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모순이다. 부인하려고 해도 언제나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외면하거나,아니면 조급한 세상사에 쫓겨 그저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머리 속에서 맴도는 생각이 바로 저것이었다. '양귀자'의 소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두 권을 읽은 셈이다. 첫 번째는 원미동 사람들,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저 모순. 이야기는 그저 평범하게,소소하게 시작된다. 안진진이라는 여자의 어머니와 이모,아버지,그녀의 동생,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사랑했던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들. 여기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로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다. 안진진은 언제나 들쑥날쑥 집을 들락거리다가 결국은 행방이 묘연한 아버지 때문에 억척스럽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어머니를 부잣집에,공부잘하는 딸과 아들을 두고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이모와 비교하며 살아왔다. 더군다나 그녀의 남동생은 조직에나 가담하고 사고 치면서 살고,그녀가 사랑하는 한 남자 '김장우'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진사이며,또 그녀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 '나영규'는 모든 게 완벽하고 토씨 하나 달 것 없는 잘나가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의깊게 본 부분은 그녀가 사랑하고 있는 남자들에 대한 얘기도,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얘기도,사고 치는 남동생에 대한 얘기도 아니었다. 내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와 이모에 대한 얘기였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이모는 누가 봐도 전혀 닮지 않게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모순. 그러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정말 살아야겠다고 이를 악문 사람은 누구보다도 뼈빠지게 고생하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걱정 없고,모든 것이 완벽한 생활을 하던 섬세한 성격의 이모는 그녀의 남편도,유학한 자식들도 아닌 자신의 조카 '안진진'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바로 이것이 두 번째 모순이다. 나는 아직도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일까. 하지만 이모가 자살하고 나서 남긴 유서를 주인공이 덤덤히 읽어나가는 부분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 책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짧지만 괴로움이 있기에 인생은 길어지는 것이라고. 여기 이 말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거라 본다. 하지만 더욱 모순인 건,이모의 그런 죽음을 봤으면서도 결국 주인공은 '김장우' 대신 '나영규'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해 '모순'을 만들어내는 결말이었다. 주인공은 '나영규'를 선택해 자신의 삶에서 모순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싶다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

" ……나,이제 끝내려고 해. 그 동안 너무 힘들었거든.……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네가 이 편지를 읽을 시각이면 나는 아마 떠났을 거야. 그때 나한테 와 줘. 와서 나를 수습해 줘. ……진진아. 너무 빠르게도,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마. 내 마지막 모습이 흉하거든 네가 수정해 줘. "

p.s 여기 나오는 주인공의 이모는 읽으면서 내내 우리 막내이모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 막내이모는 정말 힘들게 사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모'와는 달리 너무나도 힘들게 사는데. 그런데도 자상하고 부드럽고,항상 나긋나긋한 성격이 닮았던 걸까. 그래서 나는 더 펑펑 울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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