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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그래미는 ‘거물’ 만 좋아해

 

[한겨레 2006-02-15 19:12]    

[한겨레]

슬슬 자리잡아 가고 있는 한국대중음악상 빼곤 이제까지 내세울 상조차 없었던 한국 대중음악계 처지에서 그래미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미에서 상 탔다 하면 그 가수는 영예는 물론, 앨범 판매 증가로 짭짤한 수익까지 얻었다. 그런데 권위를 쉽사리 거부하기 어려운 그래미에 대해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가 쓴소리를 내놨다. 그의 논리는 뭔지 들어봤다.

역시나 이변은 없었다. 보수적 취향과 고질적 편견으로 구축한 그 아성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견고해지고 있었다. 지난 8일(현지시각) 거행된 48회 그래미 시상식은 마치 고집불통 늙은이의 철 지난 응석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래미의 위상은 영화의 오스카와 함께 세계 최대 대중문화시장의 가장 높은 권위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제 그 습관적 인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비평가와 음악인들 사이에서 그래미의 보수성과 편견은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시상식 결과에 극도의 반감이 치미는 이유는 그 ‘전형성의 3종 세트’가 극단에 달했다는 인상 때문이다.

우선 선호도의 편견이다. 그래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들 가운데 하나인 ‘유투’는 이번에도 다섯 개 부문을 휩쓸어 최근 발표한 두 장 앨범으로 총 13개의 트로피를 챙기는 놀라운 대차대조표를 작성했다. 앨범만 내면 수상을 거르지 않는 또 다른 선호 음악인 브루스 스프링스틴 또한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산 열세 번째인 트로피 하나를 할당받았다. 물론 그들이 뛰어난 음악인들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비틀스와 밥 딜런이 고작(!) 6회와 5회 수상에 머물렀다는 기록과 비교하여 과연 순수하게 음악성만이 그 평가의 기준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가 셋(그것도 저 변두리의 가스펠 부문에서), ‘롤링 스톤스’와 ‘핑크 플로이드’와 ‘너바나’가 각 하나씩을 가져갔을 따름이고 ‘비치 보이스’와 ‘레드 제플린’은 구경조차 못해본 것이 바로 그래미 트로피다.

이미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그 만성적 편견은 거침없이 작동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적 미담과 음악적 성취를 혼동하는 속물적이고 인위적인 ‘신화 만들기’도 또아리를 튼다. 90살을 맞이한 노장 기타리스트 레스 폴에게 팝과 록의 연주 부문 트로피를 모두 헌사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레이 찰스의 유작에 몰표를 던졌던 지난 해의 재탕이다. 스티비 원더와 버트 바카락에게 안긴 트로피들은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한 노장들에 대한 의례적인 안배이고, 2000년 재기에 성공한 산타나에게 8개의 트로피를 몰아준 것은 그 극단의 사례일 뿐이다.

노장들의 실력과 역할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미에 있어 그것은, 새로운 경향의 수용이나 새 얼굴들의 발굴에는 극히 까다롭고 좁은 문만을 개방하는, 폐쇄적 태도와 결합하여 부정적 상승효과를 이룬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전통성에 입각한 검증된 스타일과 온순한 신인들만을 선호한 끝에 스스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기를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래미 신인상은 저주”라는 속설은 통계적으로 검증되고 있을 정도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댄스음악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거의 모든 음악전문지들로부터 2005년 최고의 앨범 가운데 하나라는 극찬을 받은 ‘엘시디 사운드시스템’을 들러리로 세우고 10년 경력의 중견 ‘케미컬 브라더스’에게 그 영역에 할당된 트로피를 모두 쓸어 담아준 것을 보라.

폐쇄성·편견 극에 달해
수상자 선정 기준 의문

그래미가 다른 시상식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받아온 것은 ‘음악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명목에 있었다. 그래미와 함께 미국 3대 음악상으로 꼽히는 빌보드 음악상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기계적인 차트 순위 집계와 인기 투표 결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에 비해, 음반업계 종사(경력)자들로 구성된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에 의해 상의 향배가 결정되는 전문성을 샀던 것이다. 그러나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가 갈수록 심화하면서 그 전문성이라는 것이 근래 들어서는 수구적 태도로 현격히 퇴색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영국 쪽의 분석이 흥미롭다. 16일 오전(현지시각으로는 15일 밤) 개최되는 영국 최고권위의 브릿 어워드를 앞두고, 거대 음반 유통업체 ‘에이치엠브이’의 제나로 카스탈도는 “그래미는 유투나 머라이어 캐리 같은 업계의 거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주류 음악계를 축하하고 기뻐하는 데 반해 영국은 새로운 재능의 출현에 축하하기를 고대한다”는 말로 브릿 어워드와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브릿 어워드의 주요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주류와 인디를 막론하고 역동적 신인들과 새로운 경향에 커다란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집착하느라 미래를 보지 못하는 그래미의 편견에 비해 브릿 어워드의 상대적으로 열린 시각은 다가올 음악계의 경향에 대한 전망의 단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롤링 스톤> <엔엠이> <스핀> <큐> 등 영미의 대표적 음악전문지들이 내놓은 2005년 결산자료들을 분석해보면 그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좀더 진보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비평가들의 분석을 거친 그들의 결론에서 몇 가지 확연한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1980년대 뉴웨이브를 연상시키는 모던 록 밴드들의 약진과 포크·컨트리에 바탕을 둔 싱어-송라이터와 밴드들의 세력 확산, 그리고 실험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친화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테크노 계열과 미국 주류와는 달리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영국 힙합의 도약 등이 그것이다.

신인엔 ‘냉랭’…흐름 뒤처져
맹목적 그래미 신뢰 거둬야

아직은 음악산업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지만, 대중음악계의 혁신이 거의 언제나 인디를 통해 주류로 분출해 나왔었다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저변의 움직임은 2006년 음악계 기상도의 예측 가능 범위에서 가장 유력한 경향이라고 할 것들이다. 물론 그래미는 그 중 어느 것도 포용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래미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거두어들일 때다. 대중음악의 본향이자 최대 시장으로서 미국의 저력은 인정하되, 그들 음악산업의 세계 지배를 의도하는 서커스에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대중음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보다 냉정하고 넓은 시각으로 음악계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필연적 요청이기 때문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솔직히 유투가 계속 타는 거 보기 좀 그랬는데.....우리나라 시상식만 욕할게 아니네요,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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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간비행 2007-05-1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글 제가 쓴게 아닌데요 ㅋㅋㅋ

책읽기는즐거움 2007-05-1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니고 그냥 윗 글에 대해서 의견을 적어 본거에요ㅋㅋㅋ
이거 어차피 몇년전 이야기 이잖아요ㅋ
오랜만에 본 글이라 반가워서(?-_-;;;;) 적어 본겁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