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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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눈에 띄게 변모하는 사회상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젊었던 시절엔 편지를 주고받고 마차를 타고다녔지만 그가 중년에 접어든 무렵엔 트롤리라 부리는 전차가 거리를 오간다. 그가 장년에 접어들었을 무렵엔 자동차가 등장하고, 손편지를 타자기가 대체한다. 이 급변하는 시대의 사이를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엇갈리는 사랑이 가로지른다.


소설은 대단히 낭만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을 넘어선 정신적인 사랑이다. 플로렌티노는 젊었을 무렵 잠시 가졌고, 그리고 신분적인 한계에 부딪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페르미나 다사를 사랑했고, 그녀를 잊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여자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 어찌보면 비윤리적으로까지 보이는 관계들은 그가 가슴속에 품은 사랑을 유지하는 데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세속에서 가지는 규정들, 윤리적인 규범관들이란 그토록 헛된 것이었다. 그는 한 여자와만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었고, 결혼에 의해 속박되지 않았으며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불타는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지워진 남편의 그림자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보편적 인식에서 벗어나 본능적인 욕망에 몸을 맡긴다. 그것은 어찌보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어떠한 도덕률들 보다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기에 다소 파격적이다. 그들은 남편이 존재함에도 거리낌 없이 불륜을 저지르고,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에 기꺼이 제 몸을 던진다. 누군가는 그 사랑에 의해 좌절되고, 누군가는 남편에게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을 갈구하는 욕구들은 누군가의 억제에 의해 지배될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한 억압에의 일탈, 진정한 사랑의 획득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노년기의 사랑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미나의 딸은 그녀와 플로렌티노의 관계에 치를 떤다. 늙은이들의 사랑은 추잡한 것이라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두 노인의 관계를 인정하는 듯 보이는 페르미나의 아들 조차, 은근히 플로렌티노에게 자신의 노인관을 피력한다. 세상은 노인들에 의해 더디게 흘러가고, 그들은 요양원에 같혀서 그들끼리 평생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선이다. 이러한 것들은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그러한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늙어빠진 육체를 부둥켜 안고, 서로에게서 풍기는 썩어가는 세포의 냄세를 맡으며 묵은 사랑을 나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강을 오가며 끝없는 사랑을 나누겠다는 플로렌티노의 선언은 그러므로 대단히 상징적이다.


사랑은 병이다. 트란시토 아리사가 아들의 상사병과 콜레라를 착각한 것은 둘의 유사성을 증명한다. 사랑은 콜레라와 같은 것이다. 그 전염성이 강한 병은 인간에게 달라 붙어 그들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끈질기게 그들의 심장을 갉아먹는다. 그 지독한 사랑의 생명력은 그저 늙음으로 인해서, 혹은 신분이 다름으로 인해서 벗어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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