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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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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손미나 | 삼성출판사 | 2009.11 


얼마전 스페인 배낭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스페인 여행책을 선물했다. 스페인을 거론하다 손미나의 첫 책이었던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미 스페인을 다녀온 친구는 그녀의 여행들이 너무 부르주아적이라고 투덜댔다. 그 책에 나온 것처럼 스페인을 여행하려면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책의 앞부분 밖에 읽어보지 않아 어쭙잖게 평할 수가 없었던 나는 친구와 공감대를 형성하지도, 작가를 옹호하지도 못한 채 각각의 수준에서 그에 맞는 여행을 즐기는 것 아니겠냐는 어정쩡한 말로 친구의 불만을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두 번째 여행기였던 <태양의 여행자>를 읽으면서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것은 묵직한 비용이 아니라, 짧은 기간 빡빡했던 그녀의 도쿄 일정이 '책을 쓰기 위한' 여행이라는 점을 너무나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다른 여행작가들의 여행 또한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목적이었노라고 대놓고 말하는 여행기는 김이 샜다. 책을 쓰기 위해 거니는 도쿄 거리와 얼굴이 알려진 방송인에 여행 작가라는 새 커리어를 한껏 활용한 사람들과의 만남 들에 여행자의 소박한 사유 대신 화려한 기교가 자리잡았다. 방송국을 떠나 전업 여행작가를 선언한 그녀의 신선한 선택에 이끌린 책치고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런 이유로 세 번째 책 출간 소식에도 심드렁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르헨티나, 그것도 부에노스아이레스란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또다른 제목이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던 브에노스아이레스라니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녀의 브에노스아이레스 이야기들은 기대 이상으로 훨씬 좋았다. 꼭 가보고 싶었던 아르헨티나 여행기였기 때문인지, 아무 기대없이 읽어서인지, 세 번의 여행과 세 권의 책을 내면서 한결 풍성해진 필력 덕분인지, 아픔의 시기를 지나 한층 성숙해진 시선이 담겨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전의 의심이 가시고 기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우리나라에서 땅을 파면 어디에 도착할까,라는 질문에 지구본을 들여다보며 찾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와 정확하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는 나라, 답은 바로 아르헨티나다. 꼬박 지구 반 바퀴를 날아가야 할 만큼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지만, '신의 손'이란 애칭으로 더 익숙한 세계적인 축구 선수 마라도나와 정열적인 춤인 탱고의 유명세 덕분에 그리 낯설지는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자연과 따듯한 사람들에 대해 누누이 들어왔고 더 많이 궁금했던지라 이책이 내심 더 반가웠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여행 기록인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의 이야기는 브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를 거닐면서, 탱고를 추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연을 가장한 다양한 필연들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낯선 풍경과 뜨거운 열정과 소박한 친절과 믿음, 삶에 대한 사유와 깨달음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거기에 아르헨티나가 걸어온 안타까운 역사와 그속에서 피어난 독특한 문화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놓아 아르헨티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1장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곳곳에서 만나는 풍경의 조각들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시민들이 시위까지 하며 지켜냈다는 100년이 넘은 카페는 낭만을, 마라도나로 상징되는 축구장에서는 열기와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 번 맛보면 절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아르헨티나 소고기에 대한 예찬은 육식을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침을 꼴깍 삼키며 그맛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반면 한때 세계 최고의 경제 부국이었으나 파격적인 이민 정책의 실패와 오랜 독재 정치로 인해 금융 위기까지 내몰린 역사는 씁쓸함을 남겼고, 예술과 일상의 공존이 독재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정열의 춤으로 대표되는 탱고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진 2장. 남미 여행에세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탱고 레슨이다. 그녀도 탱고를 배웠고, 스승의 권유로 춤꾼들이 모인다는 밀롱가의 무대에 섰다. 그리고 꼬이는 스텝에 진땀만 흘리던 초보 댄서는 어느 순간 춤과 하나가 되었고 그 벅찬 감동을 독자들과도 나누었다. 그외에도 잠깐의 여행에서 접한 탱고에 매혹되어 평생을 탱고와 함께 하기로 했다는 한국 청년 카를로스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동양의 여행자를 위해 마지막 노래를 선사한 나이 지긋한 탱고 가수 또한 진한 향기를 남겼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인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감에 대한 내용은 3장에서 넘실거린다. 길을 가다 우연히 올려다 본 첨탑을 매개로 대화를 나눈 폐품 예술가,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꽃미남 요리사 커플, 차랑고 연주법을 가르쳐준 욕심없이 맑은 인디언 청년,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운전대를 잡는 택시기사 등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기나긴 시련 끝에 마침내 배우의 꿈을 이룬 빈민촌 출신 배우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우연히 재회한 골든벨 스타 수영이의 역동적인 삶의 자세는 정체된 내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또한 축구장에서 거짓말처럼 만난 멘토의 소개로 이루어진 현지 신문과 방송의 특별한 인터뷰는 보통 여행자와는 사뭇 다른 저자의 특별한 위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제대로 여행하려면 언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도 함께!

