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CinDi영화제 프로그램 및 상영작 (8.17~23)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0. 그러니까 이건 작년에 썼던 "제 4회 신디 영화제 ~"의 연장선상 혹은 속편격 되겠다. 

 

1. 작년에는 정말 "멋모르고" 참석해 "정신없이" 영화들을 즐겼었다면, 올해는 작년과는 달리, 좀 더 자유롭게 - 멀찍하니 떨어져서 영화제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작년과 똑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영화제이지만, 이번 영화제는 어떤 "센세이션"이나 "스캔들"이 없는 관계로, 조금 그 열기가 식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신디의 이번 모토는 "필름과 디지털의 공존(맞나?)"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필름" 영화들도 다수 상영한다."디지털"이라는 단어에는 "새로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번 5번째 신디는 그 "새로움"을 잠시 접어두고, "공존"을 모색한다. 이 행보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퇴보/정체"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들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은 이번에 초대된 100편의 영화들이 답해줄 것이다. 

  

2. 알란 자마니 에스마티 감독의 <오리온(The Orion)>은 이란 영화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이란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자파 파니히 감독의 "동화" 같은, 당대의 현실을 교묘히 피해간 영화들이었다. 그나마 이란의 사회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마르얀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정도였을까? 현실에선 손목을 자르고 코를 베어가는 끔찍한 모습이 벌어지지만, 영화에선 짝궁의 공책을 돌려주려는 웃음이 베어나는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아온 내게 <오리온>은 묵직한 충격을 전해주었다. 

영화는 여주인공 엘함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처음에 영화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엘함은 무슨 수술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그녀의 애인인 아미르는 "불법" 수술 준비에 분주하다. 하지만, 이웃의 신고로 이들은 체포된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엘함이 행하려는 수술은 정말 "어이가 없는" 수술이다. 하지만 이 "어이없음"이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여성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엘함"과 "아미르" 쌍방간의 합의에 비롯된 일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엘함에게 돌아간다. 아미르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지만, 그 책임은 엘함의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황무지에서의 무시무시한 소동극은 안타깝기 보다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아미르와 친구들이 "불법 수술" 때문에 구치소에 머물러 있을 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밖을 보기 위해 창문을 만들었는데 왜 그 위에 커튼을 다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종교가 만들어졌을 것인데, 지금의 이란은 종교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로 인해 생기는 이 웃지못할 끔찍한 아이러니들. 이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창문은 왜 만든 것이었을까? 

8월 21일 14시에 한 번 더 상영한다. 

  

3. 쉬통 감독의 <풍비박산>은 -감독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초여름>, <점술가>에 이은 "유민 3부작"으로 그는 연속적으로 중국의 최하층민-농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풍비박산>의 원제는 탕 씨 노인(老唐頭)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풍비박산"이라는 제목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탕노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모조리 "풍비박산"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냥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정치적/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어찌됐든 삶을 견뎌내야 한다. 그 안에서 아버지와 자식간에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의절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삶의 방법일 뿐, 그것을 윤리적으로 재단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영화 중간에 돼지를 도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굉장히 사실적으로(잔인하게) 찍혔는데, 이상한 것은 이 장면이 굳이 영화의 내러티브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은 왜 이 장면을 넣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깔끔하게 도축된 고기를 정육점에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를 찍는 감독들은, 그 깔끔한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돼지를 죽이고 털을 밀고 부위별로 분류하는 고통 아닌 고통을 겪는다. 쉬통 감독은 자신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그만큼 고통스러움을 직접적으로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편안한 객석에 앉아 그들의 고통을 음미하는 우리들의 행위는 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8월 22일 13시에 한 번 더 상영한다. 

  

 

4. 오영두 감독의 <에일리언 비키니>에 대해 할 말은 많지않다. 아니, 솔직히 많긴 한데 하지 않으련다. 악평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내가 지지하지 않는다/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그 영화가 엉망일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이 영화는 "임성한 작가가 <지구를 지켜라>를 썼다면 나올법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진짜 임성한 작가가 썼다면, 훨씬 재미있고 찰지게 썼을 것이다. 지나친 임성한식 정보 나열은 가뜩이나 짧은 영화를 진저리나게 질리게 만든다. 온갖 금기는 다 튀어나오지만, 그저 나열에 그치고 만다. 만약 이 영화가 "무의미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찍은 영화라면, 영화는 100% 그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무의미의 의미"가 "무의미"인 것을 굳이 75분의 시간을 버려가면서 깨달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저 무의미한 것일 뿐인 것을. 

8월 22일 17시에 한 번 더 상영한다. 

  

4-1. 한마디 더 보탠다면, 원래 일정은 어제 한 편 더 볼 예정이었으나, <에일리언 비키니>를 보고 그냥 집에 와버렸다. 

 

4-2. 한마디 더 보탠다면, 원래 어제 바로 정리할 글이었으나, 이 영화의 충격으로 폭음하고 오늘 아침에야 멍한 정신으로 끼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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