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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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첫 장편을 다 읽은 후, 처음 든 느낌은 낯섦이었다. 그것은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을 접했을 때의 낯섦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소설은 여지껏 읽어온 장편소설들과 달랐다. 읽는 내내 느껴졌던 허전하고 어색한 느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을 덮은 후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녀의 소설에서 서사는 슬그머니 후경으로 물러나 있었다. 일반적인 장편 소설을 추동해 나가는 것은 서사의 힘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격동하는 중간. 하지만 이 소설에선 서사가 사라지고 에피소드만 남아 있었다.

물론 이 소설에도 이야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서 이야기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줄거리는 편린으로 나뉘고 그 사이를 수 많은 에피소드들이 메꾼다. 아름과 아버지의 대화, 아름과 어머니의 대화. 아름과 장씨 할아버지의 대화. 그리고 수 많은 과거의 기억들. 어찌보면 이야기라고 존재하는 소설의 장치는, 그저 장면 하나하나를 불러내기 위한 가지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주가 되는 것은 그 가지보다는 가지를 빽빽하게 뒤덮고 있는 색색의 꽃들이었다.

작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언뜻 이해가 되었다. 아름이는 결국엔 어떻게 될까. 그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소년이다. 아버지의 늙은 모습을 미리 살고 있는 아들이다. 그는 결국엔 죽을 것이다. 그의 삶은 그러니까 그저 버팀일 뿐이다.  하염없이 버티고만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거기서 선택을 한 것이다. 그저 버틸 수 밖에 없는 인물이 겪을, 고통과 아픔과 슬픔의 이야기를 들려주느니,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자고.

그녀의 필치는 너무나도 해맑고 유머러스하다. 장난끼가 다분한 그녀의 문체는 올망졸망하고 발랄하다. 그러한 희극성은 불치병에 걸린 아이의 목소리와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죽음 앞의 인간이 보여주는 희극성은 눈물로의 호소보다 훨씬 진폭이 큰 법이다. 작가는 그 희극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짧고 다양하게 구성하여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잽을 날린다. 큰 한 방은 없지만, 그 축적되는 데미지는 소설의 말미에 이를 무렵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리게 만들어 버리는 힘을 지녔다. 서사성이 부족한 소설이 어찌 장편 소설일 수 있겠느냐며 회의를 가지기도 했지만, 제한된 소품으로 그처럼 폭넓은 변주를 보여주는 작가의 필력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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