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나고 집에 오다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만 오천원이 나왔다. 씨디나 살까. 해서 바로 음반 가게에 들렸었다. 그것도 혼자. 나는 혼자 음반 가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음반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이 앨범을 발견했다. 케이티 턴스텔. 낯선 이름이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몇 번 봐서,보관함에 저장해놓고 있었던 앨범이었다. 다른 앨범을 살까. 그냥 가볍게 들을까,해서 애슐리 심슨 것도 고려해보고. 개인적으로 애슐리 심슨의 허스키한 음색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브룩 발렌타인 것을 살까 한번 보고. 블루 베스트는 어떨까. 아니면,백스트리트 보이즈? 아니면 좀 예전 음반? 마돈나나,좀 시끄러운 섹스 피스톨즈? 아니면 재즈로 전향? 난 수차례 고민하다가 결국은 케이티 턴스텔을 선택했다. 그냥 묘하게 앨범 자켓에 끌렸다.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만지고 있지만 표정은 잔뜩 뭔가에 차 있는 모습. 그녀의 정지된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그래,한번 들어보지 뭐. 옥석은 밝은 곳에만 있는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결국은 씨디 하나 달랑 든채로 전재산을 다 쓰고야 말았다. 집에 와서 찬물로 샤워하고,얼음물을 마시면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아…순간,감탄사가 샌다. 바로 이런 거였어,이런 게 느릿느릿하지만 울림이 있는 음악이야. 요즘엔 십대 중반에 데뷔하는 애들이 마구 쏟아지는데,이 여자는 아주 늦깍이인 29살에 데뷔 앨범을 냈구나. 확실히,확실히-무언가 성숙한 기량이 넘쳐 흘렀다. 결코 빠른 음악은 없다. 그리고 시끄러운 음악도 없다. 그냥 조용히,느긋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녀의 음색에,그녀의 음악에 사람을 묘하게 홀리는 매력이 있다. 멍하니 듣고 있어도 귓 속을 제대로 파고드는,마음 속에 가느다란 빛 줄기 하나 남기는 듯한. 이렇게 좋은 음반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 아무리 깊게 숨어있어 잘 알려지지 않아도,누군가를 이끄는 울림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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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5-08-09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님의 모습을 보니 저의 예전 학창시절을 보는 듯 하네요..저두 혼자서 레코드숍이랑 비디오 도매상을 기웃거리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저두 한번 들어보고 싶은 음악이네요

야간비행 2005-08-0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키노님도 그러셨구나ㅋㅋ저도 자주 그래요,그래서 친구들이 약간 놀려요....혼자 심각하다구요,하지만 그게 좋은걸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