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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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식 글쓰기의 절정의 보여주는 책이다.
내일이라도 사회가 멸망할 것 같은 "니들 다 뒈졌어" 류의
겁 잔뜩 주는 문제제기는 여전하고 결론은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이 책은 [88만원 세대]로 시작한 '경제대안시리즈'의 세번째 저서다.
내가 [88만원 세대]를 처음 보고 놀랐던 건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20대의 절망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잔뜩 유발시킨 뒤,
나중에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며 '그게 네 잘못만은 아니야'라고 하는 위로..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뛰어난 완급조절에 있었다.

물론 문제 제기 측면에서도 기존엔 볼 수 없었던 다른 관점으로서의 접근도 좋았지만,
인문 서적을 소설과 같은 구성력으로 완성해 낸 그의 문학적 솜씨에 더 반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아쉬웠던 부실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20대의 바이블'로 꼽았다.
(물론 '88만원 세대'라는 단어에서 오는 상징성도 이 책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중
첫번째 권이라는 사실을 알고 꽤나 기대를 했었다.

21세기, 지금의 20대를 무능한 존재가 아닌
사회가 드러낸 날카로운 발톱이 할퀴어서
상처받은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존재로 인식하고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 본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던
그가 짚어보는 '한국 경제의 대안'이라면,

획기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기존과는 차별화 된 시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그를 향해 기대감을 품었던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시리즈의 두번째 권, [조직의 재발견]은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현 20대의 5~10%, 승자독식 게임에서 승리한 자들을 위한(?) 이 책에서
제시한 한국경제의 대안은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 내부의 조직을 들여다보고 재정비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기업'이 나올 수 있단다.
(기업이 아름답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

참..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조직의 구조는 분명 중요하다.
비록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조직론이란 것이
이론적으로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사회 경제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조직 구조의 변혁임은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누구나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석훈 같은 '경제학자'라면 최소한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힘만으로는 변혁할 수 없다'가 그가 내놓은 답이다.
그는 돌려말했지만 까놓고 말해서 국가가 신경을 써 주고
컨트롤 해줘야 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우리나라 기업 조직 변화에 대한 해답이다.

재밌다... 아니 무책임하다.
노무현 정부 내내 정부에 대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던 그가 또 다시 그 정부에게 기대고 있다. 

뭐 기대는 것 까지는 좋다.
그러나 기댈 땐 기대더라도 어느 정도 '대안'을 제시해주고 기대야 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문제 제기만 하고 "난 요만큼 했으니깐 이제 니들이 해야지ㅋㅋ" 뭐 이런 것인가?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고 관료주의에 회의적이던 경제학자가 왜 자신의 저서에서는
애매모호하고 어려운 '해결책'에 다다르면 그 책임과 해결책을 정부에게 넘기는 것인가?

우석훈 말처럼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도 무능한 정부라면,
자기가 제시한 문제점 하나도 파악 못해 쩔쩔매는 멍청한 정부가
자신도 모르는 해결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필요할 땐 실컷 까대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정부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은 정말 역겨운 것이다.

[88만원 세대]에서 내가 좋아했던 이유의 큰 부분이
박권일씨 때문에 아닐까 생각을 했을 정도로 전작에서 보여줬던
소설같은 흡입력과 뛰어난 구성력마저 사라진 것이 [조직의 재발견]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직의 재발견]은 '조직론'이라는 생경한 이론을 한국형 경제 모델에
대입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는 면에서는 어느정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와서 우석훈은... 갈피를 못 잡는다.
   

 

그는 우리나라를 '촌놈들의 제국주의'로 규정한다.
신선한 문제제기다. 일단 임팩트가 있다.
우석훈은 왜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지난 5년 동안 노무현 정부 기간에 상당히 강화되어 온
기묘한 제국의식은, 실제로는 외부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제국주의이고 싶으나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또 아무리 한국같은
엉성한 나라에 기꺼이 식민지가 될 턱이 없는 이 기묘한 현상을
우리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앞서 우석훈은 우리가 스스로를 촌놈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는데,
"아무런 준비와 계획도 없이, 17~18세기에 유럽이 했던 제국주의의 길을
조절장치 하나 없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현재의 한-중-일 형국은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민족국가'를 키워나가던 시기와 매우 닮았다"고 말한다.

21세기의 '한-중-일'을 보면서 19세기 중반 유럽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너무 많이 나간 해석같이 보이지만
현재 동북아시아 3국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한 게 사실이다. 