앞선 이야기들이 모두 브에노스아이레스의 범주에서 경험한 것들이라면 4장에서는 좀 더 넓고 진한 아르헨티나를 만난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일전에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펭귄이 산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면서 아르헨티나 최남단에도 펭귄이 살고 있는 빙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저자가 바로 그 최남단의 빙하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가우초 청년과의 인연은 빙하에 대한 감동을 넘어 그녀에게 특별한 아르헨티나의 추억을 선사했다. 일정을 연기해 가며 아르헨티나의 진면목을 맛보려던 저자의 계획은 어이없는 사기극으로 중단됐지만, 대신 내륙의 시골 사람들로부터 배신감 이상의 포근하고 따듯한 위로를 얻는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믿음의 회복이 그녀의 험난했던 여정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무너진 사랑으로 괴로워하며 인생의 힘겨운 고비에 맞닥뜨렸던 저자가 날아간 곳은 달콤하고 열정적인 아르헨티나였다. 여러 인종과 가치관이 함께 공유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모습과 시선을 보여주었고, 낯선 땅에서 경험하는 색다른 일들은 황폐해졌던 그녀의 가슴을 다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물론 여행 중 위험에 처할 뻔 하거나 언짢았던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불행에 자신을 잠식당하지 않고 삶이 건네는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작은 여유도 얻었다. 시들어가던 그녀의 마음을 아르헨티나는 타오르는 삶의 열정으로 다시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열정과 감동은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는 그렇게 아르헨티나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었고 동시에 '여행 작가 손미나'를 다시금 기대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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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즐거워 - 트럭 타고 아프리카로 떠난 그녀
오다나 지음 / 이른아침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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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하루 살기 바빠 즐거운 게 무엇인지 순간순간  잊고 사는 요즘이다. 나 요즘 행복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 때쯤 이책을 만났다. <미치도록 즐거워!> 마지막 느낌표까지 팍팍 와닿는 강렬한 제목, 그리고 왠지 보기만 해도 즐거운 제목이다. 미치도록 즐겁다니! 대체 어떻게 하면 그냥도 아닌, 말그대로 미치도록, 그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심드렁한 나날을 보내지만 마음속은 끓어오르는 나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유혹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미치도록 즐거워!>는 아프리카만의 독특한 여행 중 하나인 '트럭 투어'를 통해 아프리카를 둘러본 여행에세이다. 최근들어 아프리카를 여행한 이들의 책들을 몇 권 만나본 터라 트럭 투어,라는 여행 시스템이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껏 책에서는 대부분 며칠짜리 단기간 코스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책은 아프리카 여행의 주수단을 트럭 투어로 하고 있다는 점이 색달랐다. 물론 주코스는 트럭 투어로 다녀온 곳이지만, 여행을 시작하는 짐바브웨와 트럭 투어가 끝나는 종착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저자의 개인 여행기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사실 얼마전까지 아프리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곳을 뛰어다니는 야생동물들의 모습, 어렸을 때 티비에서 보던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는 아프리카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선입견을 심어준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또한 아프리카하면 기아와 에이즈를 빼놓을 수가 없다. 봉사활동을 떠난 이들을 통해 보여지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가난과 처참함, 늘 그랬다.

