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하는 국가 -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본 사회 진단과 전망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열대림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국내에도 번역돼 있는 여러 가지 책을 쓴 저널리스트라고 하는데, 다른 저서는 본 적이 없고 나는 이 것이 처음이었다. 내 호감도 기준으로 별점을 주자면 3개에서 4개 사이, 그런데 3개에 가까운 쪽이 될 것 같다. 작년 상반기, 그러니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가 일본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봤으면 훨씬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고이즈미 이후’를 예측하는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를 제대로 잘 예측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고이즈미가 절대로 안 물러나고 암장군으로 맹활약하거나 재집권할 것이라며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놨는데, 온몸으로 사무라이스러움을 증언하듯 고이즈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뒤로한 채 떠났다. ‘장기적인 예측’도 아니고, 당장 몇 달 뒤 일어날 총선 이후를 전망하면서 책까지 내놨는데 이렇게 틀려버리면 곤란하지. 저자가 인터넷 잡지에 실었던 에세이들을 묶은 거라고는 하지만, 그 생명력이 다만 몇 달도 못 갈 내용을 하드커버로 사서 읽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굵직한 테마들은 일본을 뒤흔들었던 라이브도어 사건, 여성천황제를 둘러싼 논란, 야스쿠니 참배와 개헌 문제, 고이즈미의 ‘우정개혁’ 깜짝쇼, 포스트 고이즈미 정계 시나리오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 곁다리로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오늘날 일본 언론의 얄팍함을 질타하는 에세이몇편과 이라크 파병 문제 같은 것들을 붙였다.
중요한 테마들이 시의성 위주로 되어있는 거라서 ‘사후에 읽기’엔 좀 그랬다. 그렇다고 후일담이라 할만큼 지나간 것은 또 아니니 말이다. 라이브도어 뒷이야기들은 재미있기는 했는데, 마침 일본 문제를 뒤적여야만 했던 나같은 사람들 말고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겐 쓸데없는 얘기가 될 것 같다.

우익들을 비판한 부분은 절절이 옳은 것도 많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몹시 마음 불편했던 부분이 적지 않았다. 첫째, 여성천황 문제를 보자. 이 책의 저자는 나름 유명한 저널리스트라 하고, 책 전반에 나타나있는 생각들도 상식적 합리적인 것 같다. 발로 뛴 에세이들을 보면 훌륭한 저널리스트이자 지식인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여성을 천황으로 삼아도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여성을 금지시키는 것은 넌센스이고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성차별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금지조항은 당연히 없애야 한단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의견은 교묘하다. “국민들이 여성천황을 반대하지 않으니, 황실 규정을 고쳐 여성천황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성천황에 찬성하는, 아니 ‘반대하지 않는’ 근거다. 야스쿠니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의견은 “중국과 한국이 싫어하니 참배하면 안 된다”이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래서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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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핵심을 집어 확 미움을 받고 확 존경을 받든가 하지, 애매하게 빠져나가는 태도는...영 찝찝하군요.

딸기 2007-07-11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반적으로 '괜찮은' 내용인데도, 저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요.
옳다, 아니다 판단하지 않고 '괜찮다, 안 괜찮다'로 판단하는 식.
남을 때리고 핍박해서 안 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인 거죠. '그러면 욕먹으니까'가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런데 이 책은 좀 그런 식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