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3주

<13일의 금요일>시리즈와 함께 1980년대 공포영화를 양분해온 <나이트메어> 시리즈는 B무비인 동시에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꿈’이라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이었죠. 현대 과학으로도 철인들의 사상으로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꿈은 당연히 예술가들의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데이빗 린치같이 무의식의 불안한 세계로 침잠한 경우도 있었고, 홍상수같이 이야기의 구조와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나이트메어> 시리즈는 예술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들이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의 매력적인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 때문입니다.  

이번에 리메이크해서 개봉한 <나이트메어>는 원작과는 다른 노선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스토리는 그대로 가져와 이벤트 무비와 리메이크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경우입니다. 원작의 팬으로서도 아쉽고, 장르영화의 팬으로서도 아쉬운 결과물입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금까지 나온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한 번 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나이트메어>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소재주의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영화가 9편씩이나 만들어진 것을 보면 사람들의 무의식적이고 원초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더 랑겐켐프의 신선함, 조니 뎁의 풋풋함, 그리고 존 색슨의 인상적인 모습, 그리고 잊지 못할 로버트 잉글런드. 악몽은 이제 고전과 추억이 된 듯합니다.   

 

잭 숄더 감독의 <나이트메어 2: 프레디의 복수>는 원작의 설정에서 비껴간 작품입니다. 원작에서 프레디는 꿈에서 살인을 자행하는 인물이었지만, 2편에서 그는 세상으로 나오려합니다. 게다가 전편 주인공 낸시가 살던 집 엘름 가 1428번지는 프레디라는 귀신들린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미티빌> 시리즈를 관통하고 퀴어 정서와 프레디 크루거까지 아우르려는 감독의 야심은 존경할 만합니다. 물론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섞인 존경이었지만요...^^ 이 영화의 희생자들은 모두 남자들이며, 특히 체육 교사인 슈나이더의 죽음은 정말 충격적입니다(프레디의 분노의 볼기짝! 물에 적신 수건으로 맞아보신 분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실 듯...). 특히 영화의 엔드 크레디트에 흘러나오는 빙 크로스비의 「Did You Ever See A Dream Walking?」을 듣고 있으면, 이 영화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 도달했던 경지에 오르길 원했던 영화임을 깨닫게 되어 숙연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매혹적이었던 장면은, 프레디가 불에 타 죽었던 공장이 등장한다는 점과 파티중인 10대 아이들 앞에서 서 있는 장면입니다. 프레디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 있던 장면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나이트메어 3>은 잠시 옆길로 빠진 시리즈를 다시 원래 자리로 데려온 영화입니다. 장르적인 쾌감은 많이 줄었지만, 후속편이면서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프레디는 다시 꿈의 세계로 돌아갔고, 그의 목표는 엘름 가의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엘름 가의 마지막 아이들과 프레디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눈에 익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패트리샤 아퀘트와 로렌스 피시번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헤더 랑켄캠프와 존 색슨이 다시 등장해 1편과의 연관성을 강조했습니다. 음악은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맡았으나, 그렇게 인상적인 스코어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부터 프레디는 꿈으로 아이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꿈을 꾸지 않는 약, 힙노실의 등장과 프레디의 출생의 비밀도 등장합니다. 게다가 크리스틴은 자신의 꿈속으로 다른 이들을 불러들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레니 할린이 감독한 <나이트메어 4>는 공포보다는 액션에 치중한 영화입니다. 프레디의 등장은 거의 액션 영화의 악당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서움보다는, 드디어 싸움이 벌어진다는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영화입니다. 3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부활한 프레디에게 죽고, 크리스틴은 자신의 능력을 새 친구 앨리스에게 전해주고(!) 죽습니다. 앨리스는 독특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녀는 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이 죽으면서 그녀는 친구들의 능력을 하나씩 흡수합니다. 드디어 무림의 고수가 된 앨리스는 프레디 크루거의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결투를 벌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빨려 들어가는 앨리스의 모습입니다. 영화보다 잠들지 말라는 감독의 메시지일까요? ^.^; 참고로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잊히지 않는 평이 있는데 바로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레니 할린의 네 번째 악몽은 시리즈 중의 최고이며, 공포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과 이데올로기 비평의 격전지이다. 그래서 이 네 번째 이야기를 보면서 왼손에 알뛰세를 오른손에는 라깡을, 그리고 보들리야르를 머리에 베고 누워 구경하는 것은 흥미진진할 것이다.『키노(No. 17)』" 이것 참...  

