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트: Part 2 - The Descent: Part 2
영화
평점 :
현재상영


닐 마샬 감독의 <디센트>는 걸작은 아니어도 수작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장르 팬들보다는 평론가들이 사랑한(혹은 기특하게 여긴)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장르 팬들이 즐길만한 여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100분 정도의 영화이지만, 괴물이 나오는 것은 거의 60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야 나오니까요. 게다가 괴물의 모습은 창의적인 모습은 거의 없는, 골룸의 지루한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장르가 액션으로 탈바꿈하기도 하지요. <디센트>는 순혈주의 장르 팬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고 때론 불경스러운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디센트>는 눈에 보이는 공포를 다룬 것이 아닌, 인간이 숨겨놓은 치부가 밝혀지는 순간의 공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사라는 자신의 딸과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주노는 친구 사라의 남편과 불륜관계인 점 그리고 (피치 못하게) 친구 베스를 죽이고 도망쳤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인간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나약한 위선인지를 보여줍니다. 괴물의 습격 후 주노가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을 찾으러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근처에 있던 레베카가 동생 샘의 입을 막으며 이렇게 말을 하지요.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니면, 괴물들이 다 쟤한테 갈 거야." 이것은 간단히 비난할 문제가 아닙니다. 친한 친구가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 윤리 따위는 정말 별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법과 윤리(그리고 하나 더 첨가한다면 자본)로 통제되는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허술하고, 어느 순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디센트>의 결말이 두 개라는 점입니다. 닐 마샬 감독은 두 개의 엔딩 중 어느 것을 넣을까하다가 아예 두 개 다 집어넣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결말은 그저 사족이 아니라, 보는 입장에서 의미가 있는 결말입니다. 사라가 현실 세계로 나가건, 그 동굴 안에 그대로 있건, 어쨌든 그곳은 그녀에게 죽음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하나 더 추가된) 죄의식으로 미쳐서 살아가든, 동굴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든 결국엔 죽음입니다. <디센트>는 장르적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감독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인 인상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 이후로 쏟아진 평론가들의 찬사였습니다. 이 영화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에 비견될 만큼 수많은 평론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장르의 궤에서는 심심하지만, 영화에서 무언가를 뽑아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평론가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영화였지요. <디센트> 덕분에 그의 전작이자 데뷔작인 <독 솔져>까지도 호평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독 솔져>의 마지막 장면은 그저 유머에 불과했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그 장면을 "미디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 치켜세웠습니다. 아... 그 장면은 그저 한 번 웃으면 되는 장면입니다. 2002 월드컵 잉글랜드와 독일의 유럽지역 최종 예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별 의미가 다가오지 못하는 내수용 유머를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다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닐 마샬 감독은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 이후로 그는 <둠스데이>라는 정말 끝내주는(!) 무념무상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디센트>로 호의적이었던 평론가들은 "천재감독 아무나 하나"라는 말을 남기며 대부분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붙어있는 '천재감독'이라는 말을 지우기 위해 <디센트>의 속편을 기획합니다. 실제 기획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속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만들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감독직을 존 해리스에게 맡겼다 하더라도, <디센트: PART 2>는 전편을 갉아먹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디센트>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물들 간에 할 이야기들은 다 다루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독들이라면, 새로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디센트: PART 2>는 전편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도록 이야기를 꾸렸습니다. <디센트>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이야기나 주제가 참신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전편(아, <디센트>가 전편이 되어버리다니...)에서 다루었던 내용의 지루한 반복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미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공간의 활용 면에서, 존 해리스 감독은 전편과는 다른 접근을 택했습니다. <디센트>가 양 옆을 어둡게 표현해 꽉 조이는 듯한 동굴의 폐쇄공포를 느끼게 해주었다면, <디센트: PART 2>는 넓은 스크린을 스펙터클하게 활용합니다. 그리고 골룸 괴물들의 잔혹성과 난폭성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전편도 나름 잔인했지만, <디센트: PART 2>에서는 잔혹도가 한층 더합니다. 이 정도면 장르 영화에서 관객들이 바라는 만큼의 영화입니다. 존 해리스 감독은 전편의 사색적 요소를 모두 휘발시키고, 장르의 순수한 쾌감을 위한 영화를 만든 셈입니다.  

<디센트>는 <에이리언>과 비교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하지만 <디센트: PART 2>는 <에이리언 2>와는 비교를 불가합니다. <디센트>는 <언덕이 보고 있다>와 비교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디센트: PART 2>는 <힐즈 아이즈 2>와 비교해도 상관없을 작품입니다. <디센트: PART 2>로 닐 마샬 감독은 자신에게 지워진 평론가들의 찬사를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그의 새로운 신작 <센츄리온(Centurion)>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 덧붙임: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전편에서 살아남았던 주인공 사라와 주노는 결국 장엄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닐 마샬 감독도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영화에서 겨우 살아남은 엘렌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지요. 아마 감독인 존 해리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기껏 영화를 만들었는데 잊혀질 운명인 셈이니까요.

익스트림무비 시사회로 8월 6일 20시 롯데시네마 4관에서 관람했습니다. 스크린은 크지만, 좌석이 너무 붙어있어 불편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체오페르 2010-08-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는 안봤고 궁금하지 않은데...
원작 소설은 많이 궁금하고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재와 설정이 독특하더라구요. 지구의 속에, 지표면 아래에 인류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새로운 종족과 문명이 있다...라는.

2010-08-14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