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8시 30분까지 종각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 모든 것을 준비했으나, 항상 아침이면 바쁘기 마련이다. 늦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수밖에.
8시 10분. 조금 일찍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가기는 가는구나.
작가 김훈은 이미 문경새재에 관한 글을 『자전거 여행』에서 두 장에 걸쳐 썼다. 게다가 올 10월 『공무도하』를 탈고하고 찾아간 곳도 새재길이다.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길을 독자들과 함게 또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하긴 그는 자신의 안에서 해결되어지지 않은 궁금증이나 관심있는 사유를 에세이와 소설에 반복해서 써왔다. 정다산, 우륵의 악기와 가야의 철기 무기들, 울돌목과 충무공, 남한산성에서의 임금의 치욕, 러브호텔과 그 치양막들 등. 그는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에세이든, 소설이든, 칼럼이든 가리지 않고 그의 사유를 펼쳐왔다. 계속해서 새재를 넘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다음 작품에서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앞에 보이는 버스 커버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뭐라 써있는 일본말보다는 오른쪽 하단에 있는 숫자가 눈에 띈다. 예전같으면 별 의미없을 숫자가 요즘엔 왠지 중압감을 주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일까? 루저는 앉지 말라는 건가?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몸을 맡겼다.
8시 50분에 출발한 버스가 11시 40분에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도착했다. 인솔을 따라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김훈 작가님이 며칠 전 미리 답사를 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식당을 예약했다고 했다. 맛이 없었어도 맛있었다고 할 충성스런 독자들이 모여 있었건만, 그날 음식은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화랑 성냥을 보고 사진 한 방 찍다.
새재를오르기 전 하늘은 어두웠고, 비가 내릴듯 한 모습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날씨였다. 날씨 때문에 예정에 있던 문경새재 박물관 관람은 취소하고 바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자, 제 1관문, 주흘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작가님의 즉석 강연이 시작됐다.
새재길을 걸으며 작가님 뒤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보니 작가님의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좀 특이하신 걸음걸이였다. 팔을 굽히지 않고 쭉 뻗은채로 걸음을 빨리 해 걷는 모습. 이런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비정전』에서 본 것 같다.
작가님의 걸음걸이는 아비의 걸음걸이와 비슷했다. 그 때 아비의 저 걸음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생모에게 복수의 심정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빨리 걷는 걸음이었다. 영화는는 카메라가 마치 그런 아비를 붙잡는 것처럼 갑자기 느려진다. 작가님은 왜 빨리 걸으셨을까? 내가 카메라가 되어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계속 걷다가 잠시 마당바위에서 멈춰 '길'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제2관문에서 하실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따라온 YTN취재 때문에 그림이 나오는 장소에서 말씀을 하셨다. 예민한 사람 같으면 헝클어진 일정때문에 살짝 짜증이 날 상황이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으시고 바로 강연에 들어갔다.
YTN취재팀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공무도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제 3관문까지의 오르막까지 계속 쉼없이 걸었다. 가끔씩 내리는 비와 진눈깨비, 그리고 안개라하기엔 너무나 짙은 운무까지. 새재길은 점점 더 현실적이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3관문을 지나서 내리막길을 지나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위치한 덕분에 『퀴즈쇼』의 '회사'가 생각났다. 나도 곧 우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잠시간의 생태교육을 마치고, 세미나실을 빌려 작가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날 있었던 대화를 동영상으로 옮겨본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자리도 좀 뒤에 앉았던 터라 상태가 참담합니다. 화면은 가급적이면 보지 마시고 볼륨을 크게 키워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마치고 버스에서 문학동네에서 마련한 선물을 받았다. 『풍경과 상처』 소책자와 북마크, 그리고 공무도하 연필까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어찌할 줄 몰랐다. 고마운 마음에 아직까지도 어찌할 지 모르는 마음뿐이다. 특히 『풍경과 상처』 는 저 크기에 실제 책이 다 들어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읽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위스키 샘플처럼 바라보면 흡족할 새로운 종류의 책인 것 같다.
20시 30분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한 것을 끝으로 길었지만 짧았던 김훈 작가님과 함께 걷는 일정이 끝났다. 다른 독자와의 대화처럼 2~3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12시간을 함께 겪고 같이 길을 걷는 경험은 작가-독자와의 관계에서 한꺼풀 더 들어간 느낌이 들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작가로서의 김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김훈을 조금 엿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내가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 조금 더 개인적인 느낌으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귀한 기회를 마련해준 알라딘, 문학동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함께 해주신 김훈 작가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덧붙임
1. 이날 독자와의 대화는 다른 때와 비교해보면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추운 날씨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약 3시간을 걷다가 갑자기 따듯한 실내에 들어와 몸의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독자들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도대체 왜?인구단」현용민
반면 김훈 작가님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꼿꼿이 허리를 펴 앉은 상태로 많은 질문들을 듣고 답변하셨습니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강철 체력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작가님도 이러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왜?인구단」현용민
2. 생태학습관에서 있었던 질문 중 두 개가 빠졌습니다. 제가 질문하느라 촬영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간단한 질문이어서 간단하게 적어봅니다.
첫번째 질문: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은 각각 다른 매체로 각색되었습니다만, 그 내용은 원저작물과 상이합니다. 다른 매체로 각색된 선생님의 작품들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2차 저작물은 그것을 각색한 사람들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인정하고 개입은 안한다.
두번째 질문: 선생님께 있어서 『삼국유사』란 어떤 의미입니까?
답변: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중 현존하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둘 뿐이다. 그렇기에 두 책 다 내게 있어 소중하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지었는데 그의 생애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가 나이 일흔에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삼국사기』만 역사서로 인정하고 『삼국유사』 는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삼국유사』 는 마음의 역사다.
3. 오전에 글을 한 번 날렸습니다. 알라딘은 유튜브와 연결이 잘 안되는 것인지...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