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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 Wedding D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 눈물난다. 하지만 신파는 아니다.
영화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에 맞닥뜨린 싱글맘 고운(송윤아)과 9살난 딸 소라(김향기)가 그 가슴아픈 이별을 위해 남은 시간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행복과 아픔을 담고 있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드라마 장르의 뻔한 스토리지만, 의외로 담백한 구성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신파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점은 관객에게 감정의 물꼬를 터지게 해주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억지스런 설정이나 과장된 기복없이 가늘고 나지막하게 흐르는 물처럼, 조용하게 내리는 비처럼 영화는 꽤나 단순한 구성으로 자연스럽고 소소하게 흘러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훌쩍 거리는 소리와 얼굴을 훔치는 사람들의 손동작이 이어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갖는 저마다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소라와 고운, 딸과 엄마
우선, 죽음을 앞둔 엄마 고운은 심약하지도 굳건하지도 않은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딸과 원치 않는 언쟁을 벌인 후 눈물을 보이기 싫어 방으로 들어와 하는 혼잣말 '미친 년, 잘 하지. 진작 좀 잘하지...' 하며 자책하는 대사는 꽤 현실적으로 들렸다. 딸 소라는 엄마의 병을 알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기존의 캐릭터처럼 애어른 같지 않은 아이의 풋풋함이 싱그러웠다. 특히,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는 엄마를 모르척 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러게 많이 좀 먹지 말라니까!'라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학교간다며 현관문을 나서는 장면에서 김향기의 연기는 진가를 발휘한다. 담담히 문을 닫고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걷다가 조금씩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이내 가득 젖은 눈에 고인 눈물이 차올라 넘치는 장면에선 제아무리 감정이 매마른 사람이라도 버틸 수 없을 정도다.
많은 비중이 있지 않았던 조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고운의 오빠(김명국)는 병원에서 여동생의 병세를 알고 집으로 바래다 주는데 복받치는 슬픔을 추스리지 못하고 차를 세우고 길위에서 오열 한다. 표정 클로즈업없이 실루엣만으로도 표현되는 슬픔의 깊이가 밀려왔다.
또한 웨딩드레스 샵의 사장이자 선배 미자(김여진)가 고운의 소식을 접하고 보이는 다소 색다른 대응 방식 - 자극적인 대사; 뭐, 어딜가? 너 해고야! 재수 없어... 당장 나가! (대충 이런 식이었던)- 에서 종이장처럼 평면적일 수도 있었을 조연 캐릭터에 생생한 기운을 실어주는 섬세함이 색달랐다.
긴 영화를 감히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웨딩드레스』는 신파라는 어둡고 통속적인 옷을 깔끔하고 정갈한 웨딩드레스로 차려입힌 영화다. 감독, 배우들이 합심해서 관객에게 '울어!'하고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아무말 없이 손수건을 건네주는 영화다.
*덧붙임
소라(김향기)를 보니 딸도 든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그나저나, 딸이든 아들이든 2010년 올해는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