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아직 3월 31일은 안 됐지만, 3기 무비매니아 활동이 채 사흘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지난 3개월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8일까지 3개월간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총 12편이었습니다. 그 중 시사회가 4편이었고, 재개봉작 1편과 나머지 7편은 유료관람이었습니다. DVD나 TV, IPTV의 영화는 헤아리지 않았으니까, 실제로는 이보단 많겠지만 뭐 대중 소급하면 이정도일 것 같습니다.  

   무비매니아 활동을 하면서 일신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극장에 간 횟수가 평소보다 늘어낫다는 것이겠지요. 전 개봉관, 특히 멀티플렉스에서 영화관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입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려면 굉장히 많은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앞 뒤에서 풍기는 나초와 팝콘 냄새, 주위에서 쏘아대는 휴대전화 레이저빔, 여자친구(혹은 후배)에게 친절히 내용을 암송하는 아이들, 회사일과 집안일을 극장에서 전화로 처리하시는 어르신들, 뒷자리에서 발길질하는 아이들까지. 정말이지 집중을 하기가 힘이 들지요... 

   이렇게 극장을 싫어하면서도(정확히 표현하자면 멀티플렉스의 분위기이지만서도), 이 3개월동안, 극장에서 두 번 관람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위에서 열거한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를 다시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왠만한 영화는 2차 판권(DVD)이 풀릴 때 다시 감상하지만, 이 영화들은 그 기간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저를 다시 불러들인 경우입니다. '위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저 개인적으로 가슴에 울린 영화들이겠지요. 3월 마지막 주, 무비매니아 마지막 영화 미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맺을까 합니다. 

 

   처음에 봤을 땐, 사랑스런 하나 氏 때문에 봤습니다. 신연식 감독이나, 안성기 氏는 모두 제 고려대상에서 벗어났지요. '영화야 어찌됐건, 최소한 <식객>때보다는 괜찮게 나왔겠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이 블로그에서 얘기했지만, <페어러브>는 50여년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그래서 이제는 자신을 가둔 그 벽마저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된 형만(안성기)이 남은(이하나)을 만나 그 벽을 깨고 나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한 50대의 나이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신연식 감독은 그 진부한 소재를 어찌보면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버무려 다루었습니다.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지저분한' 이야기로 흐를수도 있지만, 신연식 감독은 이 이야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페어러브>는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읽혀졌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서로에게 공정한 사랑은 인생을 오래 산 형만이나, 형만의 절반정도만 산 남은이나 어느쪽이나 유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고통은 사랑을 하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찾아갑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시작'할 여지가 생겼겠지요. 

   하지만, 다시 감상했을 때, 결국 이 영화는 '인생'을 생각하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스스로 달리지 않고, 이제는 쳇바퀴의 관성에 편안히 몸을 맡기는 멈춰진 삶. 대부분의 인생은 다 그렇지 않을까요? 형만은 남은 덕분에, 자신의 공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직시하게 됩니다. 관성에 안주한 삶을 포기하고, 쳇바퀴에 내려, 스스로 다시 달릴 준비를 합니다. 이것은 굉장한 결단이지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형만과 남은의 사랑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장면, 남은이 형만의 병원 침대의 가려진 커튼 밖에서 얘기하는 모습은 실제인지, 형만의 꿈인지는 제게는 더이상 상관 없습니다. 어찌됐건, 형만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니까요.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결과는 "오십 대 오십"입니다.  

   남은의 "우리, 다시 시작해요"란 말은 형만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시 시작합니다.

 

   7년이나 지난, 이미 잊혀진 사건을 지금에서야 꺼내는 것은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거물 간첩'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야기에서 2010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지요. 이 영화, 절대로 가벼운 영화가 아닙니다. 

   처음 봤을 때는, 갈팡질팡 진술을 번복하는 송 교수에 대한 실망감과, 그를 둘러싼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 '찢어죽이지 못해' 안달하지 못하는 보수 단체들과, 운동성에 흠집을 냈으니 전향하라고 윽박지르는 진보 단체들의 장단에 맞추어 정신 없이 봤습니다. 이것은 홍형숙 감독의 의도한 편집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이렇게 급박하게 사건이 진행된 면이 컸었지요. 언론이 나선 점도 있었지만, 이 모두를 미쳐버리게 만든 장을 마련한 주체는 '대한민국'과 '국가 보안법'이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제 안에 자리잡고 있는 '레드 컴플렉스'와 사투를 벌이며 '전투적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 사는 대한국민은 그 크기는 다를지라도, 모두 저마다의 '레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체험해준 영화입니다. 

   어느정도 머릿속을 진정하고 난 후, 두 번째 재감상했을때, 드디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이자 자연인으로써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신념과 37년간의 저항이 어떻게 한순간에 이리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와 우리 사회를 둘러싼 '집단 광기'가 어디서 발현됐는지를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두 번 봐야 그 의미가 제대로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별 기대하지 않고 봤습니다. 예고편을 봤을 때,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일지 그려졌거든요. 영화를 봤을 때도 계속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스포일러를 언급하지 않고 영화를 이야기하기가 워낙 쉽지 않아, 영화를 본 제 반응을 알려드리자면, "음, 그렇군. 그렇군. 그렇게 되는군. 그렇게 되겠지. 그렇지. 그렇지. 응? 뭐라고? 헉! 헉!! 헉!!!" 뭐 이랬습니다. 저는 끝까지 음모론을 놓지 않았습니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자승자박에 걸린 셈이였지요. 영화의 초중반에는 50년대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인 2차 세계대전, 핵폭탄과 매카시즘의 공포를 음모론과 다룬 수작이라 생각했으나, 영화의 말미에 가서, 지금까지의 생각을 다시 재구성해야 했지요. 그래서 다시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봤을 땐, 이 영화가 잘 짜여진 스릴러라 생각했으나, 두 번째 봤을 땐, 참으로 슬픈 영화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내용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둘러싼 수 많은 조연들의 연기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런 미묘한 균형을 세우는 영화를 만든 공은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공이 큽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이 영화는 그에 합당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하필 1950년대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택시 드라이버>나 <좋은 친구들>같이 동시대를 다루는 영화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하고 짧게 탄식을 했지만, 이내 지워버렸습니다. 스콜세지 감독은 <갱스 오브 뉴욕>에서 하층민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애비에이터>에서 상류층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그렸습니다. (실망스러웠던 <디파티드>를 제외한다면) 그는 <셔터 아일랜드>로 미국 중산층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쓴 셈입니다. 스콜세지는 그만의 방식으로 미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급한 세 편의 영화는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페어러브>와 <경계도시2>는 극장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3기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어 시원 섭섭합니다. 다음에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습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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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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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