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읽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만 하면서도 끝내 집지는 못했던 그의 소설들을 맘먹고 읽기 시작했다. 읽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미니멀리즘이라느니 담담한 문체라느니 여운이 길다느니. 어떤 소설일까 궁금했고, 우리 문학계의 단편들과는 많이 다르대서 또 기대했다.


첫 느낌은 낯섦이다. 생전 처음 보는 생경한 느낌의 소설을 대면한 듯했다. 지금껏 한국 문학으로 축적해온 단편소설의 규범이 깡그리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치밀한 상징, 복선, 어떤 치부를 찌르는 '문학적 대사', 서술, 인위적 과정이나 기법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카버의 소설엔 일상의 어느 부분이 고스란히 모사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떤 식으로 그의 소설을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책을 덮었다. 이런 느낌을 언제 받았더라. 그래,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읽었을 때 받았던 느낌들과 비슷했다. 허무했고, 아쉬운 느낌. 벌써 소설이 끝났느냐는 아쉬움, 다른 이야기는 없냐는 허무함. 쉬운 낙관과 회복은 복잡다단한 플롯과 끝간데 없이 밀어닥치는 과도한 긴장감으로 점철된 소설들만 읽어 온 나에게 허탈감마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런 게 삶임을,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들을 잃은 부모가 나온다. 빵집 주인은 생일 케잌을 찾아가지 않는 부부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부부는 아들 일은 잊은 거냐며 독촉하는 낯선 이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게 빵집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부부는 빵집으로 쳐들어간다. 그리고 제빵사는 그들을 다독여 앉혀놓고는 자신이 막 만든 빵들을 내어 놓는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141페이지.


그리고 부부는 제빵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제빵사는 부부의 아픔을 생각하며 둘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 회복의 플롯은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카버의 소설은 이렇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떤 대단한 사건이나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가. 그건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일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을 나에게 추천해준 몇몇의 지인이 카버의 문장이 담담하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카버의 소설이 여운이 깊은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목적의식이 결여된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소설 속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확고한 주제의식을 포착해내려 한다. 하지만 카버의 소설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단면엔 어떤 사색들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표제작인 '대성당'은 주인공이 맹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만 맹인을 접하던 주인공은 처음으로 맹인을 대면한다. 그것도 자신의 집에서. 카버는 두 인물이 소통하는 과정을 대성당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표현해낸다. 주인공은 펜으로 큰 종이에 대성당을 그리고 맹인은 그 손을 따라 대성당의 모양을 쫓는다. 그 작업에 불만을 갖던 주인공은 이내 빠져든다. 마지막엔 눈까지 감고 종이에 움푹 페인 펜자국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는 맹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두 인물이 이루어내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대화를. 카버의 단편들이 명작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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