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CinDi영화제 섹션별 추천작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3주

날씨 뜨거움.  

"최근의 영화는 모두 문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미촌>을 연출한 가오 원동 감독은 관객과의 질의 시간에 이런 탄식을 했다. 원래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경거리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예술을 빌려 쓰기 시작하면서, 예술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회화의 구도, 음악의 사운드, 연극의 배우, 그리고 소설의 이야기. 영화는 영화 고유의 것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다른 예술이 이룩한 정수를 훔쳐 쓰기에 바빴다. 영화는 서사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명세 감독이 어느 정도 실험을 해봤지만,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완전히 오해받았다. 오늘 신디에서 본 4편의 영화들은 영화의 형식에서 서사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양 루이 감독의 <크로싱 마운틴(翻山)>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놉에는 중국과 미얀마 국경 근처에 사는 와(瓦)족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지역의) 가도산에는 예전에 이상한 풍습이 있었다. 농사의 풍요를 빌기 위해 남자들의 머리를 잘라 제물로 바친 것이다. 영화 속에 비치는 다큐멘터리 팀들이 실제로 남편의 머리를 자르고, 남편의 살을 먹은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내용에 나오는 이야기다. 농사의 풍요는 생존의 절실함일 수도 있고 인간 욕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끔찍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난 후, 수퇘지의 거세 장면을 보여준다. 수퇘지를 거세하는 농부는 마치 주술을 외듯, 돼지에게 이야기한다. "교미는 그만하고, 살코기가 많이 붙어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지만, 영화는 계속 다른 사건으로 점핑을 한다.  

<크로싱 마운틴>의 장르는 극영화이지만, 감독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섞어서, 영화에서 서사를 지워버렸다. 영화가 어느 정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감독은 갑자기 컷을 나누어 쇼트와 반응 쇼트를 보여준다. 어느 정도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되기 시작하면, 영화는 어느새 시침 뚝 떼고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양 루이 감독은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가능한 모든 것을 소외시킨다. 관객들은 모든 것을 영화를 통해 보지만, 때로 일부러 거세시키는 사운드와, 때로 자막을 보여주지 않는 마을 주민들 간의 대화로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중국 소수 민족의 실상을 알리려는 영화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느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의도는 존중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난, 이 영화를 따라갈 수 없었고, 이들의 삶을 느낄 수 없었다. 새로운 형식이고 새로운 감정을 이끌어내지만, 정작 이 영화는 너무 표면을 겉도는 느낌이 있다. 물론 내가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해서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단지, 새로운 영화가 되기에는 아직까지는 힘에 부쳐 보인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임에는 분명하지만 말이다.  

 

이나바 유스케 감독의 <너와 엄마와 카우보이(君とママとカウボーイ)>는 조지(Geroge)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일본인) 청년의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이 그런 것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며, 그는 홀로 살고 있다. 영화는 조지의 무료한 일상생활을 따라다닌다. 그가 카우보이모자를 쓴 아버지를 만나면서 조지의 삶이 조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 대신에 '너'라는 인칭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이 영화의 인물에 온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1인칭인 '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칭은 다 타인이다. 그들의 감정을 (슬프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조지라는 인물의 내면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난 한계는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조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더욱 차갑고 슬프게 느껴진다.  

<너와 엄마와 카우보이>는 1.85:1의 비율로 시작한다. 한 여인의 걷는 모습. 그리고 여자의 (시시콜콜한) 내레이션이 끝나면, 우리는 주인공이 이 여자가 아니라, 이 여인을 스치는 한 사내임을 알게 된다. 그러고 나서 화면은 1.33:1의 비율로 바뀐다. 1.85:1 대 1.33:1, 비스타 비전 대 스탠더드, 영화적인 화면의 비율과 일상적인 화면의 비율. 이나바 유스케 감독은 이 영화가 극(劇)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일상처럼 보이길 원했던 것일까? 극(劇)적인 일상 혹은 일상 같은 극(劇). 영화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등장인물의 감정이다.  

 

가오 원동 감독의 <개미촌(螞蟻村)>은, 이제는 개발로 사라져 가는 다롄(大連)에서 찍은 영화다. 가오 원동 감독은 실제의 지명을 쓰는 대신 허구의 지명을 빌려왔는데, 그 이유는 개발이 끝난 수 다롄의 모습을 영화에서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개미촌>은 대학을 졸업한 안안의 이야기이다. 안안은 남자친구 이샹과 결혼해 아기를 갖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소박한 꿈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녀는 아샹을 만나면서 린 사장과 불륜을 맺고 있다. 그녀는 그 돈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아샹을 돌볼 수 있었다. 아샹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직업도, 돈도 없이 그냥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린 사장과 아샹이 동시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린 사장 부인이 남편과 안안의 관계를 알아내고, 아샹도 그 안안의 양다리를 알아챈다. 린 사장과는 헤어지고 아샹은 사라진 상황에서 안안은 자신이 임신을 했음을 알아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모골이 송연한 장면. 안안이 린 사장과 아샹의 병간호를 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그 화면이 광장의 전광판에 보인다. (물론 다른 장면에 입힌 것이다.) 사람들은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도 정확히 그들의 위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의 안쓰러운 모습은 그 사람들에게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나 구경거리로 전락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스포일러라 내용을 밝히지 못한다) TV를 보고 있던 안안이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잠깐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안안의 젖은 눈시울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재미있게 잘 보셨나요? 이제 만족하시나요?" 마치 타인의 삶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것 같은 반성과 죄스러움. 세상은 점점 나빠져가고, 그녀와 같은 사람들은 점점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그저 구경거리로 여길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 당신의 인생도 언젠가 광장의 스크린에서 상영될지도 모른다. 그 때 카메라를 향해 울어봤자, 그 땐 늦는 것이다. <개미촌>은 가오 원둥 감독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인 것이다.  

 

성지혜 감독의 <여덟 번의 감정>은 뻔한 내용과 새로운 경지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미술관 큐레이터인 중호는 선영과 헤어진 후에 은주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중호는 선영과 결혼할 생각이었으나, 이내 취소하고 은주와 결혼할 생각을 한다. 결국 그들은 결혼을 하지만, 중호는 이 삶이 자신이 원한 것이었는가를 회의하기 시작한다.  

<여덟 번의 감정>은 정말 뻔한 이야기이다. 너무나 뻔해서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안 돼 결말을 알아챌 정도다. 감히 도식적으로 표현해본다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경유한 연애학 보고서라 할까?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감정의 점핑을 한다. 마치 연속극의 영화 같다고나할까? 등장하는 인물은 같은데, 매 씬마다 그들의 감정은 각기 다르다. 일주일과 일 년이라는 시간의 경과, 서울과 부산 그리고 피지라는 전혀 다른 공간 사이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계속 자리를 바꾸어가며 넘나든다. 사랑의 생성과 소멸로 인한 인간사의 고통 속에서, 시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사랑의 고통은 부처님도 하나님도 해결을 못한다. 중호의 구원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화는 정말 가능할까? 영화를 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영화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영화제 3일 째 날에 4편의 영화에서 질문을 발견했지만, 아쉽게도 답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