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택광 교수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인문 ‘좌파’라니, 세상에. 이젠 학계에서도 서로 정치 성향의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물론 그런 내용은 아니다. 이택광 교수는 남한에서 협소하게 쓰이는 ‘좌파’라는 용어를 원래의 의미대로 사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 뻘그죽죽한 표지를 보고 지레 놀랄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경계도시 2> 리뷰 썼을 때도 밝혔던 이야기지만,) 난 철학과를 졸업했다. 점수에 맞춰서 지원한 게 아니라, 내 신념대로 지원한 것이기에 부끄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철학과를 지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원인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그러니까 94년에서 95년 사이에 참 많은 대형 사고들이 일어났었다. 한강 대교가 부서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가스 송수관이 폭발하고, 신문사는 연일 끔찍한 사진을 사회면에 쏟아내던 그런 시절(그러고 보니 생애 가장 화끈한 민방위 훈련도 그 때 이루어졌던 것 같다). 입신양명을 위해 사춘기마저 저당 잡히고 숨 막히게 살아갔던 시절이었지만, 너도 나도 비판만 일삼을 뿐, 대안이나 원인에 대한 고찰은 거의 없었던 답답한 시절에 새로운 사유에 대한 필요성과 그 시원은 철학에서 탐구해야한다는 내 유아적 망상은 날 철학과로 이끌게 했다. 게다가 95년 철학가 질 들뢰즈의 투신자살은 나를 더욱 더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이끌었다.  

내가 철학에서 바랐던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 혹은 거리두기였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원한 철학은 그 자체로서의 학문이 아닌, 도구로서의 철학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세속적인 사람이어서, 지금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며 끼니를 때우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내게 있어 실용적인 학문으로 여겼다. 하지만, 철학과의 분위기는 달랐다.  

내가 겪었던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상당히 지루했다. 철학의 역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은 거의 사람을 미치게 하는 학문들이었다. 나는 세기말을 살고 있는데, IMF를 겪어 세상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범람으로 세상은 점점 더 개인에게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교수님들은 18세기의 독일과 20세기의 박정희에서 벗어나지를 않으셨다. 세상과 담을 쌓고 숭고하고 순결한 인식론의 우주에서 유영하는 것. 이게 철학이었고 이게 학문이었나? 너무나 속상해서 입대하기 전, 연합 엠티에서 술기운에 “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이론만 배워야 하는 거냐?”고 헛소리했다가 집단 다구리를 당한 경험이 있다. 뱉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 경솔하게 떠들었던 게 아닌가 반성하지만, 그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군대 제대 후, 21세기의 첫 해에 난 철학을 버리고 영문학을 택했다. 살면서 더 이상의 철학은 나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돌고 돌아 2010년을 맞았다. 그동안 내 밥벌이가 되어준 영어는 점차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고, 난 직장을 관두었다. 지옥이 되어가는 세상의 원인을 파악하길 원했던 내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해서였다. 세속적이란 표현은 때론 민만하고 때론 유치하지만, 영혼을 판다는 말은 아니다. 해방적이기도 하면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던 와중에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었다.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 책이구나!  

이택광 교수는 ‘좌파’라는 단어를 남한에서 통용되는 소위 ‘빨갱이’라는 뜻이 아닌, 비판적 시각을 가진 존재로 봤다. 그가 바라보는 인문학에서의 우파는 학문을 취업, 승진 혹은 진학의 도구로 쓰는 존재들이다. 그가 언급한 인문좌파 역시 인문학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게 아닌,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는 사용가치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비평과 이론을 구분해내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현대 철학가들의 이론에 비추어서 바라본다. 벤야민의 만보자(flaneur)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새로운 주체를 읽어나가기도 하고, 랑시에르와 바디우를 끌어들여 2008년 촛불을 이끈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읽어나가기도 한다. 이택광 교수가 정의하는 ‘인문좌파’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거리를 두며 바라보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동하는 양심들을 말하고, ‘이론 가이드’란 그런 인문좌파 중 한명인 그가 꾸려내는 사상의 연속을 묶어낸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책이다. 사상의 흐름과 철학가들의 반론과 주장 그리고 저자의 진단 등 설렁설렁 읽는 대신 전투적으로 읽어야 겨우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들은풍월이 있어서 끝까지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끝까지 읽기는 읽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해 내 도구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는 못했더라도 읽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해 회의하던 사람들이나 인문학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던 사람들이라면, 그 때 인문학에 기대했고 다가갔던 첫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6-26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7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