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날씨 게릴라성 집중호우.  

영화제에 참석하면서 다짐했었던 한 가지는, 모든 영화에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이었다. 난, 영화에 대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쟁작들을 보면서, 내 마음이 열렸다는 것을 확인한 것 대신, 내 취향이 더 확고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난, 모든 영화에 대해 이미 나만의 기준을 정한 것이 아닐까? 성장했다는 점에서는 기쁜 발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화를 받아들이는 다양성에서는 갇힌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번 신디 영화제를 통해서, 내 자신이 고착화 된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닐는지. 이제 영화에 대해 더 이상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힘든 일일까?  

 

츠보타 요시후미 감독의 <미요코(美代子阿佐ヶ谷気分)>는 아베 신이치의 동명 만화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만화가인 아베 신이치는 애인인 미요코를 주제로 만화를 창작한다. 그는 미요코의 일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나, 그런 방법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의 만화를 위해서 미요코의 생활은 점점 끔찍하게 망가지기 시작하고, 아베는 정신 분열에 시달린다.  

츠보타 요시후미 감독은 창작자와 뮤즈의 끔찍한 관계를 무시무시할 정도로 그려낸다. 아베가 미요코의 일상을 만화로 끌고 왔을 때, 만화(라는 예술)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그와 미요코의 일상은 지옥이 된다. 이 이야기는 예술을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가 점점 '재미있는' 만화를 그릴수록, 현실속의 미요코는 처참하게 망가진다. 영화 초반, 아베 신이치를 보면서 다자이 오사무를 언급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요코>는 일정부분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을 관음증 혹은 도착증 환자로 끌어내려 버린다. 아베가 미요코의 친구인 미치코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이나, 미요코와 가와모토에게 억지로 섹스(라기 보다는 강간, 아니 윤간)를 하게 하는 모습은, 불편함을 넘어서 고통을 느끼게 한다. 창작자의 고통은 이렇게 힘든 것일까? 감상자는 예술가의 창작물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미요코>는 이 불편한 질문을 시종일관 내내 끌어안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 <미요코>는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실제 아베 신이치(安部愼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이 사실은 영화의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에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난 실제 아베 신이치와 영화 속 아베 신이치 사이의 간극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영화 바깥의 영화, 텍스트 바깥의 영화임 동시에, 인터넷 검색의 영화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영화가 도착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이런 영화는 받아들이기 힘들게 느껴진다. 영화란, 정말 얼마나 따라가기 힘든 예술인가!  

 

왕 유린, 에세이 라우 감독의 <천국에서의 일주일(父後七日)>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기억나는 아버지의 추억을 다룬 영화다. 감히 단언하건데, 이 영화는 15편의 경쟁작들 중, 가장 즉각적으로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다. 그렇다고 구질구질한 신파란 얘기는 아니다. 이 영화는 대만의 전통 장례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상실을 기억, 추억, 애도라는 형식으로 따스하게 감싸 안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화자인 메이는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떠올린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은 별로 특별한 게 없다. 하지만, 신발을 벗었을 때 자신의 슬리퍼를 대신 주는 모습에서, 딸의 생일에 어머니가 힘들게 사주신 금쌈밥을 몰래 주는 모습에서, 이런 사소한 장면으로 이들 감독은 가슴 울리는 감정을 조금씩 쌓아 올린다. 영화 초반, 분향을 할 때 향 대신 담배를 태우며, 같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영화의 마지막, 공항에서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정말 눈물 없이 보기 힘든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영화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과 임권택 감독의 <축제>였다. 이들 영화가 <천국에서의 일주일>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세한 감정을 다룬 것이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가 질문을 서툴게 해서, 감독님은 자신의 영화가 이들 영화의 모방이 아닌가 하는 뉘앙스로 잘못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런 유의 질문은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쉽게 다가간 것이 아닌가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이데 유타카 감독의 <이토록 어두운 밤(こんなに暗い夜)>은 생존과 죄의식의 끊임없는 위치 이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얘기는 이렇다. 린코는 아이를 갖지 못해 불임 시술을 받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갖지 못하는 아이들을 증오한다. 어느 날, 그녀가 키우는 개 ‘본’이 실수로 자치회장의 손녀를 무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자신의 개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녀는 본을 살리기 위해 비슷한 개를 훔치는데, 실수로 그 개의 주인인 아이를 죽이게 된다. 그녀는 쿄라는 남자와 불륜을 맺고 있었는데, 쿄의 부인이 남편을 불륜 물증을 잡기 위한 도청장치로 인해 본의 아니게 린코의 살인을 알게 된다. 그녀는 린코에게 자신의 남편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바꿔치기한 개를 죽인 후, 린코는 쿄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아직 절반 밖에 하지 않았다. 영화는 이런 기막힌 이야기들이 계속 진행된다. 이 영화는 희생자의 위치가 계속 바뀌면서 벌어지는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불임 여성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고 뺐기고 혹은 죽이면서 얻는다. 그녀들은 분노와 증오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들의 죗값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녀들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있으나, 그녀들은 그런 위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들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이 영화의 장르는 필름 느와르다. 이전의 느와르가 표면적인 빛과 어둠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이토록 어두운 밤>은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심리 상태를 다루었다. 특히 여주인공 린코는 마치 험프리 보가트의 재림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무표정하고 시니컬한 모습을 영화 내내 수놓는다.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델마와 루이스, 그 잔혹 버전.  

 

헤이워드 막 감독의 는 정말 귀여운 영화다. 영화는 첸 준 핑과 주이의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결국 이 영화는 주이의 이야기이다. 첸 준 핑은 시이와 사귀고 있고, 주이는 우디와 사귀고 있다. 첸 준 핑과 주이는 예전에 연인 사이였다. 공항에서 이들은 우연히 만난다. 주이와 우디는 헤어지고, 갈곳이 없는 주이는 첸 준 핑과 시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30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동안, 주이는 예전에 첸 준 핑과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고, 그간 사귀었던 남자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첸 준 핑 역시 주이와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는데, 이들의 기억은 현실과 과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만다.  

참으로 뻔한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감정을 불러오고, 첸과 주이는 반복과 익숙함 그리고 그리움 사이에서 방황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명백히 시이의 성장담이다. 그녀는 지금껏 사귀었던 남자들을 추억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면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녀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의 여행이 남자들에게 기댄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힘들 때, 그녀의 부모는 항상 곁에 없다. 마지막에 등장한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는 혼자 여행을 다니"라는 조언을 한다. 물론, 이 영화, 참으로 감각적이고 도식적이다. 멋진 인테리어와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부모 없는 청춘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하지만, 영화는 딱 그만큼 비어있다. 왜 아시아에서는 (왕가위를 제외하고는) <줄 앤 짐>같은 청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일까? 왜 그들의 고민은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는 딱 그 만큼의 영화로 내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시이가 전 남자 친구들에게 보내는 귀여운 연서(戀書)다. 하지만, 난 그 편지를 너무 늦게 받았다.  

 

이렇게 길고도 짧았던 CinDi 영화제의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다. 내일은 폐막식이 있을 예정이고, 각 심사위원단들의 수상작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들은 이 경쟁작들 중에서 어떤 점을 봤을까? 그들은 어떤 영화를 지지할까? 내가 지지하는 영화의 거리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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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8 0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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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1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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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3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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