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인형 - Air Do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7번 째 영화 <공기인형(空気人形)>은 독특한 영화입니다. 공기인형이 사람이 된다는 '갑작스러운 설정'은 충분히 영화라는 매체에서 용인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흐름은 마치 다큐멘터리같이 담담합니다. 영화는 충분히 극적인 요소가 있지만,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별 관심이 없는듯 무심히 영화를 진행합니다. 주인공인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거의 동일한 분량을 가지고 있고 감독은 이들에 대해 평가를 내리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하는 히데오(이타오 이츠지)는 공기인형과 함께 지냅니다. 그는 인간과의 관계에 지쳐 인간의 대용품인 공기인형과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침, 히데오가 출근을 한 사이, 공기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공기인형은 바깥 세상을 구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서로 소통하자.'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이 뻔한 메시지를 숨기거나, 은유하거나, 환유하지 않고 상영시간 116분 내내 직접 제시합니다. 영화의 내용이나 만듦새보다는 메시지 전달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밋밋한 전개에 world's end girfriend의 아름다운 음악과 노조미의 잠언과도 같은 내레이션이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노조미가 만나는 대도시 도쿄에 사는 이웃들은 하나같이 경제활동을 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극도록 자제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냅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상처가 조금씩 삐져나오지만, 그것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상처를 드러낼 때는 오직 노조미 앞에서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인형이니까요. "나는 공기인형. 인간을 대신하는 대용품." 하지만 그녀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마음을 가진 존재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느끼고 서로 소통하는 '예쁜' 마음.

   그래서인지 영화는 아름다우면서도 굉장히 아픕니다. 특히나, 아무리 '인형'이라고 주문을 외워도 '배두나'라는 배우를 인형으로 볼 수는 없지요. 이 영화는 마치 김기덕 감독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절반씩 나눠 찍은 필름을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이 편집한 영화 같습니다.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 무언가 모를 불편함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우연히 빚어진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은 메시지를 택한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없었던 공기인형의 '숨'은 그녀를 둘러쌌던 사람들에게 '어떤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공기인형처럼 방안에만 틀어박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거식증 여인이 창문을 열고, 영화 처음에 공기인형이 창문을 열고 얘기했던 말을 이야기합니다. "예쁘다." 그녀가 본 것은,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영화적 자살입니다. 그는 영화를 포기한 대신 메시지를 이야기합니다. "인간이라면, 서로 소통하자.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내 영화따위는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네. 그것은 아름다운 자살입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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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0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추천합니다!! 와, 좋은 리뷰에요.
아름다운 영화적 자살이란말. 너무 멋져요. +_+
(아, 너무 찬사라 진실성이 없어보이긴 하네요 -_- 하지만 진짜라능 ㅋㅋ)

그럼에도,
김기덕감독과 라스 폰 트리에감독이 반씩 나눠 찍은 필름을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이 편집했다, 라니..
무척 보고 싶지만 쉽게 보러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ㅎㅎㅎㅎ

Tomek 2010-04-06 18:17   좋아요 0 | URL
끔찍한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소한 웃음을 불러일으키지요. 그런데 다 보고나서 곱씹어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마냥 낭만적인 영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용을 생각해보면 정서적으로 끔찍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치 <도그 빌>이나, 김기덕 감독 영화의 독특한 자학 같은. 관심 있으시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칭찬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