그 덕분에(?) 머리가 제법 굵어서도 아프리카는 가난하고 무섭고 야생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자연의 세계인줄 알았다. 티비에서 누군가 아프리카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그렇게 무서운 곳을! 에이즈나 말라리아의 위험은 어쩌라고! 치안이 불안정하다던데!! 등의 말들을 내뱉곤 했다. 무지의 힘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반대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고 휴전선이 있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무서운 곳이래!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동안 나는 아프리카에 대해 그와 비슷한 편견에 싸여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에세이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게 됐다. 물론치안이 불안하고 말라리아 같은 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사진 속의 아프리카는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의 순수한 모습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세상에나, 하늘이 그런 빛깔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렇게나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풍광을 뽐내는 아프리카의 사진들에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불어 아프리카의 사람들과 도시들을 보면서, 부끄럽지만, 그곳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기도 했다.

이책 <미치도록 즐거워!> 또한 그런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많이 담겨있다. 트럭 투어를 한 덕분에 주로 아프리카의 자연들이 그 배경이고, 그곳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현지인보다는 함께 트럭투어를 하는 외지인들과의 접촉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아프리카라는 낯설고도 황홀한 땅으로 떠난 이들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즐거운 일이었다.



 


이책을 통해 '트럭투어'라는 여행상품을 처음 알게 됐다. 그전에 아프리카 여행 관련 책들을 통해 사바나 투어나 원주민들의 마을에서 며칠 머무는 여행 패키지에 대한 언급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여행 전체를 트럭을 타고 하는 상품이 있는지는 몰랐었다. <미치도록 즐거워!>는 아프리카에서의 대부분의 일정을 트럭투어로 다녀온, 그래서 트럭투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아프리카 여행 에세이다. 아프리카 이야기를 들으려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 트럭 투어에 대한 정보까지 함께 얻은 셈이다.

트럭투어는 말그대로 버스처럼 개조한 트럭을 타고 여행을 하는 건데, 여행자의 일정에 맞춰 투어의 중간 지점에서 합류하거나 빠질 수가 있단다. 트럭투어는 여행 내내 트럭을 타고 움직인다는 점과 함께 여행하는 일행과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트럭투어 일정 내내 음식이나 청소 등을 여행자들이 함께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여행이 우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처럼 몇몇 마음 맞는 친구와 의기투합한다면 기대 이상의 멋진 여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트럭투어다.

저자는 짐바브웨에서 트럭 투어를 시작해 보츠나와와 나미비아를 경유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덜컹거리는 트럭, 정확히 말하자면 트럭을 개조한 버스에 가까운 차를 타고 끝없이 달리고, 잘 씻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등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그 모든 불편을 견딜 정도로 즐거운 것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어느새 이책을 읽는 독자들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린다. 저자가 손가락을 치켜 세웠던 짐바브웨의 빅폴 화이트워터 래프팅이나 빅토리아 폭포, 보츠나와의 오카방고델타, 나미비아의 스피치코프 등은 이미 내게 찜을 당했다.



 


아프리카 트럭 투어에 대해 정보가 희박한 국내 여행자들을 위해 책 중간중간과 말미에는 나라별 정보와 아프리카 트럭 투어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을 실어 놓았다. 책의 말미에는 아예 따로 꼭지를 마련해 아프리카 트럭투어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들이 담아두었다. 여행 떠나기 전 모은 정보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지식이 더해져 인터넷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알짜 정보라고 저자가 자신하니 아프리카 여행을, 특히 트럭투어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가슴 콩닥이며 아프리카로 떠났던 그녀를 따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친구들이 모인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의 이곳저곳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 곳곳을 다닌 덕분에 그곳의 풍성한 자연을 넉넉하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트럭 투어는 현지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그곳 사람들의 삶을 만나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대신 꿩 대신 닭이라고, 아프리카 사람들 대신 아프리카를 경험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



 


여행은 즐겁다. 그것은 가슴 설레며 즐거운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일이다. 서른의 나이에, 잘 나가는 직장도 그만두고,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신랑마저 남겨두고 그녀를 아프리카로 달려가게 한 것 또한 그런 여행의 유혹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아프리카로 떠난 그녀. 그녀따라 떠난 아프리카 트럭 투어, 이책을 읽는 동안은 정말이지 미치도록 즐거웠다! 덕분에 나 또한 그녀처럼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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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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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다보면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여행이 필요한 시간이 온다.
무엇인가 참을 수 없을 때 단 며칠이라도 좋으니 여행을 떠나보라.
망설일 이유는 없다.
자기 자신을 믿고 배낭을 싸면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책 앞쪽 날개 저자소개 밑)