 

스티븐 홉킨스 감독의 <나이트메어 5>는 싱글맘의 공포를 다루는 수작입니다. 전편의 앨리스는 마찬가지로 전편에서 살아남은 댄과 사랑에 빠져 댄의 아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한 프레디가 태아의 꿈을 이용해 댄을 죽이고 다른 친구들도 죽이기 시작합니다. 죽은 아들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댄의 부모는 앨리스에게 아이를 빼앗으려고 하고, 프레디 역시 살인 욕구를 위해 앨리스의 아이를 필요로 합니다. 태아에 대한 '욕망'을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다룬 장르 영화가 있을까요? 아이들만 살해한 프레디가 태아에게 접근하는 설정도 으스스하지만 무엇보다 프레디의 살해 장면이 기발합니다. 댄은 마블 코믹스의 고스트 라이더로 분하게 해서 죽이더니, 코믹스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는 DC코믹스의 ‘슈퍼맨’으로 분해 살해합니다. 프레디의 인용은 갈수록 풍부해지고 유머까지 늘어납니다.  

 

레이첼 탈라레이 감독의 <나이트메어 6>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프레디의 성장담이라니요. 무슨 <프레디 라이징>도 아니고... 게다가 그는 가정도 있는 착실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왜 그리 패륜적인지... 이 영화는 정말로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기획됐을 것입니다. 스프링우드의 아이들이 다 죽은 프레디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 아이들을 살해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반은 성공하지만, 절반은 실패하지요. 프레디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그는 이제 예술가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살해방식은 고딕 미술을 넘어 팝 아트와 아방가르드까지 가까이 왔습니다.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키다니!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시리즈를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 매력적인 3-D 씨퀀스도 존재하지만, 이미 시리즈는 힘이 다 빠진 상태입니다. 마지막 엔드 크레디트에 올라오는 프레디의 활약상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뉴 나이트메어>는 시리즈를 탄생시킨 웨스 크레이븐의 진정한 속편이자 마지막 편입니다. 그는 시리즈가 다 막을 내리고 나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그는 <영혼의 목걸이>로 (조금 더 현실적인) 프레디 크루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번에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프레디 크루거를 확실히 끝장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 방식으로 말이죠. 때문에 이 영화는 시리즈 중 가장 지루한 영화가 됐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라는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잠식하는지 천천히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공포라는 장르영화가 예술이 된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웨스 크레이븐의 명성을 높여주기는 했지만, 장르 영화의 팬들에게서는 정말 악몽 같은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우인태 감독의 <프레디 vs. 제이슨>은 <나이트메어>시리즈를 사랑하는 저로서도 솔직히 당황스런 영화입니다. 그저 제이슨과 프레디가 한 영화에서 만났다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그래도 이번 리메이크에 비하면 이 영화가 훨씬 원작의 세계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편에 등장했던 양이라던가, 웨스틴 힐 정신병원이라던가. 원작의 팬들이라면 반가워할 장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13일의 금요일>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제이슨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조금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나이트메어>를 싫어하는 분들은 저와 반대의 이유로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설정은 "우리는 깨어 있을 수도 잠들어 있을 수도 없어"라는 대사와 프레디가 제이슨의 악몽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나이트메어>와 <13일의 금요일> 테마를 반씩 섞은 테마곡 또한 말 그대로 죽여줬지요! 

 

사무엘 바이어(Samuel Bayer)가 감독(했다고 하지만, 제작자 마이클 베이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 게 분명)한 2010년의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는 이벤트 무비와 리메이크 무비의 사이에 있는 작품입니다. <나이트메어>시리즈를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향수를, 몰랐던 관객들에게는 고전의 투박함을 현재 기술력의 세련함으로 포장해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영화입니다. 팬심을 제거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도, 제게 <나이트메어>는 60% 정도 아쉬운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타 프레디 크루거는 원래 설정대로 아동 학대 성추행 범에 유머가 없는 싸이코패스가 됐습니다. 음향 효과는 멋지지만 스토리는 한숨이 나오고 특수효과는 지루합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별 개연성 없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 아이들이 죽는 이유는 그들 부모의 잘못 때문이었죠(이 무서운 연좌제의 공포라니). 그런데 리메이크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 수많은 아이들을 살해합니다. 리메이크의 프레디 크루거는 원작의 프레디 크루거와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씬 시티(Sin City)>의 노란 녀석(that yellow bastard)과 흡사합니다. 

이래저래 원작의 팬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 어차피 공포 영화는 항상 쓰레기 취급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그때까지 악몽은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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