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배해성 감독, 박철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아버지. 살면서 이 단어를 입 밖에 내어 발음하여 호칭으로 쓴 일이 과연 몇번이나 있었고, 또 앞으로 몇번이나 있을까요? 적어도 제겐,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말 할 게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 "아빠"를 부른 적은 많았지만, 제 유년이 끝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 호칭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래왔습니다. '아빠'와 '아버지'의 어감의 차이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그 사이를 단숨에 건너뛰기에는 불가능한 법이지요. '아빠'란 단어는 친근감이 들고 '우리 아빠'라는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지지만, '아버지'란 단어는 왠지 권위적이고 보편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전 아직도 이 나이를 먹고도 '아빠'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남세스러워 발음은 못하고 있지만요. 

   농경사회와 유교문화의 축적으로 아버지란 존재는 가부장(家父長)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의 끼니를 책임지면서, 또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 또한 가졌습니다. '아버지'에겐 가족 구성원 전체가 중요한 것이지, 구성원 개인의 특출난 재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유독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들과 서먹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란 '아버지'들은 '내 자식만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자식 앞에서는 그들의 '아버지'들과 똑같이 행동을 하는 악순환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실 아들이 아버지의 못된 점만 배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크로노스와 제우스 신화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런 아버지들은 어떤 존재로 보여졌을까요? 1980년대, 시(詩)에서 보여진 아버지의 모습은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 해
          그해 가을, 假面 뒤의 얼굴은 假面이었다 

                                                                                         - 이성복 「그해 가을」 중에서 -

 

(…… )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깍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에요. 

                                                                          - 기형도 「위험한 가계(家係).1969」 중에서 -

 

   90년대, 대중가요에선 위로가 필요한 이해의 대상이기도 했었고요.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 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곳에도 지금 그가 앉아 쉴자리는 없다. 이제 더이상 그를 두려워 하지 않는 아내와 다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 뿐이다. 

                                                                            -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Ⅰ」 중에서 -

 

   2000년대, 소설에서는 시대와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가부장적인 권위가 많이 줄어들어서인지, 측은함의 대상이기도 했고 철딱서니이기도 했습니다.   

   미안하구나. 

   아버진 그렇게 얘기했다. 또 그 소리. 내가 일만 한다하면 늘 같은 소리였다. 처음엔 들을 만했는데, 결국 들으나마나가 돼버린 지 오래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 즉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여하튼 무슨 상사(商社)에 다녔는데, 여하튼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이었다. 딱 한 번 나는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중학생 때의 일인데 도시락을 갖다주는 심부름이었다. 약도가 틀렸나? 엄마가 그려준 약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근처의 골목을 서성이고 서성였다.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의 사무실은 - 여하튼 그곳에 있기는 한, 그런 사무실이었다. 쥐들이 다닐 것 같은 어둑한 복도와, 형광등과, 칠이 벗겨진 목조의 문. 혹시 외국(外國)인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깜짝이야, 그런 단어가 머리 속에 있었다니 넉넉한 환경은 아니어도, 제법 메탈리카 같은 걸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뭔가 ESP 플라잉브이(메탈리카가 사용한 기타의 모델명)와 같은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을 나는 했었다. 했는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온 얼굴의 아버지가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중에서 - 

 

   아버지는 그날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피임약의 복용법도 자세히 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얀 재를 뒤집어쓰고 온 아버지에게 몇알씩 먹는 게 맞는지 물었고, 아버지는 "두 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머니는 그후 몇달간 피임약을 하루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먹었다고 한다. 그 몇달간 하늘이 노랗고 구역질이 나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고. 그랬던 어머니가 약사에게 물어 피임약을 한 알로 줄이고, 양동이에 언 물을 깨뜨려 달빛으로 뒷물을 하고,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약 먹는 걸 까먹기도 했던 어느날. 어머니는 임신을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김애란 「달려라, 아비」 중에서-

  

   고작 영화 한 편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야하나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부지>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우리의 머리속에, 가슴속에 묻어놓은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예고편이나 지상파 3사에서 보여주는 "스포일러"프로그램 같은 데서 이 영화를 보셨더라면, 그래서 "딱 보니 <워낭소리> 시즌 2, 영화를 가장한 드라마 시티구만"이런 생각을 가져셨던 분들이라면, 그 생각은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그런 얄팍한 기획 상품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허술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타겟은 4~50대의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전라도 시골(아마도 곡성 아니면 구례)이고, 시대는 새마을 운동을 핑계로 농민들에게 부채를 씌운 70년대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 노을이 산에 걸치고 어둠을 맞이하는 농촌의 풍경,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 개 짓는 소리 등으로 시작하는 것,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신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은 명백히 영화를 보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에피소드들은 꼭 특정세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윗세대가 겪은 학교생활은 우리도 비슷하게 겪은 내용들이거나, 구전으로 전해진 내용이니까요. 영화 초반부 이런 추억의 자극은 영화의 경험을 보편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딘선가 들어왔고 접해왔던 내용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이 영화는 우리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니까요. 영화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정말 그때 있었을 법한, 언젠가 할머니, 아버지, 선생님께 들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예정인 국민학교 6학년인 기수(조문국)는 친구들에게 '(책)벌레'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합니다. 기수의 식구는 아버지(전무송), 어머니(전정화), 형 기동(육세진), 그리고 나이어린 여동생(전희선)입니다. 기수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박철민)과 서울에서 새로온 선생님(박탐희)이 주최하는 연극반에 들어 연극연습을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탐탁지 않습니다. 형 기동도 밤이 되면 어디론가 나가서 꿍꿍이를 꾸미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습니다. 농업의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억지 부채를 떠넘기고 때마다 찾아오는 조합원(봉두개)또한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동이 (농가부채해결의 경각심을 위해 갑작스레) 자살을 합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묻고 소같은 울음을 내뱉습니다. 충격으로 중지됐던 연극연습은 (형을 잃은 충격을 털어낸) 기수가 돌아옴으로써 다시 시작됩니다. 선생님은 이 연극의 내용을 실제 현실을 반영하여 고칩니다. 그리고 연극날. 이 연극이 이적물이란 신고를 들은 경찰이 아이들 배후에 있는 '빨갱이'를 잡아가기 위해 읍내에 들어옵니다.   

