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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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히요(1891.10.24~1961.5.30)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이다. 육군사령관으로 있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32년간 독재정치를 폈다. 독재 기간동안 도미카공화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폭압적인 정치로 국가에 전에 없던 평화를 안겨 준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과 입은 봉쇄되었고 부는 트루히요를 중심으로한 집권 세력들에게 재분배 된다. 반체제 운동을 하던 미라벨 세 자매의 죽음은 반독재 투쟁의 기폭제가 된다. 그는 1961년 5월 기관총 사격으로 암살당한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대부분의 독자라면 잘 알지 못할 트루히요라는 독재자, 그리고 익숙한 것도 같지만 어디 붙어 있는 지도 생소한 도미니카 공화국. 이들은 낯설지만 그 설명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친숙함도 느껴진다.

올해는 두 독재자가 죽음을 맞은 해이다. 10월 20일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살되었다. 리비아의 군인이었다가 69년에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42년간 독재정치를 펼쳤다. 12월 17일엔 김정일이 죽었다. 94년에 김일성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그는 2011년 까지 17년간 독재하다가 열차 안에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의 합병으로 사망한다.

두 독재자의 죽음이 있었던 올해를 마무리하며 읽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특별하다. 권력이 얼마나 추악한 횡포를 인간에게 일삼는지. 그리고 그 권력의 정점에 있는 독재자는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 작가는 역사상의 인물을 데려다가 그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내었다.

이 소설은 세 가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째는 권력에 중심에 있다가 밀려난 ‘지식인’의 딸인 우라니아의 시점이다. 그녀는 트루히요 시대가 몰락하고 수십년이 지나 반신불수가 되어 간호사의 병수발을 받고 있는 아버지를 방문한다. 둘째는 국가를 절대권력의 힘으로 통치하고 있는 트루히요의 시점이다. 그는 국가의 수령이지만 자신의 방광을 통재하지 못해 오줌을 흘리고, 발기부전으로 괴로워한다. 셋째는 트루히요를 암살하려 하는 반체제 집단 구성원들의 시점이다. 그들은 트루히요를 죽이기 위해 도로에서 잠복하며 트루히요가 자신들에게 행했던 악독한 행태를 회상한다.

작가가 훌륭한 이야기 꾼이라는 것은 이 세 시점의 효과적인 활용으로 두드러진다. 트루히요가 자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그 죽음을 혁명가들이 기다린다. 두 과거의 시점이 맞물리면서 우라니아라는 여성 케릭터의 비극이 현재의 시점에서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작가는 두가지 시간적 배경과 세가지 시점을 교묘히 섞어 치밀한 구성력을 뽐낸다. 거기에 덧붙여 트루히요 시대의 피해자와, 트루히요 시대의 종결자, 그리고 트루히요 시대의 지배자가 각자의 시선에서 저마다의 아픔을 발산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모두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픽션이라는 사실이다.

소설의 구성은 일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이 소설은 대단히 복잡하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 인물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기에 흔한 주제의식을 강요하는 여타 소설들과 같이 독재자는 패망하며 시민들은 성공하며 평화를 되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는 않는다. 터키인을 비롯한 트루히요 암살자들은 권력의 중심에 선을 대어 트루히요가 죽은 이후의 모든 계획을 철저히 완성해 놓았다. 트루히요가 살해됨과 동시에 군부는 장악되고 트루히요의 심복들은 체포되며 시민의 중심으로 한 평의회가 구성되고 국가는 새로운 정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은 인물들이 가지는 욕망과 두려움과 갈등으로 인하여 비틀어지고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서게 된다. 권력의 핵심이 소멸된 뒤에 남은 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악랄해지고 더욱 악독해진다. 그 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풍경화가 트루히요가 죽은 뒤 혼란 속에서 잔혹하게 그려진다.

때문에 이 소설은 추악한 독재자를 그려내기 보다는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선 사람이 얼만큼 추악해져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트루히요는 결국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그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었고, 300만 명의 도미니카 국민을 굴복시킬 수 있었지만, 그의 방광만은 통제할 수 없었다(1권, p.219)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졌다는 것을 숨긴 채 연극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정력을 과시하며 제 심복들의 아내나 딸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트루히요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트루히요에게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결국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것이다. 시체를 짓밟으면서 나아갈 길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2권, p.23)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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