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준비했다. 가장 멀리 가본 곳이 우리나라 바로 위의 중국 연변이었으니, 인도에의 여행은 각오를 단단히해야 할만큼 긴장되는 것이었다. 미국엔 댈 것도 없고 유럽에도 미치지 못한 거리지만 어쨌든 3시간 반이란 시간을 뒤쫓아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달 정도로 계획된 여행이었기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고심한 것은 여행지에 들고갈 책이었다. 처음엔 가방 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렸다. 두 권이지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곱씹어서 읽을만한 고전이기에 사색의 도구로 안성맞춤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별로 읽고 싶지가 않았다. 먼 나라까지 가서 골치아프게 ‘파우스트’라니. 그래도 고전 하나쯤은 챙기는 것이 좋아보여 알베르 카뮈의 ‘이인’을 챙겼다.


김영하는 ‘랄랄라 하우스’에 여러가지 독서법을 모아놓았다. 그중 가장 으뜸되고, 부유한 독서법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에 직접 찾아가 풍경 가운데서 글을 읽는 것이었다. 내 생에 이 부유한 독서법을 체험할 날이 언제나 또 있을까. 그래서 괜찮은 인도 소설을 뒤져 찾아낸 것이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두 권짜리 소설이라니. 짐을 줄여야 하나 아니면 가장 부유한 독서법을 체험해봐야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엔 짐을 줄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인’과 ‘한밤의 아이들 1,2’ 이렇게 세 권 정도라면 어떻게 가방에 쟁여볼 만할텐데, 내 가방엔 이미 책이 한 권 들어가 있었다.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현대문학 4월호’를 챙겨놨던 것이다.


근데 사실 여행지에서 가장 잘 읽었던 책은 친구가 가져온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었다. 여러 예술가들의 사례를 빌려 여행에 대해 탐구한 이 에세이집은 여행의 가운데 놓인 나에게 절절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이 한 문장 ‘나의 기대 속에서 공항과 호텔 사이에는 진공 밖에 없었다.’는 절묘했다. 그 예상치 못한 진공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경험했던가.


이 책을 여행의 막바지에 읽어서 굉장히 아쉬웠던 점이, 책의 끝에 나오는 여행법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행중에 마주친 풍경들을 소유하고자 하는데 가장 단순한 방법은 바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로 풍경이 소유되었다 생각하고 다시 그 사진들을 꼼꼼히 탐색하거나 감상하지 않는다. 작가는 온전히 그 풍경을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으로써 스케치를 제시한다. 그 풍경을 직접 그려봄으로써 그저 눈으로 훑을 때는 찾아보기 어려운 점들을 애정깊게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없었으므로 작가가 제시하는 다른 방법인 ‘말 그림’을 이용하여 풍경을 언어로 적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매력적인 작업을 여행이 끝날 무렵에야 알게 되어 안타까웠다.


외국 고전, 한국 단편이나 시, 에세이 등을 두루 읽어본 결과 여행지에서는 에세이가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여유와 훌륭한 문학작품들은 얼핏 어울리는 듯싶지만 깊은 탐닉을 요구하는 문학작품들을 읽다보면 문득 여행의 본질이 흐려지는 듯했다. 애초에 쉬기 위해 떠나간 휴양지라면 이야긴 달라지겠지만, 내가 여행한 인도는 숙소를 벗어나기만 하면 소설이 펼쳐지는 곳이었으므로. 적어도 숙소에선 가벼운 에세이로 머리를 식혀줄 필요가 있었다.


다음 여행에는 에세이를 들고가는 편이 낫겠다 싶지만, 사실은 무거운 외국 고전이 어울릴 법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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