3국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상호작용 뿐만 아니라
임지헌이 '적대적 공범자들'이라고 칭한 것과 같이 역사적으로는
동북공정, 독도 문제, 과거사 문제 등과 같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으면서도,
이 대립 현상 자체를 한편으로는 한-중-일 각국의
국민들의 쇼비니즘을 강화시키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3국이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는 현상은 
'민족주의'를 자극시키며 국가의 응집력을 강화시킨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를 든다.

우석훈의 말에 따르면 이라크 파병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일종의 전쟁 연습"이라고 한다.
"앞으로 경제적 이해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파병을 통해
세계 전쟁에 가담하겠다는,일종의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에 대한 암묵전 선언"
이라는게 그가 생각한 이라크 파병의 의미란다.

한미 FTA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화룡점정으로
'나 이제 준비됐어요~!!'하는 결심의 공포와 다름없단다.
"한미 FTA에 노무현이 그토록 집착한 것은 일종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가 이로써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이것이 사실상 국정홍보처가 얘기한 '경제영토'의 실질적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오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히 현실을 짚었던 셈이다"

미안하지만, 오버는 우석훈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라크 파병을 저런 차원에서 확대해석 하는 건
극우파나 극좌파들조차 하지 않는 극단적 시각이다.
어쨌든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긴 하지만,
우석훈이 노무현 정부를 까는 이론적 무기로 적지 않게 써먹었던 것이
이라크 파병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조금 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정말로 이라크 파병을 통해 '전쟁 연습'을 한 것일까?
그는 정말로 이라크 파병에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이라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잠시, 과거 이라크 파병 당시를 생각해보자. 

노무현 정부 집권기간 5년 동안 내내 줄기차게 욕하고 헐뜯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세력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조용히 동조했던 적이 5년 동안 딱 두 번 있었는데, 그것이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이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이 정책들이 한국의 진보진영(이라고 자처하는)
에게 얼마나 많은 몰매를 맞았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이 한번에 바뀌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반미 좀 가지면 어때?'라는 상징성을 일정 부분 등에 업고 당선된
대통령이 자신의 진보주의적 가치, 반미주의적 경향과 완전히 상반되는 정책을
결정한 것을 어떻게 '변절'이란 무책임한 한 단어로 성의없이 정의할 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노무현은 2004년 6월, 같은 편이라 여기던 진보진영에 의해 나쁜 놈, 변절자가 됐다. 

나는 노무현을 이라크 파병 한방으로 무책임하게 변절자로 낙인찍어 버린
사회 각계의 반응을 선과 악, 이분법적 관념에 바탕을 둔 기독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의 가슴아픈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망설임이나 깊이있는 토론, 관심도 없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만을 가지고 한때 그의 편이었던 사람들이 졸지에 그를
배신자로 만들어버린 건 한국 진보진영의 한심하고 무능력한 작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다.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는 지도자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대다수 여론의 반대 입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입장에 대한 연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파병했으니깐 '무조건 나쁜 놈'이란다.....

물론 파병의 반대 입장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 세력의 희망이었고, 상징이었던 노무현이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이라크 전쟁에 한국 군인을
파병하겠다는 데 이런 상황에서 열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토록 자신들이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번쯤은 더 생각을 해봤어야 했다.

그를 정말로 믿었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적어도 한번쯤은 깊게 생각을 해봤어야 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라크 파병은 결코 욕만 먹을만한 결정은 아니었다.
물론 '보편적 인권'이란 진보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배반한 결정이었음은
자명하지만, 이론이 아닌 실제 정치라는 권력의 장에서, 그것도 한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진보주의'라고 하는 원론적인 입장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외교는 민감한 문제다. 전혀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문제들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유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유럽인가?
우리가 유럽처럼 이웃나라와의 연대가 결속력이 있는가, 경제력이 월등한가?
위에는 북한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상황에서 파병을 원하는 미국에게
"전쟁 나쁜거임! 저리 꺼지셈!" 이렇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파병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는 성향과 이념을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라는 국내, 국외의 거시적인 정책을 총 지휘하는 위치에서 '파병'은
단순히 파병이라는 독립적인 문제로만 판단할 것이 아닌 사안임은 틀림없다.
우리에게 이런 이해심은 필요했다. 전 국민이 아니라 최소한 진보진영에서라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라크 파병을 노무현이란 무능력한 지도자가 저질러버린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해석하는 우석훈의 주장은 더욱 슬프고..눈물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쟁을 일으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수준이 아니다.
전쟁을 통해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일반 강대국도 아닌
미국같은 초강대국에서나 볼 법한 극단적인 방법이다.
그럼에도 단순히 '비전투병 3,000명'을 파병한 것을 가지고
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으로까지 해석한 것을 보면..
필자에게 어떤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우석훈은 자신이 확립한 '촌놈들의 제국주의' 이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DJ의 햇볕정책까지 끌어들여 난도질한다.
그가 DJ독트린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다.
그의 관점에서 바라본 DJ독트린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남한 자본의 북한 진출... 사실상 이것이 DJ독트린이 국제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진짜 내용이고, 이 내용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이
이 특수한 독트린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게 한 핵심이었다. (...)
햇볕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의 차이는 북한을 내부식민지로 전환시키는
데에서 형식적으로 상대 정부를 그대로 두고 식민지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종의 총독부처럼
직접 관리할 것인가에 있는 셈이다"

