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날씨 견딜만했음.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같습니다. 섹스에 대한 본성, 먹을 것에 대한 본성... 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이러한 본성은 달라집니다. 모든 영화는 (인간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각기 고유한 문화적 특성의 차이로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저에게 루이스 부뉴엘 감독이 중요한 이유가, 홍상수 감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과의 신디 토크에서 영화 평론가 샤를 테송은 (국가가 아닌) 문화에 따라 영화가 갈린다고 이야기했다. 하긴, 모든 영화의 시놉을 5줄로 요약하면, 언제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같은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그의 지적대로 문화의 차이에서 나온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것. 영화제의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영화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제스처를 보이는 친구들의 우정을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이더 라시드 감독의 <우울과 매혹(Tangled up in Blue)>은 영국에 사는 이라크 출신의 이민 2세(혹은 망명 2세)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아버지 라시드 자하이 교수가 이라크에서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에겐 아버지의 육성 원고가 있다. 그는 그 원고를 출판하려고 한다. 그에겐 친구 같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고백은 실패하고, 그는 아버지의 책을 출판할 생각을 버린다.  

<우울과 매혹>은 처음에는 이라크의 상황을 알리는 '정치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이야기는 그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정은 통속극이다. 그런데 이 통속극 사이에 무언가 알지 못하는 불편한 감정이 끼어든다. 그 감정은 주인공 아버지의 육성 원고이기도 하고, 주인공을 둘러싼 숨 막힐 듯한 파랗고 우울한 빛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뼈대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감정을 느낄만한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자신의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방인들 취급을 받는 이민 2세대들의 일상은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심히 불편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영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같은 문화권에서 살면서 편하게 영화를 즐기는 우리들에게, 이런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하이더 라시드 감독의 진심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보다는 외국의 관객들에게 열띤 반응을 얻었다. 질의 응답도 대개는 그들에게 돌아간 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는 것을 잠깐 보니, 아무래도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를 보고 한 가지 드는 의문. 주인공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 그의 방에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블루> 영화 포스터 액자가 걸려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이야기는 <블루>의 판박이다. <블루>에서 안나는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었다. 그녀는 남편의 미완성 악보를 발견하고, 남편의 동료와 그 악보를 완성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 악보는 유럽통합을 축하하는 진혼곡(!)이다. <우울과 매혹>에서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의 육성 원고가 있다. 그러나 그는 육성 원고를 출판하지 않고, 여자 친구와의 사랑도 결국에는 이루지 못한다. 그는 왜 자신의 영화에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을 끌어들인 것일까? 어쩌면 이 영화는 자유와 우울, 두 개의 블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홍상수 감독의 10번 째 장편 <하하하>를 두 번째로 스크린에서 보면서, 실컷 웃다가, 갑자기 불현 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에서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은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 젊은 시인 김강호(김강우)는 계속 나쁜 상황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경은 꿈속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중호는 애인인 연주(예지원)의 상황을 이해해보기도 하지만, 강호에게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어둡고 슬픈 동굴 같은 예성아파트 506호에서 살아가면서 실존주의에 입각한 시를 계속 써나갈 것이다. 그런 그가 "나한테 왜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지?" 하면서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비애가 느껴졌다. "너만 지금 상황을 모르고 있구나." 이때쯤에 중호의 대사가 떠올랐다. "지금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도 알게 될 거야."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다소 도식적으로 나누어 보면, 30대 이상과 30대 이하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나쁜 결과를 맞이하지만, 30대 이상의 인물들은 간혹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생활의 발견>, <극장전>, <해변의 여인>), 30대 이하의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왜 그는 젊은 캐릭터들에게 이렇게 가차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을 관객과의 대화에서 홍상수 감독에게 했더니, 예의 심드렁한 (그러나 단호한) 대답을 했다. "저는 젊음을 싫어합니다. 20대에도 힘들었고, 30대에도 힘들었고 40대에도 힘들었지만,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시네 토크를 진행하는 정성일 평론가가 이 말을 듣고 보충 설명을 해줬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예술가적 자의식, 그럼으로써 지나간 과거를 그저 버린 시간이 아닌, 감싸 안을 수 있는 시간으로 삼는 것,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과의 싸움." 

아마도 이번 영화제의 하이라이트는 홍상수 감독과 평론가 샤를 테송과의 대담이 아니었을까? 이 대담은 <하하하>의 상영 후에 이루어졌다. 홍상수 감독이야 워낙에 눌변이라 큰 기대는 안했지만, 샤를 테송도 만만치 않은 눌변을 자랑해서, 대담은 다소 지루한 면이 보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샤를 테송이 (확실치 않은) 영어로 대담을 진행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분위기가 조금 늘어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들 감독과 평론가의 대화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영화제의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리우 지앤 감독의 <나를 찔러봐(刺痛我)>는 중국의 현실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순박한 청년 장 사오준은 도둑으로 오인되어 폭행을 당한다. 상점 사장의 사장은 장 사오준을 잘 구슬려 대중 합의하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그가 다니는 신발 공장이 부도로 문을 닫게 되어 그는 고향으로 갈 결심을 한다. 기차를 타기 전, 어느 할머니가 오토바이에 치인다. 그는 조금 고민하다가 병원에 연락을 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가족인 경찰이 장 사오준을 범인으로 몰고, 그는 경찰서에서 갖은 모욕과 폭행을 당한다. 오해가 풀려 나온 장 사오준은 친구에게 연락을 해, 이 모든 일에 대한 정신적 합의금을 받을 결심을 한다.  

성인군자 소리를 듣는 장 사오준에게 벌어지는 고난은 모두 돈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경제 위기는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대학 교육을 마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장에서 신발을 만드는 일 뿐이다. 그리고 그나마 할 수 있던 일조차도 경제위기로 없어지고 만다. 그가 오해를 받아 경찰에 잡혀갔을 때, 그를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경제위기로 인해 다 사라지고 말았다. 돈은 인간을 증명해주는 구실마저도 한다.  

경쟁작들 중 가장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나를 찔러봐>는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와 인물들로 긴장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한 장소에 모든 등장인물이 모이는 순간은 마치 타란티노 감독 초기작의 경쾌함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그 장면을 얼마나 장르적인지, 보는 내내 웃음과 긴장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한다.  

이 내용은 극영화로 찍어도 상관없었을 작품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다루면서 무언가 독특한 감정을 발산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대부분이 스틸사진처럼 멈춰 있다. 아무래도 제작비 절감을 위해 그대로 화면을 정지시킨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런 효과가 이 영화에서는 미학적으로 느껴졌다. 화면이 멈춤으로써 생기는, 마치 유령 도시 같은, 아니 유령 국가 같은 느낌. <나를 찔러봐>는 현대 중국을 가장 살벌하면서도 미학적으로 다룬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 장면들만으로도 이 영화는 논의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어느새 영화제도 종반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흐르는 것은 시간뿐이고, 그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것은 인간뿐인가. 즐거운 와중에도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제 작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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