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ona Apple - Extraordinary Machine
피오나 애플 (Fiona Apple)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예전엔 그저 무턱대고 앨범을 사도 후회하는 법이 그닥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즘에는 앨범 사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하드락만 아니면 다 소화해내던 잡취향이 그새 바뀌어 버렸던 건지,앨범 구매욕은 불타올라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그와 반대로 많은 앨범들이 쏟아져 나와도 막상 손을 뻗치게 하는 앨범이 없었던겁니다. 이렇게 곤란스러울 때가. 이제는 모던 락 계열도 그저 그랬고,힙합도 그저 그랬고,재즈는 듣기만 하면 졸리기 일쑤라서 그저 멍하니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분명히 예전에는 안 그랬었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슬럼프에라도 빠져버렸는지 무뎠던 제가 상당히 까다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상. 팝 음악을 접한 초기에는 하루에 몇 시간을 똑같은 아티스트의 앨범 듣기에 소비해도 질리지 않더니,요새는 막 접한 앨범이라도 두세 번만 들으면 질려버리는지라 음악 듣기가 싫어질 정도로 곤란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접한 앨범이 바로 피오나 애플의 세 번째 앨범인 'Extraordinary machine'인데요. 저는 이 앨범을 통해 피오나 애플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첫 데뷔 앨범인 줄 알았는데 이미 세 번째 앨범까지 낸 탄탄한 실력의 뮤지션인지라 살짝 당황하기는 했었습니다. 그래서 앨범을 듣기 전에 먼저 사람부터 파악해보자,해서 인터넷에서 그녀의 신상정보에 대해 잠깐 알아봤는데 1977년생이라 하니 이제 미국 나이로 29살이 된 셈입니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녀의 성숙한 보컬 처리에 비해 본다면 적절한 나이로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어쨌든 첫 앨범이 피오나가 19살일 때,그러니까 96년 도에 발표되었답니다. 이 앨범은 순식간에 300만 장이 팔려나갔고,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그 해 그래미에서 네 개의 상을 안겨 주는 등 대단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피오나 애플은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그녀의 어린 시절은 대단히 불우했다 합니다. 성폭행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8살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 때문에 학교도 1년에 몇백 번을 빠지고,자기 혐오감에 시달렸을 정도로 지독했다 하더군요. 그래서 피오나 애플의 음악에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이 빼곡히 녹아있습니다. 세 번째 앨범인 이 앨범에선 예전보다 약간 밝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경향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그녀의 음색에는 다채로움이 가득 베어져 음악을 듣는 청자의 귀에 천천히 번져갑니다. 그녀는 락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장르에 매여있는 음색이 아니라,소울,재즈,R&B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의 포용력을 지녔다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첫 번째 트랙 'Extraordinary machine'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치 만화영화 속에서 고양이가 살금살금 리듬을 타며 걸어갈 때나 나올법한 독특한 음악에 맛깔스럽게 자신의 음색을 실어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트랙 'Get him back' 같은 경우에선 또 얘기가 틀려집니다. 여기에선 바로 그녀만의 락 스타일이 묻어납니다. 밑 배경으로 깔고 있는 피아노 연주는 통통 튀는 그녀의 음색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 트랙 'Oh sailor'는 첫 싱글로 커트되었는데요. 6분 28초라는 긴 시간에 이 앨범의 정수를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강한 스파크로 치고 들어오는 피아노 반주가 묘한 느낌을 청자에게 선사합니다. 그리고 다채로움 속에 베인 피오나의 성숙함으로 이끌고 들어갑니다. 항상 세련되고,목가적이라고 생각되었던 피아노 반주가 장엄하게까지 들립니다. 곡 중간부터 치고 들어오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그간 그녀의 아픔 속에 감춰져 있던 내면을 청자에게 들려줍니다. 반면에 네 번째 트랙 'Better version of me'에서는 약간 분위기를 바꿔서 탭댄스를 추는 마냥 쿵쿵 울리는 비트로 분위기를 몰아갑니다. 마치 영국의 술집인 펌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다섯 번째 트랙 'Tymps'에선 박수 비트 위에 그녀의 약간 달뜬 음색이 올려집니다. 그간 고독했던 자신의 모든 걸 스스로 위로하는 듯이 피오나는 어려워하지 않고 쉽게 노래를 풀어내고,우아한 와인향에 젖은 냥 자신의 노래를 듣는 이를 중독시켜버립니다. 여섯 번째 트랙 'Parting gift'는 고요한 피아노 반주 위에 쓰디쓴,그러나 강렬하게 불러냅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몰아 일곱 번째 트랙 'Window'는 강렬함을 배가시켜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 듯 표현합니다. 또한 아홉  번째 트랙 'Please please please'와 열 번째 트랙 'Red,red,red'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열 번째 트랙이 좀 더 피오나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피오나 특유의 우울함이 지배하지만,그 와중에도 중세에 나올법 듯한 약간은 소름끼치는 분위기와 묘한 매력이 뒤엉켜 있거든요. 열 한 번째 트랙 'Not about love'는 경쾌한 듯 하지만 오케스트라 반주의 장엄함이 피오나의 기교와 꽉 맞물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쾌함과는 다른 그것을 들려줍니다. 오직 피오나가 표현할 수 있는 것,그리고 그녀의 음악 속에서만 찾아낼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집약해놓고 있다 할까요.

피오나 애플의 음악은 단순히 평범한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으로 보기엔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음악에 짙게 남아있는 기괴한 분위기에 스며든 처연한 슬픔을 좀 더 맛보고 싶으시다면,그녀의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을 들으신 후에 이 앨범을 들어보시라고 권합니다. 음악은 그 음악을 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합니다. 현재,팝 음악계를 지배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은 섹시 컨셉을 내세우고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지만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맛보고 싶으시다면 피오나 애플의 이 앨범은 어떨까요. 어두움 속에 묻어난 그녀의 독특한 우울함을 접하신 후에는 잠시 모든 게 나른해지고 피곤해져서 모든 것에 손을 떼고 무기력하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머리 속에 각인되는 음악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느끼셨다면,이미 피오나 애플은 '중독'이라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듣는 이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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