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삶이 내게 왔다'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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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그 삶이 내게 왔다』는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은 출판사의 소개대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에서든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전적 에세이다. 하나의 테마로 각자 스스로 글을 진행하다보니 글의 편차도 제각각이다.
책에 수록된 내용을 (나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이는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 또한 불안해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떤이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보고'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자신의 삶을 뽐내기도 한다. 첫 번째 유의 글은 심금을 울리고 두 번째 유의 글은 내 삶을 반추하게 하기도 하지만, 세 번째 유의 글은 지루하고 네 번째 유의 글은 정말 손발이 오그라든다.(정성일 씨 표현대로, 나 역시 '지식인들이 자기 지식을 뽐내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지식인들이 자기 삶을 뽐낼 때는 견디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자기 삶을 뽐내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의 한 모습아닌가? '착한' 글만 모아서 책을 묶으면 그 또한 우리 사회를 한 단면만 보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글에서 그들이 이 사회와 부딪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 이 책의 의미라면 의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금껏 많이 접하지 못했던 '정보'와 '편견의 해소' 였다. 인권운동, 페미니스트, 행복한 학교, 기생충학, 미술치료, 이슬람 문화, 대중문화(문학) 등의 내용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나, 내가 갖고 있던 편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각 꼭지의 분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대충 윤곽은 훓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이 왈가왈부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의 인상깊었던 구절을 조금씩만 옮겨 놓는다. 순서는 거꾸로 가나다순이고, 인용한 문구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문구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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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인생이 다 공부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 사람을 약간 고개를 튼 다음 비스듬히 바라본다. 그러면 물어보고 싶어진다. 올해 무얼 배우셨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고 계십니까? 그것들은 그저 말의 수사학이다. 인생을 사는 것은 대부분 자기가 공부한 것을 배신하는 행위다.
정성일 - 영화,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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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잠든 하늘을
잠행하다가
독일제 대공포 소리를 들었다
어느 이름 모를 별자리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마
저공비행을 하였던 것 같다
이현우 - 게으른 저공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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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옳은 것으로 간주하며, 특히 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취향에 따른 호불호의 문제를 미감의 우열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이영미 - 대중의 문화, 나와 당신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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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회사에서는 내가 쓴 글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조용했다. 그저 분위기만 싸늘했을 뿐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글이라는 것이 말과는 다른, 어떤 힘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꼈다. 내가 말로 항의했더라면 회사에서 나한테 대놓고 이야기도 못하고 저렇게 끙끙 앓고 난리가 났을까. 회사는 그 조합노보가 못 나오도록 엄청 압력을 넣었다. 나는 결국 세 번째 노보를 내지 못했다. 그뒤로 서울 시내버스 회사 어떤 곳에서도 조합신문이 나오지 않았다.
안건모 - 내가 버스기사 직업을 버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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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생충이 어디 있냐고. 대체 기생충학교실이 왜 필요하냐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난 "공룡도 멸종되었지만 공룡 연구하는 사람은 있지 않느냐"며 궁색하게 답하지만 그래봤자 쉬이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공룡은 귀여운데 기생충은 징그럽다나. 공룡과 일대일로 마주쳐본 적이 있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 텐데 말이다.
서민 - 기생충들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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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백한다. 내가 20년을 인권운동의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운동의 주체로 대우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일에서 난 소외되는 위치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책임지고 일을 해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큼 힘이 되는 일은 없다.
박래군 - 인권운동, 나의 영원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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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책이라면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 좋은 책이라는 평을 듣거나 아니면 잘 팔리거나. 거꾸로 말하면 양서도, 베스트셀러도 되지 못하는 책은 출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한 해에 열 권씩이나 번역하는 외국 서적들은 아타깝게도 무려 70퍼센트가 둘 중 어느 축에도 들지 못하는 책이었다. 함량이야 번역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고, 상업성은 사후에 알 수 있지만 대체로 회의적인 예측이 들어맞았다.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낫겠다는 오만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 부터였다.
남경태 - 편집-번역-집필의 트리클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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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노래방에 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레퍼토리가 이들 노래이니 그 시절의 경험이 내 음악적 감수성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로부터 30년쯤 지나 최희준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어린 시절부터 <종점>과 <길 잃은 철새>를 즐겨 불렀다고 하자 선생이 "어이구, 무척 조숙하셨군요"하셨다. 초등학생 주제에 '너무나 짧았던 인생의 종점에서...... 내 청춘 꺼져가네'(<종점>)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그걸 조숙했다고 해야 할지 불행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김창남 - 어느 얼치기 쾌락주의자의 대중문화 편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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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이 길로 나섰으니, 진짜 직업꾼답게 시골 오일장 거리에 깔릴 수도 있는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시대 작가들은 참 고급이다. 평균 학력은 모르긴 몰라도 대졸이요, 재미있다기보다는 똑똑한 사람도 많다. 나 또한, '선생님' 소리를 예사로 듣는다. 양심이 찔리고 불편하다. 그런데 이즈음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에게 '공선옥 씨' 하면 더 불편해한다. 글쓰기는 적으나마 내게 밥을 먹여주면서도 나를 타락시켜왔음이 분명하다.
공선옥 - 생의 한데에서 불안에 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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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혹은 삶의 방향을 결정지은 정말 그럴듯한 계기나 견딜 수 없는 무엇이 있었던가? 도망갈 수 없는 소명과도 같은 게 있어 그것이 내게 왔던 것일까?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단 한가지만 제외하고.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강홍구 - 캔버스 / 카메라 / 도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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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1. 책을 보내주신 로쟈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2. 오타라 해야할지... 서민 교수님 글에서 '『인어공주』의 장서희 씨'라는 말이 나오는데 『인어아가씨』겠죠. 그리고 남경태 작가님의 글 중 제일 마지막 문단에 '그러나 하지만..'이라고 시작되는 문장은 둘 중 하나를 생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인용에서 빠진 분들의 글이 지루하다거나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