 



 

 

   영화는 굉장히 많은 것을 다루고 있지만, 깊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6학년생 기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아무리 지옥같은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기수와 친구들에게는 즐거운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80년대를 그렇게 보냈으니까요. 문제는 영화의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기수의 형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버지의 농가 부채의 원인은 무엇인지,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매사 불만인 것인지 도통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짐작할 따름입니다. 배해성 감독은 관객들의 추억의 힘을 너무 믿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추억을 다루었지만, 그 보편적인 추억은 이곳 한국의 특정 세대들의 추억입니다. 호불호가 아니라, 이해와 몰이해의 영역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어쩌면 무리하게 영화를 압축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엔딩 크레딧을 포함해 97분이니까요.   

 

 

 

   제목과 이미지만으로 칙칙한 신파가 아닐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고, 담담합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화면을 장악한 박철민 씨의 연기는 시나리온지 에드립인지 모를 정도로 '박철민'이라는 캐릭터에 딱 들러붙어 있습니다. 진짜 시골아이들을 캐스팅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 또한 생생합니다.   

 


 

 

   아버지 역을 맡은 전무송 씨는 별다른 사건이나, 대사 없이도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아버지'를 연기합니다. 전무송 씨는 이전부터 스님, 교수, 문인, 감독, 편집장, 바텐더, 의사 등 인텔리한 역을 많이 맡아, 과연 억센 시골 촌부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기우였습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를 표현합니다.   

 

 

 

   연출은 많이 아쉽습니다. 가끔씩 연기자들이 상상선을 벗어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메라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거나, 줌인의 미숙함 등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큰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관습적으로 사용한 앵글과 줌인은 너무 안일하게 찍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보편적인 소재를 보편적인 방법으로 찍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이해합니다. 아들이 공연한 연극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소통한 셈입니다. 중학교 시험 당일. 한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남은 자식을 위해 또 다른 자식인 누렁이를 팔아야 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립니다. 시험 그날은 눈이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말 없이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아들을 감싸줍니다. 부자는 말이 없습니다. 말은 없지만, 아들은 압니다. 아버지의 서툰 사랑표현을. 부자사이는 대개 그렇습니다. 

 



 

DVD 소개  

   높은 연령대를 감안한 영화라 그런지 DVD를 넣으면 바로 영화가 재생됩니다. 그런 작은 생각 씀씀이에 제작사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메뉴화면은 단출합니다. 음성은 5.1ch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5.1ch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없습니다. 화면비율은 1.85:1 아나몰픽을 지원합니다. 화질은 무난한 편이고, 어두운 장면에서도 별 다른 거슬림없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자막은 한글자막과 영문자막이 제공되고, 부가영상은 예고편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예고편 영상은 비아나몰픽입니다.  

 



 

총평 

   어찌보면 참으로 낡고 진부한 소재를 영화는 매우 발랄하고 담담하게 찍었습니다. 이 영화 한 편 감상하시고 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걸었을 때는, 예의 그 무뚝뚝한 목소리로 "왠 전화질이야?" 하셨지만, 내심 반가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죠. 우리 (아버지)들은 표현에 항상 서투(시)니까요. 

 

 

* 덧붙임 

1. DVDprime DVD 포럼에 올린 글입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2.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3. 제가 이 영화가 '얄팍한 기획 상품의 하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영화의 원제가 <분교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선생 김봉두>를 의식하고 만든 영화가 <워낭소리>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훨씬 커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 내러티브에서 삐끄덕 거리는 부분은 전부 '아버지'의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큰아들 기동의 죽음과 뒷부분 경찰을 제압하는 부분)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리긴 해도, 역시 추억의 힘은 막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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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부지
    from 사필귀정 2010-02-14 04:04 
    설 귀향 버스. 버스안에서 영화를 한편 틀어주었다. 맨 앞자리에 앉은 덕분에 그냥 보게 되었다. 잠깐 정신 판 사이에 영화 제목이 지나가 버렸는 지, 무슨 영환지 제목도 모르고 봤다. 끝까지 안나와서 결국엔 집에 와서 '박철민' 검색하고, 이 영화가 '아부지'라는 영환 걸 알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순오기 2010-01-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70년대 새마을세대, 우리 아버지는 농가부채를 뒤집어 쓰고 장리쌀 얻어 고향을 떠나셨지요. 그 장리쌀은 작은아버지가 갚았다던가요~~ 인천에서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지요.ㅜㅜ 기회되면 영화를 보고 싶네요~

Tomek 2010-01-25 09:16   좋아요 0 | URL
너무 추억에만 함몰하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찡한 영화입니다. 기회되시면 꼭 보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novio 2010-01-28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직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참 볼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은 죄를 환기시킬 영화임이 분명하니까요. 한국에서 아버지는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막상 아버지 입장이 되면 이해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이 등떠밀면서 매몰차게 군 것 같네요. ㅠㅠ

Tomek 2010-01-28 09:40   좋아요 0 | URL
저도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담백합니다. 신파도 아니고요. 기회 되면 한 번 보셨으면 해요. 대한민국에서 아버지 욕 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