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식 글쓰기의 정점... 뭥미???
결국 중요한 건 해결책이다.
한국의 진보학자들은 문제 제기할 땐 신나게 하면서 결론에 있어선 너무나 무책임하다.
문제 제기와 현실분석은 학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많이 읽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최소한 '학자'라면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공론화할 수 있는 그럴듯한 새로운 해결책 정도는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자신이 쓴 책을 돈 내고 사는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내꺼님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리뷰를 신나게 읽다가 결말부에서 갑자기 멈췄다. 내 글읽기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글을 읽다가 갑자기 맥락에서 벗어나 딴생각을 하는 것인데, 이 글을 읽을때도 딴생각에 빠져버려 글의 맥락을 놓쳤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꺼님의 리뷰에 대해 언급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딴생각을 하고 있는 Tomek의 글임을 거듭 밝혀둔다.
'책'은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까? 누군가는 책 안에 길이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책은 누군가에겐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냄비 받침으로 쓰는 '기능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같은 보통사람들에겐 엔터테인먼트와 기능적인 요소가 클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책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보통 그들은 '내 인생의 책들'을 가지고 있는 경운데, 책 한권으로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복음을 전파한다. 뭐 살다보면 그런 위대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이지만, 난 정말 궁금하다. 정말 그 '책'이 인생을 바꾸었을까?
책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책은 항상 문제제기만을 한다. 아니, 결론을 내리건 문제제기를 하건, 책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책을 읽어도 변하는 건 없다. 늘 세상은 흘러간다. 결국 그자리다. 그렇기에, 변하는 건 '나'에게 달려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변해야하는 것이다. '독서'라는 행위는 늘 자신을 반추하는 것이다. 그 비친 모습을 보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반성'을 해야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책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참 겸손한 사람들이다. 책은 그저 동기부여만 할 뿐, 인생을 바꾸는 건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가 오늘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밥을 번다. 그뿐이다.
내게도 '내 인생의 책'이 있다. 여러권 있지만, 최근의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책을 꼽는다면,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그당시 난 중등 영어교과서를 편집하는 일을 했었다. 모든 교과서 개발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이 영어교과서는 더욱 일하기 드러운데, 진상인 저자들을 만나면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2007년 10월에서 12월초까지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잔날은 채 10일이 되지 못할정도다.(그 전 3월부터 10월까지는 항상 야근에 토요일 저자회의를 했다) 밤을 새고 일하다 잠깐 기절하고 다시 깨어나서 일하다 기절하는 일을 두달간 하니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첫 해를 어찌어찌 넘기고 그 다음해 결혼을 하게 됐다. 그때 또다른 교과서를 개발 중이었는데, 마감기간을 피하기 위해 좀 여유로운 8월에 결혼식을 잡았다. 그때 윗분한테 불려서 고마운 결혼 덕담을 들었다. "이 바쁜 때 결혼 하는 게 제정신이냐? 다들 여름 휴가도 반납한 상황에서 결혼하면 어쩌자는 거야? 신혼여행 갈거야? 도대체 무슨생각이야? 애인이랑 해외에서 한 번 하고 싶어 그런거야?" 난 아마 이 '덕담'을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결혼 후 밀려드는 야근에 지쳐갈 때, 무심결에 읽은 책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었다.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지." 그리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이 책은 내 인생을 바꿨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다. 선택을 내리는 것은 '나'다. 책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직서를 낸 것을 후회한다고 박민규 작가에게 "내 인생을 망쳐놓았으니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인생은 다른 사람이 살아주는 게 아니다. '내'가 사는 것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하더라도, 그 길은 결국 '내'가 걸어야 한다.
그러니 책을 너무 신성시하지 말자. 책안에 길이 없다고 너무 투덜대지 말자. 길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그저 그 길을 걸을지 말지를 '선택'하자.
*덧붙임:
1. 책에 대한 생각도 쓰고 싶고, 잊을 수 없었던 제 전 직장 이야기도 쓰고 싶었는데 생각과 감정이 뒤엉켜 토해놓은 글이 된 것 같습니다.
2. 지금 직장은 전 직장에 비해 규모도 작고 환경도 열악하지만, 이유없는 야근은 시키지 않습니다. 덕분에 (전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가족과 보내고 있습니다. 벌어오는 밥은 전보다 적지만, 밥은 굶어죽을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3. 내꺼님의 리뷰는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