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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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평점 :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한 한국사회에서, 우울증은 '정신상태의 헤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일사분란하게, 규격화된 삶을 목표로 삼는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울증이란 질병에 대해서 우리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으면, 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낙오자로 치부되기 일쑤였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개인의 일상을 다루기에는 너무 많은 거대담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시절부터였으니까.
문제는, 이 우울증이란 놈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사고와 같아서 예고 없이 우연히 찾아온다. 가장 일반적인 우울증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괴감의 한 표현으로 찾아오고, 그것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세가 심해지면, 자살을 한다.
한 때 우울증은 결혼한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증세인줄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한 여성은, 남편의 연인으로써, 자식의 어머니로써, 회사의 일꾼으로써, 시부모의 며느리로써의 분열된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4개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여성들이 우울증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눈물조차도 마음대로 흘려보지 못한 남자다움의 덫에 걸려 평생을 살아온 마초들에게, 우울증이란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치부로 여겼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묵살하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90년대 중반에서야, 이 우울증이란 질병에 대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원론적인 해답밖에 내지 못했다. 이유는 우울증이란 증세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다 제각각이듯이, 사람마다 겪는 우울증의 증세와 원인 또한 모두 다르다. 의학계가 감기를 정복할 수 없듯이, 우울증 역시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철마다 찾아오는 감기처럼, 우울증 역시 잊을만하면 찾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수 앳킨슨의 『우울의 심리학』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도, 그다지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런 원론 처방 매뉴얼 중 하나일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런 종류의 책들이 너무 많이 있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고 조금씩 읽기 시작하자, 그런 편견이 사그라졌다. 『우울의 심리학』은 원론 처방이 아니다. 이 책은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 자신이 (정말이지 처절한) 우울증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 책은 우월한 위치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닌,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 건네는 작은 위로와 같다. 목적지를 손으로 가리키지 않고, 같이 동행한다. 눈물이 왈칵 났고, 적어도 이 이유만으로도 책을 읽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다'는 동질감이니까.
개인이 겪는 우울증을 절대화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겪은 우울증은 꽤 깊은 편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우울증이 겹칠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우울증을 벗어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니 조바심을 잠시 거두고 그녀의 내면에 들어가 보는 것도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사람이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몰리자, 덩굴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덩굴이 모자랐다. 그 사이 생쥐가 덩굴을 갉아먹기 시작했고, 절벽 밑에는 사자들이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절벽 옆에 매달린 벌집에서 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혀를 입에 대었다. 달콤했다.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에서 읽었던 글이다. 그가 이야기한 대로 삶은 고통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고, 우리는 덩굴에 의지해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 때 맛본 꿀맛은 삶의 고통을 잠시 잊을 만큼 달콤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인간의 삶은 다 똑같다. 다 고통이다. 다만, 옆에 흐르는 꿀에 혀를 대는 자와 대지 않는 자가 있을 뿐이다. 삶의 즐거움, 찰나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