햇볕 정책이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이겨내고 현실성을 갖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북한에 잠재되어있는 '경제력'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만약 햇볕정책에 이런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평가는 커녕,
수구세력, 보수언론에게 물어 뜯겨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국자본의 북한 진출을 '제국주의적 수탈'로 해석하는 점은 조금 이상하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도 하고, 경제 성장도 도모하고, 민족의 숙원이던
만주로의 진출도 꾀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따라 철도망과 도로망도 건설하며
영원한 경제번영을 이루자는 이야기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는 하다.
지금 한국에서의 통일 근본주의와 이윤 중심주의가 결합하는 이런 과정은
형태상으로는 19세기 말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탄생을 이뤄냈던 힘과 동일한 것이며,
지금 한국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민족패권주의는 현실세계에선
한국형 경제패권주의를 탄생시킨 힘과 동일하다"

햇볕정책이 통일근본주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전에 그가 말하는 근본주의의 뜻이 궁금하다.
그는 근본주의를 환원주의와 동일한 뉘앙스를 가진 언어로 취급한다.
그러면서 DJ독트린이 통일근본주의를 띠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한다는 것이
"일부 통일 근본주의자들이 개성공단 및 북한에 건설될 공단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미 FTA를 열광적으로 지지한 사건""만주행 민족패권주의"이다. 

남과 북이 더불어 만주를 쟁취하자는 통일구호는
한국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이다.
게다가 자신도 밝혔다시피 개성공단을 강조하며
FTA를 지지한 사람들 역시 '일부' 통일 근본주의자들이다.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 중 '일부'를 전체, 혹은 일반적 경향으로 묶어 그들을
햇볕정책이 통일근본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근거로 말하고 있는
우석훈은 여기서 되려 자신이 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이론적 근거랍시고 댄 예들 역시
환원주의,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예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일민족주의라는 환상에 홀릭되어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한국 국민들의 보편적 현상은 민족주의가 탄생시킨 최악의 부작용이지만
이는 'DJ독트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자국의 경제적 발전의 효과적인 발판으로 삼고 있다
라는 말은 별로 신선한 주장이 아니고 숨겨진 음모도 아니다.
가격대비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북한의 노동력은 남북한이
경제 교류를 시작한 그 이후부터 줄곧 우리 자본이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우석훈은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 마냥 '공포감'과 '근본주의'까지 들먹이며
"남한이 북한을 수탈하고 있어 ㄷㄷㄷㄷ" 라며 한국을 극단적인 제국주의로 몰아간다.

   

 

그래서 우석훈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중일 3국의 평화경제 구축, 궁극적으로는
평화국가에 대해 나름의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3국의 적대적, 경쟁적 관계에서
경제통합을 통한 역내 경제효율성을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이전까지 줄기차게 공포감을 조성하던 한-중-일
3국의 관계 묘사와 비교해볼 때 너무나 태평스러운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우석훈은 독특한 21세기 한국의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가장 큰 힘은 '교육 파시즘'과 '쇼비니즘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교육 파시즘과 쇼비니즘 마케팅이 만나서 만들어낼 미래의 1차적 모습이
제국주의고, 2차적 모습은 전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전환 단계에서
지금 보이는 현실의 모습이 바로 '촌놈들의 제국주의'이다"

비록 우석훈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많은 부분이 내 생각과는 달랐지만
마지막 십여페이지에 불과한 한국 교육에 대한
그의 현실 인식은 눈물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냉철한 현실 분석과 적절한 공포감 조성이라는 우석훈식 글쓰기의
장점이자 단점이 여기에선 빛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머리와 복장에서부터 다시 시작된 억압의 역사는
학생들과 부모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사교육의 형태로 한층 세련되게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지배자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저항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 뿐인가? 차라리 사교육은 차마 학생들의 돈을 직접적으로 착취하지 못해
부모의 돈을 착취하는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놓고 10대를 타겟으로 기업들은 마케팅을 하고 있다.

여기서 10대들은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싶으면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하고,
공부에 관심 없고 놀기 좋아하는 10대는 어김없이 대기업 마케팅의 표적이 된다.
결국 10대는 어떻게든 자본주의의 그물에 포획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어린 양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가난한 집안의 10대는 여기에서조차 소외당한다..

