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걸어오시던 뒷집 할머니, 똑바로 쳐다보기만 하신다.
좀더 목소리를 높여서 다시,
안. 녕. 하. 세. 요.
......
그래도 쳐다보기만 하신다.
후다닥 가까이 다가가서 이번에는 확실히 눈을 맞추면서 말해 본다.
안녕하세요.
......
저 밭에 뭘 심었나, 이 개가 멍멍 짖는구나
하고 보듯이 그냥 보면서 슥 지나가신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인사 하기가 좀 두려워졌다

가끔은 내가 인사하기 전에 날 먼저 발견하고
동네 어른이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

"뭐 심어요?"

"고구마 밭 매요?"

"고추 많이 땄어요~?"

이렇게 물으신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나는 좀 당황한다

"아, 예. 그게, 저.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제가 잘 몰라서..."

성실한 답변을 해야 하는 건지,
걸음을 늦추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략해 답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고
간략한 답변을 찾기가 일단 어렵다.
도시에서처럼  '안녕하세요' 하고  싹 지나치면 좋으련만,

지난 봄에 고추를 늦게 심더니만 고추가 제대로 달렸는지
전에 매다 만 도라지밭은 다 맸는지
작년에는 감자를 다 썩혀 버리더니 올해는 감자로 돈 좀 벌었는지
아는 것도 많으니 궁금한 것도 많은 거다  
그러니
"안녕하세요?" ('엇, 너 지나가는구나. 모르는 척 할 수는 없고, 내가 먼저 아는 척 해 주지.')
"예, 안녕하세요?" ('그래, 나도 예의 없는 년은 아니야.')  
이런 대화는 이루어질 수가, 이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나날이 시골 화법에 적응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성공적인 예도 있었다
며칠 전에 혼자 길을 가다가 낯익은 동네 아주머니와 딱 마주쳤다

"어떻게 왔수?" (평일인데 어쩐 일로 여기에 있냐는 뜻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저기 밭에요." ("걸어서 왔죠"라고 말하려다가 대충 '밭에 간다'고 얼버무렸다)
"휴가 받았나 보지?" (오호, 이건 '밥 먹었니?'하고 같은 종류의 물음이렷다.)
"아, 예."  (이럴 땐 진상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지!)
"휴가에 놀지도 못 하고 고생하네."
"하하하, 뭘요." (착! --승리의 브이자 그리는 소리)  

예전 같으면 한참 머뭇거리다가
"제가 사실 서울에 종종 가기는 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일을 하는 건 아니고,..."
라고 설명을 늘어놓다가 듣는 아주머니도 당황스럽게 했을 텐데
매 순간 위기를 넘기고
이렇게 자연스러운 마무리까지! !!

시골 대화법을 완전히 익히려면 대화 상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형식적인 의미가 아니라 '맥락'으로 서로 의사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늘 대화가 뚝뚝 끊기고 서로 머쓱해지기 일쑤였던 나의 과거에 비하면
위의 대화가 저렇게 온전하게 기승전결로 이어진 건 가히 대성공이라 할 수 있는 거디었다

그러다가 문득
뒷집 할머니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상상이 갔다

안녕하냐니,
안녕하지 않을 것도 없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안 쑤시는 데도 없는데
안녕하다고 해야 하나 안녕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전에 얻어 간 배추모는 잘 크는지
고추는 왜 죄다 죽었는지
물어 보려면 그런 걸 물어야지
안녕하냐니
그게 달려와서 소리질러 가며 물어볼 정도로 궁금한 일이냐
무슨 인사가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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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네마을 www.dasalim.com 안방마님 글이랍니다.
재미있어서 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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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07-07-09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시골서는 그저 '식사 하셨어요?' 가 최고의 인사인듯해요 딸기님 ^^

딸기 2007-07-10 10:34   좋아요 0 | URL
저는 시골 가서 인사할 일이 별로 없어서, 생각을 해보지를 않았어요, 실은. ^^

홍수맘 2007-07-1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생각해보니 저희도 "밥 먹어수광~" 또는 "밥 먹읍디강~"이 처음 건네는 인사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