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마저도 긍정하는 주호민의 힘
-
-
짬 시즌 2 - 예비역들의 수다
주호민 글.그림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5월
평점 :
남자들에게, 아니 군필자들에게 있어 군대란 기억은 거의 대부분이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난 분명 전역을 했는데 전상상의 실수로 다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절망적인 통보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군대에 가니 그 지옥 같던 선임들이 날 기다리고 있더라는 꿈은, 정말이지 아마 대부분 꿔봤을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시대와 공간과 사람이 전부 다른 개별적인 경험이 어떻게 똑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는지.
원경험에서 2차로 각색된 군대 이야기는 대부분 비장하거나, 악몽이거나, 슬픈 이야기였다. 간혹 <동작그만>, <쫄병수첩> 등과 같이 코미디의 소재로도 쓰였지만, 그것은 고참의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대는, 고참일 때는 (그나마) 추억거리가 있다. 그러나 쫄병일 때는 온 세상이 지옥이다.
주호민 작가는 그의 데뷔작인 『짬』에서 이전과는 다른 군대 이야기를 펼쳤다. 군대 이야기가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처음으로 군대를 추억했다. 군대라는 시스템을 추억한 게 아니라, 군대에서 겪은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 벌어진 일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짬』이 이룬 성취는 군대에서 겪은 시절을 공포, 폭력, 위선, 불합리한 명령 등으로 얼룩진 끔찍한 기억으로 다룬 게 아니라, 젊은 시절 겪었던, '새로 만난 사람들과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따듯하고 가슴 훈훈한 군대이야기라니! 일면 모순적으로 들리는 이 말을 주호민 작가는 정말이지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그가 『짬』에서 다룬 내용은 '좋은 기억들'을 (적당히) 윤색한 것이다. 물론 그라고 왜 군대생활이 훈훈하기만 했겠는가.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는지 그는 『짬 시즌2』라는 제목으로 다시 군대 이야기를 그렸다. 이번엔 연대기적 회고록 형식이 아닌,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와 그의 친구들)의 기억을 채웠다.
여전히 재미있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군대 내 폭력행위라던가 부당 행위, 사회에서 만난 친한 친구의 배신(?) 등의 어두운 이야기도 담겨 있다. 특별한 점이라면, 아무리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작가 본연의 필체인 따스함은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천성이 그렇지 않은가 감히 미루어 짐작해본다. 그만큼 그의 만화는 따스함이 있다. 이런 가교가 있었기에 88만원 세대의 비루한 일상을 따스하게 그릴 수 있었고(『무한동력』)을 완성하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성찰과 반성의 영역(『신과 함께』)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짬 시즌2』는 이전 그리고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쉬어가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주호민 작가는 언제나 ‘주호민스러운’ 재미있고 따스한 작품을 그리니까. 그가 바라보는 죽음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여전히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지 진심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