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7인의 사무라이 - The Seven Samura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는 정말 굉장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감독의 대표작이자, 일본을 (아직까지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일본의 작가 이오우에 히사시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면 연극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으면 소설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듯이, <7인의 사무라이>를 본다면 영화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은 그저 입에 발린 상찬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3시간 20여분에 가까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영화는 사건이 사건을 만들어가며 끊임없이 긴장감과 재미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산적들이 보리가 익을 때를 기다려 한 마을을 습격하려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공포에 떱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임을 안 농부들은 차라리 맞서 싸우자는 결심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감히) 사무라이를 고용하러 길을 떠납니다. 농부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던지, 노련한 사무라이 감베이(시무라 다카시)를 중심으로 고로베(이니바 요시오), 규조(미야구치 세이지), 헤이하치(치아키 미노루), 시치로지(가토 다이스케), 가츠시로(기무라 이사오) 6명의 사무라이와, 사무라이라고 하기엔 좀 가벼워 보이는 기쿠치요(미후네 도시로)가 합류해, 총 7명의 사무라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사무라이들은 농부들과 함께 산적들과의 처절한 전투를 벌입니다.  

사무라이는 명예를 중시하는 계급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들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그런 사무라이들이 비천한 농민들의 목숨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이들 사무라이들의 명예를 깎아내리기는커녕, 더욱 드높였습니다. 높은 계급을 위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나, 농민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나, 이들 사무라이들의 결단에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농부들의 억센 생명력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리 순진하지만은 않습니다. 영악하고 잔인한 습성이 이들에게는 있습니다. 강한 자에겐 한없이 약하지만, 강자들이 한순간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가차 없이 등 뒤를 내려치는 족속들이 바로 농부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순박한 농부들을 영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사무라이들을 비롯한 지배계층 때문이었죠. 전쟁이 아니었다면, 전쟁에 진 병사들이 도적이 되어 마을을 습격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농부들도 그저 순박한 모습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구로사와 감독이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는 명쾌하지만, 그가 그린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복잡합니다. 그것은 그가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토록 한없이 약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은 구로사와 감독의 이상을 투영하는 것 같습니다. 각기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서로 협심하여 커다란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한없이 나약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고루한 유교적 세계관이라고 비판한다면 굳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이 걸작을 만들어낸 1950년대와 60년대는 분명 인성이 사라진 ‘미친 세상’이었고, 그가 바라는 인간들의 따스함을 찾기 위해선 인간 스스로 깨우치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만큼 사회의 안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 시대엔 필요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굳이 이런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7인의 사무라이>는 활동사진의 쾌감이 스크린 곳곳에 투영된 작품입니다. 특히 마지막 빗속의 결투는 글로 설명하려면 할수록 언어의 빈곤함을 느낄 뿐입니다. 이 영화는 (가능하면 스크린으로) 직접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는 작품 자체가 하나의 클리쉐가 된 영화입니다. 이후 일본의 시대극은 항상 정의로운 사무라이와 나약하고 영악한 농부들, 그리고 평원에서의 대전투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스타일로 시작했지만, 종국에는 아무도 바꿀 수 없는 성역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뛰어난 영화가 일본영화를 본의 아니게 50여 년간 붙잡아 둔 것입니다. 이후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에 이르러서야, 이런 전통적인 방식이 깨지기 시작했고,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모두 하고 있습니까?>와 <자토이치>에 이르러서는 패러디와 유희의 대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영향력은 무거웠고, 그 무게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4명의 사무라이가 죽고, 그보다 더 많은 농민이 죽어서야 마을엔 평화가 찾아옵니다. 살아남은 헤이하치가 감베이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린 이번에도 승리했군요." 감베이가 이야기합니다. "아니, 농민들의 승리야!" 구로사와 감독은 전쟁의 승리를 사무라이가 아닌 농민들에게 돌렸습니다.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고, 그들은 열심히 하루를 살아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사무라이들은 인간의 삶을 위한 일이라면, 다시 그들의 목숨을 걸 것입니다. 그것이 구로사와 감독이 그린 사무라이들의 명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