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 - Nevermind [2CD][Deluxe Album] - Nevermind 20주년기념앨범
너바나 (Nirvana)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1990년대는 어떤 시대였었나? 규정을 할 수도 정의를 내릴 수도 없지만, 10대와 20대를 겪은 그 시절은 '혼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바나를 안 것은 1994년 초의 일이다. 그러니까 『신경쓰지마(Nevermind)』 앨범으로 전 세계를 후려친 1991년이 지나고 2년 여의 세월이 흐른 때다. 당시 나는 건스 앤 로지즈, 메탈리카를 거의 숭배했었고 메가데쓰, 슬레이어, 판테라, 카니발 콥스 등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척 했었고, 본 조비와 스키드 로우, 마이클 잭슨 등은 정말 좋아했는데, '이건 롹이 아니야'라며 멀리했었다. 참으로 편협적이고 편견에 가득찬 10대의 목록이랄까. 좋아하던 좋아하는 척 하던, 이들 목록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상당히 "glamorous"했다는 점이다. 단 한 소절, 단 하나의 리프 조차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꽉꽉 채우는 과장/과잉의 음악들. 10대가 바라는 완벽한 이상향을 그린 듯한 이 멋진 음악들! 이 이상향을 깨뜨린 게 바로 너바나였다.  

당시 핫뮤직에서 너바나를 하도 많이 언급했기에, 음악적 영혼을 교류하던 친구에게 부탁해 너바나의 음반을 빌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검증되지 않은 것에 모험을 거는(돈을 지불하는) 데에 놀라울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그 때 빌린 음반이 발매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자궁 내에(In Utero)』였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오디오 데크에 카세트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거친 기타와 절규. 이 음반의 충격은 고블린의 『서스페리아(Superia)』나 라디오헤드의 『복제인간(Kid A)』의 충격을 뛰어넘는 정말 원초적인 울림이었다.  

뭐 좋게 말해 이렇게 그럴싸하게 표현했겠지, 당시 느낌은, "이게 음악이야?" 하고 분노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분노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이 있었다.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계속 머릿속에는 그 거친 기타와 그의 절규가 계속 따라다녔고, 그렇게 난 너바나의 앨범들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례가 막 끝났을 때 갑자기 들려온 그의 죽음.  

어쨌든, 그의 죽음으로, 그의 음악은 더욱 공고해지고, 그 나머지는 알려진 바와 같다. 나도 그의 음악을 참으로 꾸역꾸역 들은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내겐 이 『신경쓰지마(Nevermind)』 앨범만큼은 영 아니었다. 좋긴 한데, 왠지 위화감이 느껴졌었달까? 아마도 살아 생전 성공을 두려워하고 증오했다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작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으로 그는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시대의 아이콘이 됐으며, 마지막으로 전설이자 신화가 됐으니까. 게다가 히트 싱글인 「십대 영혼 같은 내음(smells like teen spirits)」은 커트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공공의 적'이 됐잖은가! 그러므로 그 이후의 앨범 -『근친상간살해(Incesticide)』는 컴필레이션이므로 제외-에서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노래를 만들고.  

그런데 난 왜 이 앨범을 -그것도 CD와 LP로 가지고 있는- 왜 또 샀을까?  

그것은 그-의 음악-가 추억속의 박제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10대에 어떤 계산없이 단순히 마음에 끌려 만났던 그 수많은 뮤지션들은, 각기 제 갈길을 가고, 나도 내 갈길을 걸어왔다. 때로는 같은 길을 걸은 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어느 순간 갈림길에서 서로 헤어졌다. 위에 언급한 뮤지션들의 앨범을 난 더 이상 듣지/사지 않는다. 그들이 노래하는 세상, 이상, 꿈 등을 나는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나에게 쏟는 시간이 적어질 수록, 나는 그렇게 벽을 쌓아간다. 취향은 넓어지지 않고 공고해질 뿐이다.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그러니까,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순진한/멍청한 10대는 이제 여기에 없고,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그때의 불완전하고, 무규칙적이며, 이상향을 꿈꾸던 10대를 그리는 Old Man만 있을 뿐이다.  

다시 듣는 『신경쓰지마(Nevermind)』는 '의외로' 좋았다. 어떻게든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하는" 그들의 모습이 느껴졌달까? 그도 결국 공명심에 불타는 평범한 젊은이였고, 그 성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길 원하는 심약한 청춘이었다.  

그러니까 그도 인간이었다는 사실. 그의 죽음은 순교가 아니라는 사실.  

30대에 듣는 너바나는 정말로 참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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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0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1-10-21 09:05   좋아요 0 | URL
저는 너무 말랑말랑해서 못들었었어요. 4집부터 듣기 시작해서 그랬나...

그리고 커트가 이 앨범에 있는 '십대 영혼 같은 내음'을 콘서트에서 연주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커트는 정말 이 앨범을 싫어하는구나"는 순진한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멀리한 것도 이유가 될 듯 해요. 참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있어서 '십대 영혼 같은 내음'은 쪽팔림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못받아들인 것을 지금 받아들이는 것은, 여유가 생겨서일까요, 제가 그만큼 성장해서일까요, 아님, 그냥 모든 것에 무디어져서일까요?

치니 2011-10-2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mek 님은 라스트데이즈 보셨을 거 같은데, 보셨나요? 커트 코베인 얘기라는 이유만으로도 절절하게 근 일 년 이상 기다려서 봤던 영화. 저는 참 좋았드랬어요. :)

Tomek 2011-10-21 13:27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안 봤어요. 제게 있어서 커트 코베인 전기 영화는 이미 머릿속에 정해져있어서... 예전 키노에서 "꼭 만들어야 할 음악인 영화" 목록에서 (거의 반 농담삼아) '타르코프스키가 커트 코베인 전기 영화를 만든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쓴 글이 있었는데, <희생>과 커트 코베인의 죽기 전 1주일을 믹스한 패러디 물이었죠. 속세와 연을 끊고 가족과 단란하게 살고 있는 커트, 선물을 들고 방문한 크리스트와 데이브, 그리고 이후로 공연장이 무너지는 꿈을 꾸고, 우유가 쏟아지는 기현상을 겪는 커트...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ㅎㅎ 당시 브래드 피트가 캐스팅되면 딱이었을 것이란 얘기도 있었죠. :)

아... 그냥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라스트 데이즈> 봤으면 그 망상을 지워버렸을텐데. 전 제가 가지고 있는 망상마저 없어지기를 두려워하는가 봅니다...

치니 2011-10-21 16:38   좋아요 0 | URL
보셔도 망상 유지에 균열은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
함 보세요 ~

Tomek 2011-10-22 07:29   좋아요 0 | URL
그럼 함 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