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4주
이주에 개봉하는 영화 중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만남만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반지의 제왕>시리즈나, <킹콩>같은 매끄러운 기성품의 느낌이 아니라, <데드 얼라이브>나 <프라이트너>같이 내러티브나 다른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덜그덕거리지만, 독특한 감성이 영화 전편을 지배하는 그런 영화가 나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현실과 판타지에 걸쳐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포스터 헤드카피에도 당당하게 밝혔듯이, 이 영화는 14살의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녀는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가족들은 거의 붕괴 직전에 처한다. 그리고 소녀는 천국으로 가지 않고, 저승에 머물면서 그녀의 가족들을 지켜본다.
이 영화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다. 혈육의 죽음으로 생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가족이라는 틀을 단단하게 봉합시킨다. 가족주의의 환원. 하지만 영화는 죽은 소녀에게 떠 넘긴 부채를 해결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해피엔딩 같지만, 결국엔 슬픈 결말. 소녀의 죽음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그들이 '가족'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 죽은 소녀는 다행히 천국으로 갔지만, 남은 가족들은 딸의 부채에 괴로워할 것이다. 그래도 자식이기 때문에 이만큼 괴로워하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얘기가 전개된다.
"소화(昭和) 20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충격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다카하타 아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는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영화는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폭격과 일본의 패망 시기를 다룬 영화다. 주인공 세이타와 어린 여동생 세츠코는 폭격으로 엄마를 잃고 먼 친척을 찾아간다. 식량이 궁한 힘든 시절, 친척은 더부살이 하는 남매를 냉대하고, 남매는 집을 나와 방공호 생활을 한다.
이때의 일본은 무관심의 시대였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누가 죽어나가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런 개인주의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이 두 남매가 "지금 현재(1988년)"의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 영화는 "태평양 전쟁 또한 일본도 피해자"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니라, 각박해진 일본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다. 결국, 남매가 죽었을 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면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관심받지 못하고 그렇게 힘들게 시나브로 죽어갔다. 어른들의 부채는 전쟁을 지나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가 나온 1988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가 같이 나왔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반딧불의 묘>에서는 하나같이 무관심한 어른/이웃들이 나오는 반면,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다같이 친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공동체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메이의 실종으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메이를 찾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 뭉클함을 느낀다. 이것은 감독의 시선 차인데, 다카하타 아사오 감독은 그 당시 일본을 '리얼리즘'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 때 그랬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희망의 시선으로 묘사한 것이다. 결국 부채는 해결되지 못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거나, 희망사항으로 끝날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 <신세기 에반게리온:Death & Rebirth>에서 "그러니까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을텐데"라는 자멸의 희망까지 나온 게 아닐까? 싹 치워버리고 너와 나 둘이서 다시 시작하자는 그런 (무서운) 희망.
하지만, 진짜 가슴아픈 부채는 바로 힘들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정태춘의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나온지 20년여년이 지났지만, 이 노래들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 살 혜영앙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휠 휠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휠~휠~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 정태춘 「우리들의 죽음」-
* 덧붙임:
다음주엔 부디 상큼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