떠나자!
지금 바로 배낭 하나 챙겨메고 길을 나서자!
길 위에 서는 순간 당신은 새롭게 태어나는 걸 알게 될 것이다!
... 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 몸으로 외쳐대며 독자를 마구 충동질하는 고약한(?) 책이 있으니 그건 바로 이 책 박준의 여행자 인터뷰집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먼저 읽어본 분들의 충고처럼,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떠남'에 대한 부추김이 너무 심해 지금 당장이라도 배낭 하나 짊어지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울컥~ 솟아오른다. 그러나 그 갈망은 방바닥에 늘어져있는 나의 귀찮음을 이기지 못한 터라 나는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컴 앞에 앉아 애꿎게도 주먹만 불끈불끈 쥐어댄다. 사실 귀찮음보단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하는게 좀 더 정확하지만 말이다.


-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는데… 머리를 감는데 내가 매일매일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출근하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머리를 감아야만 하는구나. '매일매일'이라는 것이 답답했어요.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34쪽)

특별한 일 없이 붕어빵처럼 비슷한 일상이 한 순간 견딜 수 없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우린 '여행이란 떠남'을 꿈꾼다. 그러나 그 '떠남'은 항상 마음일 뿐, 우리는 곧 다시 일상속으로 녹아든다. 마음속에는 깊이 여행에 갈망을 심어둔 채로. 그렇게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길을 나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항상 처음이 어렵다고. 무슨 일이든 '처음'이란 그 관문만 넘어선다면 별 일 아니라고. 당신도 '여행'이란게 별로 어려운,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라고 말이다.


- 한국에 있으면 긴장감 없는 생활을 하잖아요. 아침이니까 눈 뜨고 점심 때 밥 먹고 일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대충 놀고, 그런 생활이잖아요? 그런데 여행을 오면 달라져요. 무엇 하나라도 더 느끼려고 하고, 무엇 하나라도 더 보려고 노력해요. 모든 것을 혼자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칫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긴장하게 돼요. 그처럼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긴장감이 좋아요. (125쪽)

- 여행은 내 몸으로 다양하게 경험해 내 영혼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한 뼘 정도였다면 여행은 두 뼘 만하게, 세 뼘 만하게 넓혀주는 것 같아요. 마음에도 조금씩 더 여유가 생긴다고 할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여행에서 겪는 어떤 경험도, 심지어 나쁜 경험까지도 모두 소중하고 여행도 사는 것도 편해졌어요. (67쪽)

진정 여행을 아는 자는 배낭여행을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멋지게 차려입고 자동차 타며 호텔에서 묵고 백화점에 쇼핑하는 건 여행이 아니다. 그건 관광이다. 여행이랑 현지인들과 직접 부딪치며 그들과 소통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느껴보며 이해하는 것, 이 정도는 되어야 여행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기 전까지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이 책은 EBS에서 제작지원을 받아 제작, 방영한 장기배낭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on the road>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이 다큐가 EBS에서 방영된 뒤 시청자들의 열띤 호응과 성원에 힘입어 나온 것이 이 책이라고 하니 '떠남'에 대한 사람들의 목마름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다큐는 DVD로 만들어져 이책 구입시 함께 달려왔는데 조만간 DVD도 감상할 계획이다. 

<온 더 로드 - 카오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필름에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던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고 한다. 저자를 포함해 15명의 장기배낭여행자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는데 한국인과 외국인이 적당량 섞여있다. '여행'에 대한 내외국인의 고른 시선이 담겨져 더 좋다. 모든 인터뷰어들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여행자는 학교를 자퇴한 17살 소녀와 50이 넘어 두 손 꼭 잡고 함께 여행하는 노부부였다. 노부부의 포스가 너무 강한 탓에 조금 바래긴 했지만 똑같이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에 나선 젊은 부부의 모습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 1,2년 늦게 대학 가는 게 뭐가 문제죠? 인생은 길게 봐야 해요. 중요한 건 햇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에요. (240쪽, 17세 소녀 이산하)

- 행복이라는 단어의 범위가 넓은데 나는 우리 마누라의 얼굴 표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가 있었어요. 만족해 하는 얼굴 표정, 별 거 별 거 다 보고, 별 거 별 거 다 타보고, 별 거 별 거 다 먹어보고 하면서 좋아하는 표정을 보고 나는 정말 행복했어요. (190쪽, 김선우ㆍ서명희 부부)

