)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선보인 “두발 걸음” 로봇 “P2”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봇을 다룬 SF 영화나 만화에서 P2보다 훨씬 인간에 가깝고 인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로봇을 수없이 봐왔지만, 실제 현실에서 인간이 직접 만든 로봇이 진짜로 두 발로 땅 위를 당당히 걷고 모습을 목도했을 때는,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 저 쇳덩이를 두 발로 사람처럼 걷게 할 수 있는가? 이제 로봇이 본격적으로 인간임을 선언한 것인가? 아무도, 어느 나라도 생각해내지 못한, 세계를 경이와 충격으로 몰아넣는, 경천동지할 만한 세기의 발명과 기술력과 독창성을 일본은, 저팬은, 니뽄은, 주기적으로, 어떻게 한밤의 벼락처럼 터트릴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우리나라는 뭐란 말인가? 뭐하고 있는 것인가? 갖가지 놀라움과 충격과 부러움과 탄식과 동경과 꿈과 암시적인 전언으로 뒤섞여 소용돌이쳤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qualia 2008-03-0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인들의 끝없는 (천진난만 아이 같은) 호기심, 말 그대로 불가능한 꿈일 뿐인 데도, 그러나 꿈을 주는 꿈에 대한 꿈을 끊임없이 꿈꾸는 타고난 꿈 본능... 일본, 일본인들은 유달리 미래에 대한 동경과 꿈과 호기심, 에스에프SF적인 심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새롭고 신기하고 예쁘고 정교하고 섬세하고 세련되고 아름답고 튼실하고 뛰어나고 재미난,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물건의 정수, 사상의 정수, 자연자원의 정수, 인재의 정수, 문화의 정수, 기술의 정수, 아이디어의 정수, 의식주의 정수, 행동방식의 정수, 풍습의 정수... 이런 것들이 눈에 띄면, 일본, 일본인들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저것들에 대한 일본,일본인들의 탐욕은 세계 최고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수집하고 입수하고 반입하고 받아들여서 자기것으로 만들고 거기에 일본것 곁들여서 최고 중의 최고를 만들어서 완전히 일본화합니다. 이것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일본/일본인다운 특성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 중의 최고와 정수(精髓) 중의 정수에 대한 강한 탐욕은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선 필수인 것이죠.

요즈음, 우리/우리나라에서도 새것 증후군이니, 얼리 어답터니, 세계 최초 신제품의 테스트 베드니, 하면서 우리 자신이 우리/우리나라를 비판하거나 반대로 자화자찬하고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엔 코웃음칠 일입니다. 코웃음친다고 해서 “결코 자학이나 자기비하, 자기혐오가 아닙니다.”결코 일본/일본인들에 대한 무조건적 찬사도 아닙니다. 우리의 새것 밝힘증, 한국적 얼리 어답터의 본질, 소위 한국이 세계 신제품의 시험 무대라는 (전혀 공인받지 못한 제 논에 물대기식) 자화자찬 따위는 껍데기만 요란할 뿐 그다지 알맹이나 실속이 별로 없는 허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유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회사가 세계 최고 성능, 최고 디자인을 지닌 환상적인 디카를 시장에 내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그것에 탐욕을 부리고 결국에는 입수하게 됩니다. 세계 최고로 빠르게 입수하는 속도전에서는 뭐 오십보 백보라고 칩시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고급 제품이 자신의 감각이나 품위를 높인다고 뿌듯해 하죠. 흡족한 마음으로 애지중지하고 그 흐믓함과 뿌듯함, 남들과 다른 자신의 고급스런 취향에 만족해 합니다. 자랑이죠. 그러나 그것뿐입니다. 한국인의 새것 밝힘증, 한국적 얼리 어답터의 본질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일본/일본인들도 여기까지 와서 만족해 하는 것은 우리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만족해 하는 지점에서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갑니다. 즉, 그 최고 제품을 우리처럼 애지중지 모셔 놓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낱낱이 뜯어버립니다. 즉 제품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것이죠.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탐구 본능”과 “진짜 자기것으로 만들려는 악착같은 본능” 때문에 단순한 소유욕에 머물지 않고, 분해하고 분석하고 실험하고 본뜨고 덧붙이고 보완하고 해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창조력과 상상력을 펼치는 단계로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인과 일본인의 결정적 차이인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우리 한국은 일본의 뒷북만 쳐왔던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 뒷북치기의 기원은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딸기 2008-03-10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리있는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