"한국에서 지금 십대 시절을 보내면, 누구라도 멍해질 것이다.
이 정도로 고강도 억압을 하는 곳은 감옥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다.
이 정도로 청소년에게 강한 억압을 가하는 나라는,
불행히도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
북한만 해도 거기에는 최소한 과외는 없다"

지나치게 자학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난 이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한국의 10대는 정말이지 숨이 턱턱 막힌다.
더 기분 나쁜 것은 386세대로 불리는 현재 대한민국 10대의 부모세대들,
자신들의 학창시절은 사교육의 바다에서 자유로웠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이렇게 이기적이고 역설적인 존재들이 또 있을까?
자신들은 과외 없이, 사교육 없이 대학에 들어가서
'평등한 세상'을 외치며 거리에 뛰어들어 독재타도를 외쳤으면서
내 자식은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며 사교육 바다에 밀어넣는다.
세상을 평등하게 하자는 젊은 날의 그 멋진 열정이 자식 앞에서는 쓰레기가 된다.

"부모들의 역사에 대한 배신과, '촌놈들의 제국주의'로 끊임없이 국가체제를
전환하고 싶은극우파의 꿈이 만나서 한국의 교육 파시즘이 작동되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작동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한국의 내부를
중남미형 경제구조로, 외형은 제국주의로 변화시키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파시즘'에 대한 우석훈의 해결책 역시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지금 절정에 도달한 학교 파시즘, 여기에서 벗어날 출구는 두가지 뿐이다.
이 미친 짓을 어른들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정지시키든지,
아니면 십대들의 총파업, 예를 들면 '동맹휴학'이나 '수능총파업' 같은 걸로
그들 스스로 정지시키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참 슬프다..
이런 걸 해결책이랍시고 말하고 있는 경제학자가
우리나라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과,
'학생 총파업'이라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수단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교육의 현 상황이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분명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하면 이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그의 주장이 실망스러운 이유는 그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말할 수 있는 해결책을 똑같이 말한다면
이 세상에 학자나 지식인의 존재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석훈은 이제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88만원 세대]가 나왔을 때만 해도 꽤나 신선했던 문제제기와 구성력으로 인해
부실한 '해결책'을 자연스레 덮어버렸지만, [조직의 재발견]과
이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와서는 그의 전형적인 글쓰기 스타일, 
"현실의 확대분석 - 공포감 조성 - 맥빠지는 결론"의 매력이 바닥을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흥미롭던 현실 + 공포의 드라마틱한 구성은 이내 식상해진다.
그나마 우석훈의 강점이던 '현실 인식' 역시 마지막 십여페이지를 제외하곤 매우 진부하다.

결국 중요한 건 해결책이다.
한국의 진보학자들은 문제 제기할 땐 신나게 하면서 결론에 있어선 너무나 무책임하다.
문제 제기와 현실분석은 학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많이 읽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최소한 '학자'라면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공론화할 수 있는
그럴듯한 새로운 해결책 정도는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자신이 쓴 책을 돈 내고 사는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생각하건대, 이 책은 [88만원 세대]가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책이었다.
이 책 그 어디에도 '새로움'은 없다.
우석훈은 이 책을 10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난 정반대다. 이 책은 10대들이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이 책이 이나라의 미래인 10대들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되는
일급비밀급인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지식 습득에 대한 필터링 장치가 없는 10대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오히려 한국에 대한 패배주의와 더불어, 정치세력에 대한 냉소주의를 심화시켜
더더욱 정치와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 위험이 있고, 현실적 대안이 아닌
'총파업'이라는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이 책을 본다면
자칫 혁명주의와 영웅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우석훈의 생명력은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한국경제대안시리즈의 마지막, [괴물의 탄생]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그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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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속에 길이 있지만, 그 길은 결국 내가 걸어야 한다.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29 11:16 
    결국 중요한 건 해결책이다. 한국의 진보학자들은 문제 제기할 땐 신나게 하면서 결론에 있어선 너무나 무책임하다. 문제 제기와 현실분석은 학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많이 읽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최소한 '학자'라면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공론화할 수 있는 그럴듯한 새로운 해결책 정도는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자신이 쓴 책을 돈 내고 사는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내꺼님
 
 
미루 2009-12-2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데요..리뷰 너무 너무 맛나게(?) 잘 읽었어요.책 다 읽고나서 다시 한번 리뷰 읽어봐야겠어요.괴물의 탄생 리뷰도 학수고대합니다.^^ 내꺼님 덕분에 최장집 교수님의 책도 사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 생겼습니다.

Tomek 2009-12-2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리뷰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