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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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인물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특이한 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도중,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예술가의 삶으로 전향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40을 넘긴 상태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어떠한 꿈이 있더라도 나이를 탓하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시기이다. 그는 그 늦은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 꿈의 실현은 대단히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미련없이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누구도 그가 숨겨왔던 예술혼을 찾아서 아내와 자식들을 버렸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행위는 일반인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화자의 눈을 통해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설 속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고결한 인물로 형상화된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관점에선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흔한 윤리관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에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죽을 병에 걸린 자신을 돌보아준 사람의 아내를 탐하고, 그녀가 죽음에 내몰리는 과정에서도 전혀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의 예술에 몰두하며, 그것을 위해서만 인생을 대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괴짜였다. 그의 삶이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스스로 궁핍하게 살았음에도 그 지독한 삶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염원을 발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최후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기에 찰스 스트릭랜드는 과연 현실에도 저런 인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술가의 결정체와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자본과는 괴리된, 그것과 정 반대편의 선 인물로 그려진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그처럼 궁핍하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삶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정신력 때문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조차 꺼렸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미술계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그의 그림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그에게 그림을 선물 받은 사람들조차 그 그림을 창고에 처박아뒀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 유행하던 화풍을 모사하거나 시류에 휩쓸려 좀 더 예술가로서 편한 삶을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고결한 예술혼이 있었으며,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정점을 이루기 위해 빵 한 조각 우유 한 병으로 하루를 버티며 힘들게 살아간 것이었다. 심지어 불치병과 씨름하며 겨우 완성해낸 작품은, 그의 사후에 그의 유언대로 모두 소각되어 버리고 만다.


소설의 시점에서 그는 이미 죽은 인물이다. 화자는 그의 흔적을 뒤쫓으며 여러 증인의 협조를 토대로 죽은 예술가의 과거를 재구성한다. 그의 치열한 삶은 자본의 세계에서 뒤늦게 넘어간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소설 속에선 어떤 지방에 가면 자신의 그 지방의 사람인 양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그 지방에서 살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지만,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찰스 스트릭랜드 또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소명 받아 태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증권가에 들어가 평범한 삶을 산다. 그가 자신의 숨겨진 예술혼을 깨달은 것은 40이 넘어선 늦은 시기였다.


예술가를 꿈꾸는 처지라면 꼭 곱씹어 읽어봐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은 어떠한 이상향일 뿐, 그것이 참된 삶의 자세라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태도가 주목받는 것은 예술이 가지는 자본과의 분리성 때문일 것이다. 자본에 의탁한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살리면서 당대에 사랑받는 작가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비참한 생을 살다 죽음을 맞이하며, 사후에나 다시 조명받는 일이 다반사다. 이 소설은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어떠한 마음가짐을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각오를 하고 그것에 임해야 하는지 그 막중한 직업의 무게와 정신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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