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맥베스 ㅣ 펭귄클래식 63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강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아, 이토록 무섭고 끔직한 이야기가 있었던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는 정말이지 몸서리칠 만큼 끔찍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너무나 끔찍해서 책 표지를 확인한 것도 몇 차례인지 모른다. 아, 이런 이야기라니!
대부분의 공포는 맥베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햄릿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맥베스의 머릿속은 공포와 의심으로 얼룩져있다. 모든 것이 운명대로 맞추어진 삶. 광야의 세 마녀들이 직조한 맥베스의 벗어날 수 없는 삶. 맥베스는 왕이 될 거라는 그녀들의 예언을 이루게 하기 위해 온갖 살육을 자행하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으로 인해 공포에 떨게 되고 또 다른 살육을 자행한다. 이미 정해져 놓은 운명을 이루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나,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나, 다 부질없는 짓으로 보일 정도로 맥베스의 행동은 가련해보인다. 이쯤 되면 마녀들의 예언은 예언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살육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맥베스가 (예언을 이루기 위해) 덩컨 왕을 살해하려는 것을 주저할 때, 그의 부인은 "그러나 만일 제가 당신처럼 이 일을 맹세했었다면, 갓 난 어린 것이 제 얼굴을 쳐다보며 웃을지라도 저는 그 말랑한 잇몸에서 젖꼭지를 잡아 빼버리고 둘러메쳐 머리통을 부숴버렸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왕이 된 맥베스가 마녀들을 찾아가 다시 예언을 들을 때 등장하는 피투성이의 아이 환영이라던가, 자신을 위협하는 맥더프 영주의 아내와 아들을 살육하는 장면은, 활자만으로도 끔찍함을 불러일으킨다.
맥베스는 아이가 없다. 그는 왕이 됐지만, 자손이 없기에 그 왕권은 다른 자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집착을 했던 것일까? 그의 권력욕은 자기 대에서 끝나는 일장춘몽에 불과하게 되었고, 고작 그 정도의 권력을 누리기 위해 그는 그 수많은 살육을 벌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망상이 이토록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번에 읽은 펭귄 클래식의 번역은 민음사 판본보다는 읽기에 수월했지만, 여전히 이게 최고의 번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책을 고를 때에 부딪치게 되는 딜레마. 제대로 감상하려면, 활자보다는 연극이나 영화가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공연을 목적으로 쓰인 것이니까. 하지만, 원본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궁금한 점. 천둥과 번개, 환영과 유령, 등장인물들의 갑작스러운 사라짐 그리고 쉴 틈 없이 진행되는 재빠른 전개 등을 17세기의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무대에서 보여줬을까? 맥베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방백은 그저 서서 배우들이 낭독했을까, 아니면 다른 장치를 고안해서 표현했을까? 궁금하지만, 이제는 알 수 없는 것. 사료에 기대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 그의 광기가 어떤 방식으로 초연되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