- 무엇을 보자, 이런 것보다도 같이 손잡고 1년을 돌아다니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살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35쪽, 심재동ㆍ임정희 부부)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굳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너무 많은 것에 매여있는건 아닌지. 여행가방을 챙길면 챙길수록 점점 가벼워진다는 조병준님의 말처럼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낭 하나에 들어갈 그 정도가 아닐런지. 가지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비움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여행.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또다른 세계다. 지금 마음을 정했는가? 그럼 망설이지 말고 배낭 하나 챙기자. 떠나는 당신에게 생기 넘치는 삶이 기다릴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나도 당장 배낭 하나 짊어지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진다. 

- 사람들은 많은 걸 갖기만 하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잖아. 하지만 어떻게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소유할 수는 없어. 세상에 무한한 것은 없고 우리가 갖고자 하는 모든 것도 사라지게 돼. 우리도 언젠가는 죽어서 사라질 거야. 그럼에도 왜 사람들의 소유욕은 끝이 없는 걸까? 그건 우리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게 아니야.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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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를 품다 - 서울시창작공간 이야기 서울문화예술총서 4
오민근.서진영 엮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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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문화를 품다 : 서울시창작공간 이야기 | 오민근, 서진영 | 생각의나무 | 2010.02


몇년전 서울을 갔을 때 친구와 홍대앞을 찾은 적이 있다. 서울 토박이인 친구의 안내로 거닐던 겨울철 낮시간의 홍대앞은 생각외로 차분했고 보통의 대학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곳이 홍대앞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건 골목길 중간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낙서들이었다. 씨익 웃음짓게 하는 익살스런 그림도 있었고 꽤나 정성들여 작업한 듯한 벽화도 보였다. 때론 상가의 출입문이나 내려진 셔터 위에 자리잡고 있기도 했다. 홍대앞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옷가게, 개성 넘치는 전시, 인디밴드들의 공연 등을 경험해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골목길에서 만난 재미난 벽화들만으로도 자유분방한 젊은 예술가들의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홍대앞에서의 짧은 경험은 그전까지 다소 삭막한 공간으로만 다가오던 서울에 또다른 이미지를 덧입혀 주었다. 생활 속에 들어와 함께 어우러지는 예술을 통해 삶이 한결 더 풍성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잠깐이나마 경험했다고나 할까. 그랬기에 문화와 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가 진행 중인 사업인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그런 사연으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서울, 문화를 품다》다. 또한 이책은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펴낸 ‘서울문화예술총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은 미술품 뿐만 아니라 버려진 철도역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폐교나 폐공장 등 원래의 용도가 다한 유휴 공간이나 시설 등을 리모델링해 문화ㆍ예술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사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창작공간 또한 그중 하나다. 창작공간의 대부분은 이런 버려진 시설을 활용해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거주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으로, 이는 단순히 버려진 자원의 재활용을 넘어 지역 고유의 역사가 담긴 공간의 연장이자 예술을 통한 창의성의 교류를 내포하고 있다.

지역의 방치된 유휴 시설에 새롭게 자리잡은 창작공간은 예술가들에게는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작업 공간과 더불어 입주해 있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통해 창작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교류의 장을 제공한다. 또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예술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예술에 대한 지역 주민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여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지역 문화를 변화시키는 원천을 마련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렇듯 창작공간은 일상 생활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꾸준히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지역민 개개인의 창의성을 향상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수준 높은 지역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 문화를 품다》는 ‘서울시창작공간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창작공간의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가야할 방향 제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부 탄생에서는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그 탄생 배경을, 2부 현재에서는 운영중인 서울시창작공간 다섯 곳 - 서교예술실험센터,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연희문학창작촌, 문래예술공장의 방문기를, 3부 미래에서는 서울시창작공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고민을 다루고 있다. 책의 말미에 실려있는 부록에서는 2부에서 등장했던 5곳은 물론 개관 예정인 성북예술창작센터,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홍은예술창작센터 등의 서울시창작공간의 주요 시설이나 대관, 입주 작가 공모 등과 같은 자세한 정보를 실어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현재 운영중인 창작공간 다섯 곳을 소개하는 2부의 현장 탐방기였다. 다소 생소하지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공간인 창작공간을 보다 가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곳의 창작공간이 모두 제각각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띠고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문화적 열기가 충만한 홍대앞에 자리잡아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와  지붕에 설치된 거대한 아트 로봇 ‘프로파 간다’가 인상적인 글로컬(glocal) 예술을 표방하는 금천예술공장은 창작공간의 기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 ‘시장 속 공방’의 예술적 기운이 시장은 물론 지역사회로 촉촉이 스며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술은 소위 ‘있는 사람’, ‘배운 사람’, ‘아는 사람’만이 향유하는 특정 장르가 아니며, 우리 일상의 삶과 구분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술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 사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구현해내는 삶의 또다른 모습이다. (131쪽)

