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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우연이야. 시골이라면 자연이겠지만, 도시에서는 우연이야.
-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중에서 -
한 남자가 있다. <졸업(The Graduate)>을 보고난 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 그리고 그 옆에 한 여자가 있다.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세상에 사랑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이 둘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톰 핸슨(조셉 고든-레빗)은 회사에 새로 들어온 썸머 핀(조이 데샤넬)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는 운명을 믿는 순진한 로맨티스트이다. 그런데 그가 사랑에 빠진 썸머는 운명따위는 믿지 않는다. 구속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썸머는 톰과 그저 친한 친구사이로 남기를 원한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가치관이 다른 그들은 행복한 시간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지낸다.
영화에서 보이듯, 사랑에 빠지면 세상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연인과 첫 키스를 했을 때의 느낌. 촉촉한 듯, 달콤한 듯. 감긴 눈을 떴을 때,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비추는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지금은 일상에 치여 묻어놓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설렘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라면, 반대의 모습도 동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겠지만.
500일의 기간동안, 톰과 썸머는 사랑을 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해후하고, 그렇게 지낸다. 그 짧지 않은 기간동안, 그들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감싸 안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의 삶이 영향을 받았다. 톰과 썸머가 사귀기 시작한지 488일 되는 날, 톰은 썸머처럼 생각하고, 썸머는 톰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썸머의 말을 들은 톰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세상엔 운명따윈 없다는 것을. 오직 우연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썸머와 보낸 500일로 톰은 인생에 있어, 사랑에 있어 더이상 운명을 믿지 않고, 우연을 믿는다. 우연이란, 말 그대로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기회라 여기고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흘려 보내거나.
톰이 썸머와 보낸 500일은, 운명이 결정된 안정된 세상을 버리고, 우연으로 가득 찬 불완전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연을 기회로 여기는 톰은 다시 1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처음부터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