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 사계절 1318 문고 68
박선희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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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식의 이층집이 처음 생겨났을 때, 그 건물은 동네에서 손꼽히도록 아름다웠다. 화사한 정원과 코발트 빛깔의 베란다. 그것들은 화자의 할아버지가 정성들여 하나하나 만들어낸 것이었고, 가족들은 그 집을 중심으로 화목했다. 하지만 그 단란한 가정의 모습은 이제 할머니가 가진 사진 속에서만 존재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특이하다. 아빠는 PC방에서 폐인이 되어가고, 엄마는 그와 대조적으로 에스프레소 향에 취해 우아하게 살아간다. 언니는 흑인 이슬람교도를 남자친구로 뒀고, 오빠와 새언니는 아이 입양을 준비중이다. 가사로부터 해방되어 취미생활에 빠진 여성의 모습이라던가, 소외되어가는 가장의 모습, 다른 국적의 남자와의 연애라던가, 혈연이 아닌 다른 아이를 가족의 울타리로 편입시키는 모습은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현대적 가족의 모습이다. 하지만 화자의 가족 사이에선 이러한 요소들이 갈등의 축이 된다.


엄마와 할머니는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방식에선 차이를 보인다. 할머니가 과거의 추억을 지키고 싶어한다면, 엄마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 차이는 베란다의 부서진 타일을 보는 시선에서 나타난다. 때문에 엄마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길 원하고, 할머니는 그대로 머물길 원한다.


아빠와 엄마는 이미 부부간의 관계를 상실했다. 엄마는 남편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고 아빠는 그저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폐인이 되어간다. 아빠는 심지어 아내가 카페에서 남 주인과 함께 하는 것을 봤음에도 말이 없다. 아빠는 그저 아빠의 자리만 지킬 뿐이다.


오빠는 새언니와 입양을 결정했다. 모든 가족들이 그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둘은 자신의 고집을 지킨다.


그리고 언니는 흑인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해외 연수를 한다고 속이고 가족을 떠난다.


이것들은 모두 현대화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오빠와 새언니가 역설하는 것도 그것이다. 언제까지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가족일 수 있느냐는. 그렇게 말하는 둘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가족의 범위에서 제외시키며, 그들만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의 그러한 주장은, 굳건했던 할머니마저도 마음을 돌리게 만든다. 집을 나가 다른 할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전근대적인 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양상이 옳기만 한 것인가. 그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수록 화목함의 상징이었던 구라파식 이층집은 점점 무너져갔다. 베란다의 타일이 깨지고, 화단의 수도에서 녹물이 나오고, 바닥이 주저앉고, 계단은 삐그덕거리고, 변기도 말썽이다. 결국엔 담까지 무너져 버린다.


결국 화자인 몽주가 마지막에 행한 집 수리는 단순히 무너진 집을 복원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해체된 가족을 결합하는 작업이었다. 성적 소수자인 꽁지머리가 가족의 결합에 땀을 뻘뻘 흘리며 참여하는 것은 묘한 부조화를 이루면서도, 기존에 보여지던 가족의 모습이 현대적 풍토에 반하는 무너져 버려야 할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그것 나름대로 지켜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마법의 완성보다, 마법을 이루어나가는 과정과 마법을 부리는 자들의 만족감이 더욱더 중요함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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