여러 창작공간 중 가장 친근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황학동 중앙시장 지하상가에 마련된 신당창작아케이드였다.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재래 시장과 공존한다는 게 신기했고,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비교적 일상과 가까운 소품 위주의 공예 예술가라는 점도 한몫했다. 시장 천장에 달려있는 연꽃등이나 지하상가 입구부터 끝까지 그려져 있는 발랄한 벽화와 작가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시설들은 예술이 일상의 공간인 재래시장과 만나면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매주 토요일 오후에 열리는 체험공방 프로그램은 창작공간의 문턱을 한껏 낮춘 좋은 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처럼 일상 속에서 만나는 예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더 구상중이라니 그곳들 또한 기대된다.

 


책장을 넘기다 순간 홀딱 반해버린 사진을 만났는데, 수십개의 한글 단어들로 채워진 매혹적인 자태의 대문이었다. 누가 봐도 글쟁이의 공간임을 눈치챌 수 있는 그런 멋드러진 그런 대문으로 바로 문인들을 위한 도심 속 집필 공간인 연희문학창작촌이었다. 펜션을 연상케 하는 나무와 정원, 건물과 오솔길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박범신, 은희경 등 그곳에 입주해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매니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어 귀를 쫑긋하게 된다. 연희문학창작촌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작가와 함께 하는 정기낭독회를 마련해 독자들과 특별한 시간을 나눈다고 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기회가 된다면 참석해 보고 싶을 만큼 탐이 나지만 평일 저녁이라 지방민인 내게는 요원한 일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홍대와 대학로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새로운 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문래동의 철재 상가 단지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는 문래창작촌 이야기는 예전에 읽었던 박준의 여행에세이 《네 멋대로 행복하라》에 소개됐던 뉴욕 첼시 예술촌을 떠올리게 했다. 소호의 비싼 임대료에 쫓긴 가난한 예술가들이 육류포장 창고가 즐비한 첼시로 옮기면서 새로운 예술촌을 만든 것처럼 홍대와 대학로를 떠나 낡은 철재 상가 단지의 문래동에 창작촌을 형성한 것은 여러모로 닮은 모습이라 재밌기도 했다. 임대료에 쫓겨 작업 공간을 옮겨야 하는 예술가들의 처지가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역적 특성을 활용하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며 창작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어 든든했다. 서울시창작공간인 문래예술공장은 다른 창작공간과 달리 입주 작가를 받지 않는 대신 문래예술촌의 예술가들을 돕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삶에 있어 물질적 풍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적 풍요이고, 그것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문화다. 하지만 그동안 예술은 너무 멀리 있었고 늘 어려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창작공간은 예술을 지역 사회라는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인다. 혼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함께 느끼는 예술을 지향한다. 화려한 건물 속에 박제되기 보다 버려진 시설의 특성을 살린 재활용으로 함께 호흡하고, 예술가들과 시민들 사이를 이어주는 거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일상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누구나 부담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일상과 자연스레 함께 하는 예술은 창작공간의 존재 의의이자 앞으로 이루어 가야 할 과제인 셈이다.

《서울, 문화를 품다》는 다소 낯설고 생소했던 서울시창작공간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창작공간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서울의 모습을 만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발자취를 따르며 예술을 통한 지역 문화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물론 예술가들의 창작이나 커뮤니티 등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책을 읽다가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조금은 지루해 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서울시창작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기존의 예술공간들과 달리 보다 열린 자세로 예술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쌍생 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서울시창작공간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의 창작공간들이 예술가와 대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 문화를 위해 보다 힘써주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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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마음 - 장 자끄 상뻬의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11
장 자크 상뻬 지음,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각별한 마음 (원제: Sentiments Distingues) | 장 자크 상뻬 |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0.01 


