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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풀이 돋아나듯이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을 위하여!
가슴 가득 벅차다.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 지금도 보리는 굳은 살이 탄탄하게 박힌 발바닥으로 온누리를 신나게 달리며 온 몸으로 세상의 냄새를 느끼고 있겠지? 사람 동네에서 개 노릇하기를 쉽지 않다고 푸념하면서도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아름다움에 기뻐하며, 포악한 악돌이들과 싸우고 흰순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보리를 만나게 해 줘서 고맙다. 보리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은 깨질듯이 맑고 투명하며 놀라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다. 보리의 눈을 통해 본 사람은 보리를 홀릴만큼 아름답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내가 보리에게 미안하다. 어쩜. 개보다 못한 사람이니^^ㅋ
"꽃잎은 눈처럼 쏟아져내렸다. 빛의 조각들이 공중에서 부서지면서 반짝였다. 봄날, 바닷가에 나가면 물위에서도 그런 빛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다던 보리는 시인이었다.
세상의 일에도 눈 닫고, 귀 닫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 세상을 향해 콧구멍과 귓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몸 속에서 신바람이 저절로 일어난다던 보리는 마음 공부 선생님이었다.
섬세하고도 부드럽게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서사성을 잃지 않는 소설, 개. 쉽게 읽히지만 조단조단 사랑, 그리움, 이별 등 살아있는 모든 것이 가지는 삶의 의미를, 세상의 이치를 얘기하는 소설, 개.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