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CinDi영화제 프로그램 및 상영작 (8.17~23)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5-1. 박종철 감독의 <수선火>는 보는 내내 불편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종근은 좁은 동네 안에서 사사건건 가게 주인들과 일을 벌인다. 종근의 말이나 행동은 언뜻 보면 다 옳은 소리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소비자- 중심의 우격다짐이다. 종근은 "앞에선 찍소리 못하고 뒤에서 호박씨 까는 한국 놈들"을 경멸하는, 그래서 초지일관 앞에서 호박씨를 까는 "인간 말종"이다.  

종근의 이런 행동은 영화를 보는, 일상에서 찍소리 못하고 대부분 "참고 사는"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켜야 하지만, 그저 이해하지 못할 답답함과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함만을 느낀다. "4년제 대학을 나온 고급 인력"의 분노 표출? 하지만 그의 분노는 조그마한 동네의 영세 상인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의 싸움. 그렇게 종근의 인생은 한심하게 흘러간다. 

 

 

5-2. 이창희 감독의 <소굴>은 정말 잘 짜여진 스릴러다. 한 여기자가 기사 송고를 위해 시골의 PC방에 간다. 밤이 깊자 그 곳엔 단 몇 명의 남자들만 남고, 기자는 자신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들의 "소굴"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시도를 벌인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영화란, 지금 보여지는 상황이 "말이 돼냐 안 돼냐" 보다는, "그럴 듯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다. <소굴>의 이야기 전개는 가끔 불필요한 장면들이 나와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그 모든 장면들의 분위기와 이야기 전개가 정말로 그럴듯해 보여, 그런 사소한 장면들은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단 한마디의 대사 -"시끄럽다잖니."-로 평범한 공간을 단숨에 공포로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감독의 발군의 센스는 정말로 뛰어나다. 

<소굴>에서 여기자와 같이 있는 남자들은 모두 범죄자임이 분명한 인물들이지만, 이들이 정말로 여기자에게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은 여기자이고, 이들 남자들의 행동들은 정당방위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의 여기자의 목에 잔뜩 묻은 피조차 남자의 피가 아닌가. 

별 곳 아닌 장소에서 별 것 아닌 행동들만으로 보는이의 긴장을 한껏 끌어올린 이창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5-3.  최진성 감독의 <이상,한 가역반응>은 1936년, 동경으로 어떻게든 건너가려는 천재 이상의 시도를 그리고 있다. 인물들의 대사나 사운드는 차단되어 있고, 마치 무성영화처럼 음악과 이상의 시가 내레이션+자막으로 나오고 있다.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내레이션은 이상의 작품에서 따와 가뜩이나 몽롱한 영화에 기이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계속 특정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들은 마치 이상의 시(詩)들을 영상으로 찍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처럼 보이는데, 마치 예전에 일본에서 출시한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 DVD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로운 시도이긴 하지만, 마치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다른 쪽으로 이해의 촉수가 뻗어나간 경우이겠지만 말이다.  

 

5-4. <수선火>, <소굴>, <이상,한 가역반응>은 8월 21일 13시 30분, 8월 23일 17시, 두 번 더 묶음 상영한다. 

 

 

6. 비묵티 자야훈다라 감독의 <버섯>을 상영 리스트에 넣은 이유는 단 하나, "인도 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디를 경험한 이후로는 영화를 국가별로 나눈다는 것이 별 의미 없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편의상 그렇게 나누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춤추고 노래하고 가끔 대책 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지독한 낙천성이 빠진 인도 영화가 존재하기는 할까?"하는 이 단순한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버섯>은 지금껏 봐왔던 인도 영화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영화다.  

영화의 진행은 친절하지 않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숲에 오고, 한 남자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도망친다. 그리고 그 숲에서 (아마도 유럽 출신의) 탈영한 군인이 마치 유령처럼 등장한다. 그는 국경을 넘는 100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숲에 고백한다. 그는 숲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지만, 숲은 그 비밀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갑자기 영화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고층빌딩 숲(!)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건축사 라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미친 동생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동생이 숲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동생을 찾으러 숲으로 간다. 

자연의 숲과 (거대 건물로 이루어진) 인공의 숲, 미친 동생과 정상인 형. 영화는 대비를 하지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동생의 관점으로는 도시에 살고 있는 형은 공포의 대상이다. 형은 미친 동생을 자신의 품에 가두고 싶어한다. 숲의 관점에서는 거대 빌딩으로 이루어진 도시는 필요악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 없이는 살 수 없다. 비묵티 자야훈다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공존"을 이야기하고자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는 다양한 언어, 종교, 인종이 서로 어우리져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이루는 인도에서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스리랑카 태생이다.) 

버섯은 잔균류로 다른 생물에 기생하며 자란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고층 빌딩들은 우리 시대의 "버섯"들이다. 버섯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이 존재해야 버섯이 존재할 수 있다. 무분별한 개발의 시대에 우리는 너무 당연한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게 아닐까. <버섯>은 이런 당연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8월 21일 17시에 한 번 더 상영한다. 

 

   

7-1. 토니 힐 감독의 <교차로의 오아시스(North Cross)>는 영국 플리머스의 북부 교차로에서 찍은 영상이다. 이 교차로의 윗부분은 차가 다니고 아랫부분은 보행자 통로로 사용된다. 감독은 아주 카메라 조작을 통해 윗부분과 아랫부분, 차량의 흐름과 사람의 흐름을 다른 속도로 담아낸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감흥-리듬을 느낀다. 마치 속도에서 튕겨져 나갈 듯한 차량들과, 한없이 느려져 누군가가 끌어 당기는 듯한 사람들의 걸음 걸이. 단순한 조작만으로도 세상의 시간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영화만의 연금술. 