그간의 삽화집들이 대형 판본의 화보집으로 재발간되고 있는 요즘 오랫만에 상뻬의 신작 삽화집을 만났다. 제목부터 각별하게 다가오는 《각별한 마음》은 그 표지 그림 또한 재미있다. 주변이 온통 빨간 장미밭에서 일하는 여인과 꽃다발을 안고 있는 남자의 모습, 얼핏보고는 꽃밭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꽃다발이라니! 저 남자 센스가 부족하군! 하며 혀를 차려는 찰나 그의 손에 들려진 꽃다발의 장미가 내뿜는 파란색이 눈을 가득 채운다. 빨간 장미밭의 그녀에게 선물하는 파란 장미 꽃다발, 그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역시 상뻬다!

상뻬를 처음 만난 건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짚어내는 그의 그림은 책의 내용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까트린 이야기>(이책은 <발레소녀 카트린>을 거쳐 지금은<우리 아빠는 엉뚱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속 삽화로 다시 만나면서 상뻬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그후 그가 낸 삽화집들을 여러 권 만났다. 그러나 상뻬에게 반한 가장 결정적인 책은 역시나, 나를 아시는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사랑스런 아이 까이유가 등장하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다.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기도 하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접한 이후 상뻬에게 빠져 도서관에서 출간된 그의 책들을 거의 빌려봤던 것 같다. 주머니 사정이 조금 넉넉해진 이후에는 그의 책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사이 안타깝게 절판된 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파리 스케치>, <프랑스 스케치>, <겹겹의 의도>, <아름다운 날들> 등 상뻬의 책들은 일러스트레이션 에세이, 즉 삽화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책들은 읽는이의 시선에 따라 그 평가가 다양해진다. 뭘 말하는지 가늠하기 힘든 어려워지기도 하고, 그저 웃고 즐기도 하며, 그 작은 그림 하나에 어떤 책보다 큰 감동과 따듯함을 얻기도 한다.

솔직히 전에는 그의 삽화집을 단순히 즐기면서 봤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난 이책 <각별한 마음>은 한 바닥을 가득 채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이미지 외에도 그 주변을 채우는 것들에까지 눈길이 갔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중인 엄청난 인파나 공원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살피는 여유를 부렸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그림책 <윌리를 찾아라!>를 보는 듯한 색다른 재미를 누렸다고나 할까. 그저 배경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몇 개의 간략한 선으로 그들에게 각기 다른 생동감을 부여한 상뻬에게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림 속 세계에 빠져들다보니 책 읽는 시간이 전보다 몇 배는 걸렸지만 훨씬 풍성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책소개에도 나와있듯이 <각별한 마음>에는 현대 문학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익살맞게 풍자한 다양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겉으로는 문학을 논하는 척하지만 질투심을 숨기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이나 모험을 거부하는 출판계, 현대적이라는 미명 아래 원작을 망치는 연출, 거창한 해석과 의미를 붙이길 즐기는 미술계 등 그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어낸다. 그러나 상뻬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밉살스럽지 않다. 날카롭되 그들을 향한 따듯한 시선은 상뻬 특유의 장난기 어린 풍자로 표현되며 오히려 웃음을 유도한다. 그림과 그 아래의 짧은 글은 때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연출하며 독자에게 또다른 반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감동과 유머를 담은 상뻬의 따듯한 그림들이었다. 인파로 발딛을 틈 없이 복잡한 미술관 한 귀퉁이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정신없은 시위대 속에서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모습, 텅빈 무대에서 둘만의 공연을 시작하는 청소부, 아기 마네킹에게 정성스레 옷을 입히고 입맞춤하는 여인 등의 그림은 내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수학공식을 계산하다 모래시계로 요리시간을 재는 남자, 기차 안의 모든 남자들이 한 여인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 자아도취에 빠진 작가와 바이올린 값을 받으려는 악기상 주인, 재치만점의 황당한 자동응답기 멘트 등 그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그림들도 좋았다.

특별히 따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작가의 의도를 몰라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그림들이 이책에도 여전히 있긴 하지만, 그렇다해도 상뻬의 그림들은 그냥 그 자체로 좋다. 그의 그림들은 귀엽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며 무엇보다 따듯하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다양한 인간군상들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상뻬의 진정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매력에 발목잡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여전히 그의 그림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뻬의 따듯한 그림과 글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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