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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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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영희'라는 이름은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느낌이다. 물론 나는 그를 책에서 표현하듯 '사상의 은사'로 모신 그런 70년대 세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수정주의자라 여기며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긴 80년대 세대도 아니다. 오히려 '리영희'라는 이름을 듣고도 "이게 뭥미?"하고 뜨악하게 쳐다보는 지금의 보통 세대들과 거의 다르지 않은 90년대 세대다. 

   '리영희'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그의 저서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놀고 술마시느라 바빴으니 당연하지). 96년 어느날 동아리방에 너덜너덜해진 책 한 권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 제목의 계시와도 같은 강렬함에 이끌려 난생 처음으로 책 도둑질을 했다(도둑질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빌리고 반납하지 않은지 14년이 다 되어가니 훔친거나 다름없다. 깊이 반성한다...). 국제 정세와 한국 정세를 판단한 그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으나, 대결의 구도가 아닌 조화의 구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문학보다도 감동적으로 다가온 경험이 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선생이 중풍에 쓰려졌다는 소식을 접했을때도, "아, 어쩌나"라는 생각뿐이었고, 구술 자서전 『대화』가 나왔을때도 "아!"라는 감탄뿐이었지, 그의 저작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상은 어차피 잘만 돌아가니까. 

   『리영희 프리즘』. 이 책을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가를. 이 책에 있는 글들은 '리영희'라는 존재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들을 바라본다. 어떤 것은 놀랄만한 경탄을 이끄는 글들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참신한 시선이라며 무릎을 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어떤 것은 "이건 뭥미?"하는 핀트를 벗어난 글도 있다.  

   열 명의 저자들이 얘기하는 담론들- 생각하기, 책 읽기, 전쟁, 기독교, 영어, 지식인, 기자, 사회과학, 청년문화, 자유 -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진단할 수 있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이 담론들이 '리영희'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이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겐 당연한 중언부언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리영희'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놀라움과 경의감을 느낄 것이다. 

   홍세화 씨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리영희'라는 우상 만들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상 파괴를 역설한 사람이 스스로 우상이 되는 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이 책은 이제는 우리가 잊어버린, 그래서 '폐기처분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지닌 '리영희'라는 인물이, 사상이, 삶이 아직까지 우리 시대에 유효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일제시대와 해방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를 말 그대로 "온몸으로" 견디어낸 인물의 생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늙었지만 낡지 않았다. 지금이나마 "선생님"을 알게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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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3-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씨를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소갤 받았는데, 그때의 울림은 아직도 설명이 안되요.


Tomek 2010-03-12 10:0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느꼈어요. '정수리에 찬 물을 끼얹은'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사상과 인물이 이렇게 일치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