 

7-2. 토니 힐 감독의 <라반 댄스(Laban Manoeuvres)>는 프레임의 장난이다. 감독은 프레임 구조물에 카메라를 달고 영상을 찍는데, 그는 카메라의 프레임 조차 나누어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상들은 미셜 공드리가 작업한 뮤직비디오나 CF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미셸 공드리가 수학적인 계산을 통해 나온 탄성을 자아낸다면, 토니 힐의 작업은 우연성에 기댄 듯한 느낌이 든다. 카메라와 거울을 통한 데칼코마니? CG가 아닌, 단순한 카메라의 고전적 조작으로 이런 감흥을 불러 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7-3. 밥 세비스턴 감독의 <디지털 로토스코프 놀이공원(The Even More Fun Trip)>은 새로운 체험이다. 이 영화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짧은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밥 세비스턴은 이 평범한 다큐멘터리에 로토스코프 기법-영상 위에 그림을 그린 기법-을 사용해 전혀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로토스코프를 통해 이 개인적인 영상 기록은 감독의 주관적인 느낌이 깊이 베어들게 되고, 그 당시 상황의 느낌을 그림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같은 기법을 사용한, 그리고 감독이 참여하기도 한 <웨이킹 라이프>, <스캐너 다클리>가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의 연기를 낯설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면, <디지털 로토스코프 놀이공원>은 평범한 것을 새롭게 보이게 한다. 애니메이션처럼 완벽한 창조와 통제가 아닌, 배우들이 이루어 놓은 상황을 감독의 의도에 맞게 수정/강조하는 로토스코프 작업은 아마도 아직도 진행 중인 새로운 효과임은 분명하다. 

 

  

7-4. 우로 피코프 감독의 <몸의 기억(Kehamälu)>은 무시무시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기차 화물칸 안, 그 안에 털실 모양의 인간들이 있다. 열차 바깥의 거대한 힘이 이들의 털실을 하나씩 잡아당기기 시작하고, 한 명씩 털실이 당겨짐에 따라 형체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절규하기 시작한다. <몸의 기억>은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즉각적으로는 몸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천천히 그러나 고통스럽게 진행되는 죽음, 그 고통을 안고 사는 우리들, 그리고 그저 지켜만보는 우리들 그리고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고 말 우리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향해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고통은 순전히 우리의 몸이 느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7-5. 고시마 카즈히로 감독의 <3D 입체 도쿄 풍속도(東京浮絵百景)>는 도쿄의 일상을 3D로 보여준다. 3D의 효과는 굉장한 것이 아니고, 어렸을 때 장난감 카메라에서 봤음직한 간단하지만 독특한 기술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아바타>로 시작된 3D 효과에 대한 광풍이, 실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3D라는 효과는 신기루도 엄청난 기술도 아닌, 우리가 예전부터 봐왔었던, 이런 단순한 효과가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우리에게 3D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의 개입으로서의 3D가 아닌, 그저 바라보는 풍경으로서의 3D.  

 

7-6. <교차로의 오아시스>, <라반 댄스>, <디지털 로토스코프 놀이공원>, <몸의 기억>, <3D 입체 도쿄 풍속도>는 <익스트림 3>이라는 이름으로 8월 22일 20시에 한 번 더 상영한다. 

  

 

8. 케빈 맥도널드 감독의 <라이프 인 어 데이(Life in a Day)>는  2010년 7월 24일 하루 동안 자신들의 일상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린 전 세계 192개국 8만편 이상의 비디오들을 다시 편집해 한 편의 영화로 완성한 영화다. 7월 24일, 전 세계의 평범한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영화는 우리들이 찍은, 우리들의 희노애락, 생노병사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지만, 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 그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그냥 보는 순간만으로도 가슴 찡하다. 이 영화의 위대함은 우리가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이기에. 

<라이프 인 어 데이>는 아쉽게도 신디에서의 상영이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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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영화 창피해를 봤던 사람으로
간만에 검색하다 (우연히)블로그 방문하게됐어요.
포스팅하신거에 창피해를 보고싶단 언급이 몇구절있더군요..

(갑작스런말일수도있지만)
실제 동성애에 대해 혹 편견없이
열린맘으로 이해하시나요?
저는 이반(동성애자)을 개인의 개성이고, 취향이라 생각하며 이해해요. 편견이나 이상하게 생각하는거야말로
이상하다생각해요. 왜냐면 육체적인성이 아닌 마음이나 영혼에 끌리는게 진정한 사랑이라생각하니까요.
여튼 제가 쪽지드린이유는, 편견과닫힌맘이 많은 사람들중에서 혹시 열린맘을 가지신분이면 소통하는 친구되고싶어서요.

Tomek 2012-04-19 14:54   좋아요 0 | URL
이 세상에서 '사랑해선 안 될 사랑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

:)

2012-04-19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0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0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0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0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1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happy 2012-04-2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모쪼록 제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에또 들(려도되죠?)^^ 늘행복하시길바래요.

Tomek 2012-04-23 09:47   좋아요 0 | URL
네. 볼 건 없지만 종종 놀러오세요~
:)

저 역시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