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 The Phantom of the Oper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연극과 영화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매체입니다. 같은 점이라면 연극과 영화는 시나리오와 배우,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감독과 공연을 보는 관객이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연극의 공연은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는 반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가능한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조각의 예술입니다. 마치 퀼트를 꿰매듯 여러 쇼트를 이어 붙이기 때문에, 영화는 장소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것을 상영할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오페라의 유령>은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 아니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동명 뮤지컬을 필름으로 옮긴 경우입니다. 조엘 슈마허는 이 작품을 영화로 옮기면서 어떤 야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무대를 카메라에 옮길 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뮤지컬 넘버 때문이었죠. 문제는 이 뮤지컬이 순전히 노래로만 연결됐다는 점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중요한 순간에 곡이 나오는 게 아니라, <에비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극을 이끌어갑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관람했다는 <오페라의 유령>은 이미 뮤지컬 자체가 원본이 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뮤지컬 넘버를 수정한다는 일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때문에 영화는 아주 지루한 버전의 뮤지컬이 되었습니다. 뮤지컬은 고정된 자리에 앉아 다양한 시선의 편집으로 극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개입이 들어갑니다. 이 경우 영화는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립니다. 제 아무리 에미 로섬과 제라드 버틀러가 공연을 한다 하더라도, 이 점은 상쇄시키지 못합니다. 극의 호흡도 뮤지컬 넘버를 무리하게 쫓아가다보니 너무나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이 유령의 가면을 벗기는 장면은 '영화적으로' 찍어야 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뮤지컬 넘버를 포기 못하는 바람에, 그 장면은 정말 코미디처럼 찍혔습니다. 매체가 바뀌면 창조적 변형이 있어야 하는데, <오페라의 유령>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원작의 관점에서 본다면,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흥미롭고 스피디하게 각색했습니다. 불필요한 인물은 없애거나 한 명의 인물로 합쳤으며, 현재를 나타내는 흑백화면으로 막(act)을 나눈 것도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에릭(유령)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것은 좀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지만, <엘리펀트맨>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으니까요.  

2004년 작(作) <오페라의 유령>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입니다. 좀 더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할리우드는 너무나 안전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10만원에 가까운 티켓 가격보다는 7천원 티켓 값이 저렴하기는 하죠. 하지만 가격이 떨어진 만큼, 뮤지컬이 갖는 정수를 영화는 담지 못했습니다. 분명 영화가 이야기를 담을 우위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반성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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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2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게 이거였습니다.
나름 괜찮았던 거 같은데 토멕님 말씀 들으니 그도 그렇군요. 흠...

Tomek 2010-07-24 10:24   좋아요 0 | URL
뮤지컬을 보지 않았으면 괜찮은 영화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느낌이 달라서요.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감독의 역량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에미 로섬이 연기한 크리스틴은 아름다웠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